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선악 구분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정치·사회참여 정도는 얼마나 될까? 단편적이지만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 20대의 투표율은 68.5%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6·4지방선거에서도 20대는 48.4%만 투표권을 행사했다. 이런 와중에도 우리의 삶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는 청년들이 있다. 새누리당·새정치민주연합·정의당 소속 세 명의 대학생이 그 주인공이다.
좌담회 함께한 대학생
강현욱(정의당, 서울대 사회복지 2) l 박진호(새누리당, 한국산업기술대 e-비즈니스 4)
"나에게 정치는 삶이다!" "나에게 정치는 현장이다!"
홍다예(새정치민주연합, 중앙대 정치외교 4)
"나에게 정치는 의사소통이다!"
다사다난했던 2014년, 어떻게 보냈나?
박: ‘힘들다’는 말을 절감한 한 해였다. 더 높은 공인 영어점수를 위해 시험도 여러 번 치렀고, 소위 ‘자소설’도 많이 썼다. 방송계에서 일하고 싶어 관련 학원에도 다녔고, 한 케이블회사에서 시민기자 활동도 했다. 개인적으로 연애에 종지부를 찍어 상심이 컸는데, 다수 기업 입사시험의 서류전형에서조차 떨어져 자존감이 상당히 떨어졌다.
강: 고등학교 때까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는데 대학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주위에서는 벌써부터 로스쿨을 준비하라고 권유하더라. 이런 획일적인 경쟁을 왜 계속해야 하는지 의아하다. 시험 기간이 아니어도 도서관은 꽉 차고, 인생의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 답답했다. 그래서 지난 학기에 휴학했다.
홍: 폭풍 같은 한 해였다. 당 활동을 같이할 친구들을 모집하고 설득하느라 1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몸은 힘들었지만 많은 사람을 알게 됐고, 재미도 있었다. 내 자신에 대해 알게 된 2014년이었다.
입당 계기가 궁금하다.
박: 학창시절 내내 학생회장을 했다. 친구들을 대변하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나고 자란 지역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현실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새누리당이 지역 현안을 가장 잘 살피고, 발전적인 비전을 보여주었다.
강: 지난해 세월호 사건으로 ‘멘붕’이 왔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참담했다. 떠들 줄만 알았지,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내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기존 정치를 넘어서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대안정당으로 정의당을 선택했다.
홍: 정당의 목적은 정권 획득이다. 이를 올바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뿌리, 즉 청년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해결해야 할 점이 많지만, 그만큼 내가 들어가 기여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서 새정치민주연합을 택했다.
‘88만 원 세대’ ‘삼포세대’라는 요즘 청년들의 현실은 어떤가?
강: 태어날 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사회가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청춘은 아프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인가? 잠시나마 위로를 주지만 그 다음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문제인 것 같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고쳐나가려는 의지를 가질 때 내 삶을 지탱해나갈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좋은 인생 접근법이 아니라고 본다.
박: 청년들을 그런 신조어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런 말들이 청년들에게 부정적인 무언의 압박감을 준다. 우리 사회에 긍정적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희망적인 부분들이 부각되었으면 한다.
홍: 고시원에 사는 친구들이 많은데, 현실은 정말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정말 힘든 사람은 힘들다는 말도 못한다고 하지 않나. 요즘 청년들, 힘들다는 하소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다. 어쩌다 힘든 티라도 내면 주변에서는 ‘너만 힘든 줄 아느냐’고 힐난한다.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대학생들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강: 과거에는 어젠다가 명확했다. 그래서 직간접적으로나마 손쉽게 정치참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회가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특히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무언가를 알기 쉽게 제시해주는 부분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청년들이 점점 정치에서 멀어진다. 청년문제를 “그래, 너희 말 들어줄게”라는 수혜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말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줬으면 좋겠다.
박: 정치인들은 청년들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왜?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다. 당 활동은 차치하고라도 투표부터 열심히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홍: 정치를 전공하지만, 같은 과 사람들도 사실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학문은 학점을 따기 위한 도구일 뿐, 현실정치·정당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참여해도 우리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정말 바뀌지 않는 것이다. 청년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정치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인문계 수난시대라는데, 각자의 취업체감지수는?
박: 기업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경제시장에서 생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모든 것을 만족하는 정책이란 없겠지만, 일단 현실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내가 기업 사장이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공계 출신’을 뽑고 싶을 것 같다.
홍: 물론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내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말 일하는 데 능력과 소양이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라면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강: 대부분의 기업이 손도 안 대고 코를 풀려는 것 같다. 스스로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해 투자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학에서 그 모든 교육을 받은 사람을 수혈하겠다는 자세가 불편하다. 취업준비생들도 마땅히 자기계발을 해야겠지만, 지금처럼 대학을 마치 ‘직업훈련소’처럼 바라보는 태도는 재고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요즘은 1학년 때부터 도서관에서 산다던데….
홍: 무턱대고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예전엔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들끼리 단체로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일률적인 과제 대신 각자의 개성이 담긴 창작물들을 제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치열해 그나마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게 존재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1학년 때부터 학점 관리와 영어 점수 향상에 여념이 없다. 학생회 선거에도 관심이 사라진 지 오래다.
박: 지금 대학생들은 마치 ‘고등학교 4학년’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의 기간 동안 정말 성실하게 살았다. 곧 졸업을 하지만, 만약 지금 후배들과 같은 수업을 들으라고 한다면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수업 외적으로는 각자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두고 잘 뭉치려 하지 않는 경향도 있다.
강: 강의실에서 많은 학생들이 노트북을 쓴다. ‘다다다닥~’하는 소리가 때론 귀에 거슬릴 정도다. 그래서 가끔 손으로 필기하는 학생과 논란도 일어난다. 어찌 됐든 치열한 학점경쟁의 단편적인 모습이다.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는 건 좋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순 없다.
학교 내 경력개발센터를 이용해 본 적 있나?
박: 채용 공고를 낸 기업들에 대한 안내를 받고, 각종 취업 정보를 얻었다. 일반 취업포털이나 취업카페 이용이 능사라고 생각하지만 각자 자신들의 학교에 있는 경력개발센터를 이용하는 게 의외로 도움이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하지 않나.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걸 추천한다.
강: 아직 취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는 아니라 경력개발센터를 직접 이용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특정 기업에서 추천채용 형식으로 학교에 채용 의뢰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제도를 활발하게 이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홍: 휴학을 하고 정당 활동을 하느라 그 동안 관심을 많이 못 가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보면, 자기소개서 컨설팅과 면접 코칭 등의 서비스를 받으며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쌓아간다고 한다. 복학하면 꼭 찾아가볼 계획이다.
아르바이트는 많이 해봤나?
홍: 당 활동도 사실 자비가 더 들면 들었지, 돈을 버는 차원의 것은 절대 아니다. 학비와 생활비 등을 위해서 카페 서빙, 과외 등을 해봤다. 직접 부당한 대우를 겪어본 적은 없지만, 친구들 경우를 보면 최저임금도 못 받고, 무임금으로 연장 근무도 하는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강: 알바 면접에서도 많이 떨어졌다. 알바생도 경력을 선호한다는 게 ‘웃픈’ 일 아닌가. 커피 전문 매장에서 일하는 한 지인은 주문에서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고, 손님이 자신의 무릎을 꿇리고 차가운 커피를 머리에 쏟아 부었다고 하더라. 청년은 그 자체로 사회적 약자인데 알바생은 ‘을 중의 을’인가 보다.
박: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로 가서 무 캐는 일을 했다. 한 달에 500만 원을 준다고 해서 혹했는데, 그야말로 업무량이 어마어마했다. 결국 5일을 채 못 버티고 야반도주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해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체감하게 됐다.
2015년 어떤 목표를 갖고 있나?
홍: 대학생위원회 위원장으로서 1년간 후회 없이 활동을 했다. 후임자가 누가 되든 청년의 희망적인 목소리를 현실정치에 잘 반영하는 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이제 복학을 하는데 그 동안 소홀했던 학업에 충실하고 싶다. 구체적인 방향은 아직 못 잡았지만,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며 미래를 구상해볼 생각이다. 또 학교 내 학생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데 앞으로 학생 사회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해 나갈 계획이다.
강: 복학이 설레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정치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치적’이라는 말에 과도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한국 사회지만, 사실 우리 삶에 정치적이지 않은 게 얼마나 될까? 청년답게 재밌고, 긍정적인 차원에서 올 한 해는 조금 더 ‘정치적’인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 지금 20대들은 훗날 무슨 세대로 정의될지 궁금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 중심엔 청년들이 자리 잡아야 한다. 정치 얘기를 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정치가 거론되지 않는 사회가 이상한 사회라는 생각으로 유의미한 논의를 해나가고 싶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박: 학업, 취업, 연애 등 많은 걱정거리가 도사리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의도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럼 분명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홍: 정치는 어렵거나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인상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정치 얘기를 많이 나누자.
강: 아파도 참거나 소리 죽여 울지 말고, 힘들 땐 소리 한 번 크게 지르면서 살자.
글 박상훈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온라인에디터 jobnj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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