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명문대 중퇴하고 유명 레스토랑 수셰프 된

김용묵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美 명문대 중퇴한지 8년 만에 유명 레스토랑 ‘수셰프’ 된 김용묵 셰프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뉴욕에서 요리하는 남자, 김용묵 셰프는 확실히 대세남이다.


워낙 바쁜 그와 서면으로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마침 메일을 주고받았던 지난 3월 초는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들이 코스 요리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Restaurant Week’여서 더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하지만 틈이 날 때마다 정리해 보내준 10장의 답변지는 ‘셰프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그의 따뜻한 마음을 뉴욕에서부터 고스란히 전해왔다.



김용묵

1985년생

2013~ Morimoto NYC

2007~2011 Braeburn, Allegretti, L’ECole, Annisa 등 근무

2007 ICC요리학교 Classic Culinary Arts 과정 수료

2002 뉴욕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Albany) 컴퓨터공학과 중퇴



‘미국의 가로수길’로 불리며 최근 관광객들 사이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뉴욕의 명소가 있다. 바로 미트패킹이다. 이름 그대로 육류 공급이 원활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고급 레스토랑이 줄줄이 들어섰고, 지금은 뉴요커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대표 맛집 코스가 됐다.


이곳에 미국의 대표 요리 대결 프로그램인 ‘아이언 셰프’에 요리 고수로 출연한 모리모토 마사하루의 모리모토(Morimoto) 레스토랑이 있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디자인을 맡아 유명세를 타기도 한 이곳은 현지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일식 레스토랑이다.


올해로 만 30세가 된 김용묵 셰프는 현재 이 레스토랑의 부주방장(sous chef)으로서 40명에 달하는 조리사(Cook)를 관리한다. 하지만 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의 명문대학 뉴욕주립대(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Albany)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던 모범생이었다.


뒤늦게 ‘요리’라는,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적성을 찾은 뒤 남들보다 몇 배 빠른 속도로 전 세계의 메뉴를 섭렵해 나간 그는 지금은 방향을 튼 지 8년 만에 ‘주방의 2인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코스 요리가 뭔가요?”


김용묵 셰프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저 슈퍼마켓에서 파는 돈가스나 냉동 동그랑땡 하나로도 행복했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세상에 프랑스요리나 코스요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대학에서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공돌이’였던 그의 머릿속에는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 외길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처음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막 열네 살이 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재원으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그는 외삼촌댁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꿈을 싹틔웠다.


“사촌형이 직접 요리해 줬는데 정말 맛있는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지는 줄로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날 형이 요리하는 모습은 세상에서 제일 멋져 보였죠.”


그날 이후 김용묵 셰프는 매일 형과 함께 요리를 해 먹었고, 교과서 대신 형의 요리잡지를 정독했다. 영어선생님이자 요리선생님이었던 사촌형은 타지에서 만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롤 모델이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요리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기에 그는 꿈 대신 평범한 대학생의 길을 택해야 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에도 그는 기숙사를 거부하고 룸메이트들과 아파트를 얻어 생활하며 식사당번을 도맡았다. 대학시절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밥 먹었어? 내가 밥 해줄게”였다. 숟가락을 넣은 채 김치찌개를 끓이는 어설픈 요리사였지만, 친구들은 언제나 그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줬다.


그러다보니 학과공부는 거의 등한시했다. 업무 경험을 쌓겠다며 인턴도 몇 차례 시도했지만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화면이 흐릿해지며 잠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결국 수차례 학사경고를 받은 끝에 그는 대학을 중퇴해야 했다.


학교를 그만둔 뒤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그에게 사촌형은 뉴욕의 ICC(International Culinary Center, 당시에는 FCI, French Culinary Institute) 요리학교를 추천했다. 그 순간 잠재해 있던 ‘요리사’라는 꿈이 되살아났다. 비로소 원하던 길을 걷게 된 그의 마음가짐은 확실히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매일 요리를 만들어내야 함에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 긍정적 평가를 받으면 시험에서 100점 받은 것보다 더 기뻤다.



美 명문대 중퇴한지 8년 만에 유명 레스토랑 ‘수셰프’ 된 김용묵 셰프



4시간씩 자며 강행군… 응급실행도 여러 번


요리에 관한 기초가 전혀 없었던 그는 ICC 입학과 동시에 바로 현장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남들보다 뒤처진 실력을 실전을 통해 단기간에 만회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자리는 커리어페어(career fair)를 통해 구했다. 커리어페어란 취업박람회와 같은 개념으로, 학교 선배 셰프가 모교를 찾아와 후배들의 이력서를 검토한 뒤 직접 채용까지 하는 미국의 선발제도다.


“첫 직장은 브래번(Braeburn)이라는 모던 아메리칸 레스토랑이었어요. 물론 일은 쉽지 않았어요. 안 그래도 칼질이 서툰 데다 선반이며 모든 가구가 왜소한 셰프의 키에 맞춰져 있어 덩치가 큰 제게는 맞지 않았거든요.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았죠. 하지만 이곳에서 탄탄히 기본기를 쌓으며 셰프로서의 꿈을 키워나갔어요.”


그렇게 1년 뒤, 그는 또 다시 교내 커리어페어를 통해 알레그리티(Allegretti)로 이동해 이번에는 이탈리안-프렌치 요리를 배웠다. 요리산업이 발달한 뉴욕은 관련 일자리도, 좋은 인력도 많아 요리사들이 대부분 1~2년 주기로 일터를 옮긴다.


김 셰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불성실하게 임한 것은 아니었다. 학업과 일 두 가지를 모두 잡아야겠다는 욕심으로 매일 4시간씩 자며 버텼다. 새벽 5시, 레스토랑에 출근해 재료를 준비하고 점심식사를 만든 뒤 곧바로 학교로 달려가 수업을 받았다.


그렇게 매일 새벽 1시가 되어 귀가하는 고된 생활을 반복했다. 누적된 피로 탓에 그의 손가락은 남아나지 않았다. 칼에 베이고 불에 데기를 수차례. 어느 비 오는 날에는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달리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졸업 후 본격적인 풀타임 직장을 찾던 그에게 ICC 교장은 학교에서 직접 운영하는 레콜(L’eCole)에서 일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유명 레스토랑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美 명문대 중퇴한지 8년 만에 유명 레스토랑 ‘수셰프’ 된 김용묵 셰프



바로 안니사(Annisa)였다. 학교 웹사이트의 구인정보를 통해 이력서를 넣고 면접까지 통과했다. 미슐랭가이드 선정 별 1개, <뉴욕타임스> 선정 별 3개를 받는 등 현지에서는 알아주는 식당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정식 셰프가 되는 기쁨까지 맛보았다.


특히 여러 종류의 재료와 조리법을 모두 섞어 요리를 만드는 안니사는 그에게 처음으로 ‘음식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깨우쳐준 곳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요리를 다 배워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헤드헌터를 통해 모리모토 부주방장 입사 제의를 받았다.


모리모토는 그가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식 레스토랑이었다. 게다가 주방의 2인자 격인 부주방장이라니.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다. 모리모토의 정식 부주방장이 된 김용묵 셰프는 먹을 수 없는 것을 접시에 담는 것을 죄악시하는 프랑스요리 대신 음식 플레이팅을 위해 얼음이나 대나무 잎까지 사용하는 일식요리와 처음으로 마주했다.


모리모토에 이르기까지 그가 거친 레스토랑을 살펴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모두 다른 종류의 요리 전문점이라는 것.


“저는 특정 요리 전문가보다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셰프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늘 전혀 다른 색깔의 요리를 하는 레스토랑을 선택했죠. 물론 수십 년 동안 한 요리를 고집하는 장인도 존경스럽지만, 저는 요리에는 국경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요즘 시대에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는 외국인들에게 비빔밥이 자칫 한식으로 너무 고정화돼 인식될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세계가 글로벌해진 만큼 요리 역시 각 나라마다의 풀이를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예를 들어 미국식 삼겹살은 한국보다 단맛이 많이 추가된다. 이처럼 우리 요리도 각 나라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더욱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얼마 전, 뉴욕 타임스퀘어에 비빔밥 광고가 크게 걸려있는 것을 봤어요. 물론 뿌듯했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미국인들 사이에서 ‘비빔밥은 한국인들만 먹는 한식’이라는 공식이 굳어져 현지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할 것 같다는 걱정도 되더라고요.”


김용묵 셰프가 전하는 뉴욕의 Cook 체계


셰프가 감독이라면 쿡(Cook)은 실제 주방에서 조리를 담당하는 요리사를 일컫는다. 레스토랑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Prep Cook(재료준비담당) 및 Garde Manager(콜드 에피타이저 담당)으로 시작한다.


다음으로 Poissonier(생선요리)?Saucier(육류요리 및 소스 담당)를 거치는데, 이를 통틀어 Line Cook이라고 한다. 보통 시니어 Cook이 Line Cook 이후 Tournade를 맡게 되는데, 모든 스테이션의 재료 준비를 도와주거나 서비스 시간에는 플레이팅을 도와준다.


레스토랑의 규모가 큰 경우에는 Tournade 전에 Steam, Grill, Saute 등의 단계가 있기도 하다. 새로운 레스토랑에 입사하면 대부분 Garde Manager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경험이 많은 경우 Line Cook부터 맡기도 한다.



美 명문대 중퇴한지 8년 만에 유명 레스토랑 ‘수셰프’ 된 김용묵 셰프



“지금 뉴욕은 셰프에겐 핫 플레이스죠”


올해로 7년차 뉴욕 셰프인 그는 뉴욕을 ‘전 세계 요리의 메카’라고 말한다. 뉴욕에는 가장 많은 미슐랭가이드 선정 레스토랑이 있고, 그만큼 음식 종류도 다양하며 종사자도 많아 네트워크를 쌓기에 최적이라는 것. 현재 뉴욕시에만 미슐랭가이드 선정 레스토랑이 150곳에 달한다. 이들 레스토랑에서 약 60가지의 전 세계 요리를 취급한다.


수요가 많으니 식재료를 구하기도 쉽다. 식재료가 많으니 메뉴를 구상하거나 연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주변에 다양한 경력의 셰프들이 넘쳐나 요리를 배우기에 안성맞춤이란다. 그가 만난 셰프들 역시 미디어 출연이나 음식평으로는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었다. 특히 그가 속한 모리모토는 미국에서 가장 큰 요리 채널인 Food Network와 같은 건물을 쓰고 있어 유명 셰프를 만날 기회도 많다.


이런 환경 덕분인지 그는 학교보다 현장을 추천한다. 요리학교는 기본 기술을 배우거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학교에서 1년 동안 가르쳐주는 것을 현장에서는 한 달이면 모두 습득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게다가 최근 뉴욕에 요리 붐이 일면서 셰프들에게 뉴욕은 어느 때보다 유용한 곳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한국에 요리학교나 관련 TV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는데, 뉴욕도 마찬가지예요. 학교도 늘었고 그 학생들을 인턴으로 받아줄 레스토랑 역시 많아졌죠. 물론 많은 곳에서 정당한 급여를 주고요. 오히려 일손이 부족한 곳이 많기 때문에 배우러 오겠다는 사람을 절대로 등한시하지 않아요.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로 연락하면 금방 답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주방에서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셰프가 주는 대략적인 지침만 알아들을 수 있으면 된다. 다만 호텔은 가급적 피하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대규모 호텔보다 셰프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뉴욕의 요리사에게도 힘든 점은 있다. 기회가 많은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는 것. 또 항상 불을 다루는 덥고 위험한 주방, 매일 12시간 이상 계속되는 근무시간 등 배우는 과정에서의 열악한 환경을 모두 견뎌야 한다. 셰프가 된 뒤에도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메뉴를 계속 개발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


“요리는 스마트폰과 같아요. 매년 새로운 모델이 나오고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 되는 스마트폰처럼 요리도 해마다 유행을 타는 경우가 많거든요. 특정한 시기에 거의 모든 레스토랑이 똑같은 재료에 매달릴 때도 있어요.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해도 이미 누군가 다른 곳에서 시도했을 수도 있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먹으러 다니세요. 맛있는 것도 먹고 공부도 하니 일석이조잖아요? 물론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원하던 셰프가 됐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며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