“인문학 통한 가치 형성, 인생 방향 결정짓는 축을 세워라”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 누구나 공감한다. 기업도 사회도 인문학을 강조한다. 신입사원을 뽑는 시험에 인문학 문제 등장도 그런 맥락에서다. 인문학자의 역할이 더 중요해 질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정민 교수는 어렵다는 고전을 재밌게 풀어내는 인물이다. 고전에 현대적인 관점과 해석을 덧붙여 인문학을 쉽게 설명한다. 그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멋과 여운이 있는 글쓰기는 정평이 나있다.


연구한 고전 분야도 조선시대 실학자부터 차 문화까지 다양하고 흥미롭다. 지난해 8월부터 그의 집무공간이 된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학장실을 찾았다.


[靑春에게 告함]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민

1961년생

한양대 문학 박사

1991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대만 국립정치대 교환교수

2003년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2007년 한국 18세기학회 회장

2014년 한양대 인문과학대학 학장

2014년 한국언어문화학회 회장


저서

비슷한 것은 가짜다(태학사, 2000)

다산선생 지식경영법(김영사, 2006)

18세기 조선지식인의 발견(휴머니스트, 2007)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 2011)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김영사, 2011)

우리한시 삼백수(김영사, 2014)

강진백운동 별서정원(글항아리, 2015) 외 다수.


한양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해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 공간에서 한길을 걸어온 셈이다

대학생 때 시인이 되고 싶었다. 어느 순간 연구 쪽에 더 재능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한 길을 걸어 온 것이 여기까지 왔다. 고전 쪽에 매력을 느꼈고, 열심히 했다. 어릴 때부터 한문과 고전에 관심은 많았다.


인문계열 전공자들은 취업에서 소외되기 싶다. 이공계에 비해 취업이 잘 안 된다는 통계도 있다

인문계열 신입생들이 그동안 대학 입학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학과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하더라. 상경계 또는 이공계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대학 진학 위해 10여년을 공부했는데, 또 그런 목적으로 대학생활을 지내는 것이 안타깝다. 학생들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앞이 투명하지 않고 자기 의지로 뭘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는데, 공감 됐다. 그래서 인문학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인문학 열풍 등 중요성이 강조됐는데, 아직 부족한 건가

지금 열풍은 겉으로 보여주기 식 인문학이다. 대중 강연을 진행하는 것이 인문학을 살리는 길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부하고 가르치는 대학을 활성화 시켜야 한다. 인문학의 뿌리이자 양성소인 대학이 튼튼해야 하는데, 오히려 황폐화 되고 있다. 참된 인문학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대학에서는 취업률로 학과를 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취업을 기준으로 정원이 조정되기도 한다. 취업률이 높으면 가치 있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안타깝다. 인문학 교수들의 고민이 그래서 깊다.


기업들이 입사 시험에 인문학 문항을 반영한다. 인문학 활성화 측면 아닌가

인문학을 하나의 수치로 나타낼 뿐이다. 영어 강조한다고 우리나라 시를 영어로 낭독하면 어떤 의미가 있나. 인문학은 내면의 가치를 키우는 일이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줘야 한다. 문제를 스스로가 해결해 나가고 사회 개척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회사에서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문학이 본질과 맞겠나.


[靑春에게 告함]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본인이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 특강을 살펴보면 일종의 처세술 강의 같다. 매뉴얼 보여주고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할까. 인문학은 문제의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 가령 목표 없이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삶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왜 중요하고, 그 목표를 어떻게 잡는지 알려줘야 한다. 상황과 변화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가 판단 할 수 있는 줏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정형화된 기술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인문학은 상황을 관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인내심을 가지고 행했을 때 얻는 것의 중요성에 눈 떠야 한다.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청춘들이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하면서 장점도 있지만 단편적인 정보로 지식을 채우더라. 한번 읽고 그냥 스쳐가는 내용이 다수다. 그런 정보들이 쌓이는 것은 참된 지식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 얻는 것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책은 간접적으로 경험을 얻게 해주는 좋은 도구 중 하나다. 독서 할 때는 다독보다 한 권을 읽어도 곱씹어 읽기를 권한다. 책은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다.


청춘들에게 추천하는 좋은 책이 있나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추천한다. 꼭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과 비슷해지려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청춘들 삶을 지켜보면 방식이 비슷하다. 다른 성공한 이의 삶을 쫓고 있더라. 스펙 쌓기도 그런 맥락이다. 어떤 스펙을 쌓아야 취직이 잘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만 따라한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하지 못한다. 그건 그 사람만의 특징일 뿐 내 진짜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깨우쳐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책은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주체의 힘을 기르고, 삶의 방향을 스스로가 결정하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언급돼 있다.


덧붙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도 함께 권한다. 문제가 주어 졌을 때 해결하는 과정을 기르게 해주는 책이다. 문제는 누구나 생긴다. 진짜 문제는 그것이 왜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직업 선택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청춘들이 잘 모른다. 콘텐츠를 많이 접하고 자극을 받으면,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다.


글쓰기 중요성 강조 하는데

쓰기와 읽기는 같이 이뤄지는 행위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글쓰기는 절대 기술이 아니다.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기술만 가진다고 글이 써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먼저 책을 통해 지식을 축적해야 한다. 그 다음이 쓰기다.

글쓰기에 중요한 것이 간결성이다. 군더더기를 빼고 형용사와 부사를 적게 쓰는 것이 좋다. 핵심 만 모으고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선택하고, 불필요한 것은 빼야 한다. 본인이 원하는 내용을 걸러내는 과정이 글쓰기다. 안목은 필수다. 읽기를 통해 지식을 넓히고, 중요한 내용을 걸러내는 과정을 반복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강의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인문학 중요성 강조한다. ‘나는 누군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는 가를 고민하라’고 주제를 던져준다. 삶은 앞으로 가는 것보다 어디로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속도보다 방향이다. 일부 이공계 학생들이 내 인문학 강의를 듣는데, 다른 학생들보다 더 적극적이다. 틀이 정해진 문제만 풀다가 삶의 본질을 이야기 하는 강의에 충격 받았다고 이야기 하더라.



[靑春에게 告함]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인문학과 공학이 만난 융복합 강의도 진행한 적 있나

교양과목으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자교실’를 강의했다. 이공계 학생들을 위한 한자교실이다. 예를들어 ‘생각에도 종류가 있다’는 테마를 제시한다. 생각이라는 뜻을 단어에는 사(思), 상(想), 염(念), 려(廬) 라는 단어가 있다. 의미가 모두 다르다.

사는 이성적인 생각을 말하고, 상은 순간적으로 떠오는 생각이다. 염은 머릿속에 박혀 안 나가는 생각이고, 려는 짓누르는 생각이다. 생각에 잠겨 벗어 날 수 없는 것이 ‘사려’이고, 머리 속에 박혀 나를 짓누르는 생각이 ‘염려’다. ‘사려는 깊어야 하는데, 염려는 깊으면 안 된다’는 말도 해석하면 이해가 쉽다. 단어 의미를 가지고 수 백 개의 말을 만들 수 있다. 그러면서 상상력도 넓힐 수 있다. 급수를 따서 점수만 얻는 한자 자격증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나를 가르쳐 열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민 많은 청춘들에게

인생의 목표와 가치를 세우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맷돌을 보면 위아래 맞물릴 때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는 손잡이가 있다. 이것을 ‘어처구니’라고 한다. 그게 없으면 위 아랫돌이 맞물리지 않는다. 어처구니를 바로 잡았으면 좋겠다. 본인 삶의 중심을 세우라는 의미다. 중심이 제대로 잡히면 사건에 휩쓸리거나 방황 가능성이 낮아진다.


인문학 통해 삶의 방향 고민했으면 좋겠다. 삶은 절대 속도가 아니다. 긴 호흡이 필요하다. 수명이 길어졌다. 짧은 시간에 결론 내려고 하지 마라. 자기 성찰 시간 꾸준하게 가지며, 인생 방향 결정하는 축을 가동시켜라. 50대 이런 고민 하면 얼마나 불행하겠나. 그때는 너무 늦다. 하지만 청춘은 늦지 않았다.


좋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꾸준히 자기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았으면 좋겠다. 자기를 소모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본인 스스로 소모품이 되는 삶을 택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글을 쓰고 책을 볼 때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삶의 방향 고민하는 축을 가동시킨다면 행복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고, 내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는 직업 갖길 바란다.


글 이진호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