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의 사회부 기자 거쳐 10년차 통역사가 되기까지
경향신문 칼럼 ‘통역으로 통하는 세상’ 연재
매일경제신문 사회부 기자(2006-2009)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영과 졸업
WHO, 코트라, 외교부, 유니세프, 삼성전자 등의 통번역 업무
책 <통역사의 일> 저자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세상과 독자, 연사와 청중을 연결하는 사람 박소운이라고 한다. 한영 통역사로 일을 한지 올해로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주로 핀테크를 비롯한 IT 분야와 제약, 의학 분야 통역을 맡고 있으며 WHO, 외교부, 유니세프 등에서 국제회의 통역을 수행한 바 있다. 통역사가 되기 전에는 매일경제신문 사회부에서 3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말 그리고 글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엑셀러레이터’라고 소개한 점이 인상 깊었다. 어떤 의미인가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라는 것이 가속장치라는 뜻인데, 이 단어가 주는 능동적인 힘이 참 좋았다. 거의 모든 전 국민이 할 줄 아는 언어인 영어와 한국어로 통역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영 통역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서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액셀러레이터’라고 칭하게 됐다.”
통역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어릴 적 꿈은 영자 매체 기자가 되는 것이었다. 스스로 영어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한국에서 영어를 가장 유창하게 배울 수 있는 곳인 통역대학원에 진학했다. 통역대학원이 있는 대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동기들 대부분이 통역대학원을 한 번쯤 꿈꾸는 분위기이긴 했다. 학부 때 전공이 영어통번역학이기도 했고. 유명한 통역사 교수님들이 캠퍼스에 다니는 모습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통역사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게 아닐까 싶다(웃음).”
통번역 중에서도 통역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내가 통역 일을 택했다기 보다, 통역이라는 일이 나를 택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내가 경제지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니, 기자 생활 이후 번역가의 삶을 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성격 자체가 담담한 편이다 보니 순간순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한 통역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건 제가 선택한 게 아니고 일이 저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간간이 번역 업무도 겸하고 있다.” 첫 통역은 언제였나
“2006년 대학원 1학년, 25살 때였다. 닉 라일리 GM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사장이 한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자동차 관련 행사를 했었는데, 그 때 당시가 나의 첫 통역으로 기억한다. 통역은 기본적으로 듣는 청중들의 입장과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때 당시 ‘통역사’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 굉장히 격식을 차려서 통역을 했었다. 당연히 청중인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고 아이들은 멀뚱멀뚱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당시를 되돌아보면 ‘통역사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던 것 같다.”
통역대학원을 휴학하고 기자 생활을 했다
“대학원 1학년 휴학을 하고 매일경제신문 공채에 도전했고,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합격을 했다. 통역대학원 출신이다 보니 국제부가 잘 어울리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자진해서 사회부에 지원을 했다. 3년간 취재현장에서 각계의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이후 영어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어 통역대학원으로 돌아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학원 졸업 때쯤 영자 매체 기자직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뭔가 조금씩 잘 안 맞아떨어지더라. 면접 날 다른 일이 생기고, 채용이 결정됐다가 취소되는 등이었다. 본의 아니게 영자매체에 다 거절을 당한 것이다(웃음). 그때부터 통역 일이 계속 들어와 통역이 내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통역과의 인연이 어느덧 10년이 됐다.”
사회부 기자를 거쳐 통역사에 이르기까지, 그간 스스로를 움직였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호기심’이라고 생각한다. 제 원래 성향이 잡다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웃음). 사실은 통역사나 기자들 중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성향이다. 하나에 집중했더라면 더 대단하게 됐을 수도 있겠지만, 뭐 하나 버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기자와 통역사 모두 직업에서 오는 즐거움이 큰 게, 각 분야의 탑들을 만날 수 있지 않느냐. 그렇게 한 사람을 만나 하나씩만 배워도 훗날 엄청난 것들을 배우게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도 매 순간순간이 배움의 연속이다. 현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들은 모두 내 자산이다. 호기심에서 비롯한 배움, 이것들이 나의 원동력이 아닐까.”
통역, 넓게는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헤아림’이다. 말하는 사람, 상대방의 속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통역 현장에서도 보면 화가 나거나 격앙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경우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의미 전달이 온전히 되지 않았거나 잘못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육아를 하는 엄마로서 배우게 됐는데, 아이들이 제일 짜증이 많을 때가 말문이 트이는 시점이다. 가슴에 있는 것을 표현을 못 할 때 아이들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통역 현장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소통에서 더없이 필요한 부분은 ‘헤아림’이 아닐까.”
통역사는 인하우스(In-House) 통역사와 프리랜서 통역사로 나뉜다. 프리랜서 통역사로서 PR·마케팅은 어떻게 하고 있나
“요즘 통역사가 많아지다 보니 비슷한 질문을 많이 듣는다. 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하기도 하고, 지난해에는 에세이를 출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제 커리어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통역사들이 아무리 많아진다고 해도 결국 통역사의 본 업무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통역 현장에서 정석대로 하는 것이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역사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통역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역할을 다해 달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목표, 계획이 있다면
“올해 상반기 안으로 두 번째 책 집필을 마칠 계획이다. 지난해 첫 번째 에세이인 ‘통역사의 일’에 이은 두 번째 에세이를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은 국제회의 한영통역사가 글을 쓴다고 하니 ‘글을 쓰는 일은 너의 부캐(부캐릭터의 줄임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결코 글 쓰는 일이 부업이나 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온전하게 역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나의 전문 분야인 ‘통역’에서 정점을 찍기 위해 계속 노력해 갈 계획이다.”
통역사를 꿈꾸는 예비통역사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한다면
“연애를 하면서 애인과 한 번도 안 싸울 수가 없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좌절이나 아픔은 한 번쯤은 맞닥뜨리게 마련이다. 큰 방향에서 길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jyr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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