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삼성그룹이 젊은이들의 ‘희망 멘토’를 자처하며 열고 있는 토크 콘서트 ‘열정樂서’.지난 4월 27일 대구에서 열린 일곱 번째 콘서트장에는 2500여 명의 대학생이 빈자리 없이 빽빽하게 자리를 채웠다.
이날 연사로 나선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은 자신을 “국내외 21만여 삼성전자 직원의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삼성 인사의 ‘끝판왕’”이라고 소개해 청중의 웃음을 끌어냈다.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전자. 그리고 이런 삼성맨들의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원 부사장이 들려주는 생생한 채용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인터뷰에 참여한 대학생 기자(사진 왼쪽부터)
- 김준성(충남대 소비자생활정보 3)
- 신민영(동국대 법학 3)
- 조아라(경성대 회계 3)
대학생 기자 처음 입사하셨을 때는 삼성물산 근무를 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사의 ‘끝판왕’이 되셨는데, 비결이 궁금합니다.
원기찬 부사장 열정락서 콘서트에서 한 얘기죠. 사실 대학생일 때의 제 모습과 지금 모습 간에는 연결고리가 별로 없어요. 꼭 제 경우가 아니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인자가 있죠. 바로 주인의식이에요. 오너가 오너십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인이 아닌 사람이 그렇기는 쉽지 않아요. 오너십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결정적 차이예요. 제 경우에도 대학 졸업 후 30년의 과정이 어땠나를 돌아보면, 주인의식이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한 결정적 요소가 아니었나 싶어요.
대학생 기자 입사 후 주인의식을 어떻게 갖게 되셨는지 들려주세요.
원기찬 부사장 저도 처음에는 글씨 못 쓰고 문장력도 떨어진다며 선배들에게 많이 혼이 났어요.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했죠. 선배들이 쓴 품위서도 많이 보고, 특히 신문을 열심히 봤어요. 요즘도 매일 아침 3개 일간지와 2개 경제지를 꼭 봅니다. 몇 년 후 대리쯤 되니 글 때문에 혼날 일은 없더군요. 그러면서 점차 주인의식도 생겼죠. 누가 시켜서 일을 하는 사람에 비해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람은 남보다 넓고 깊게 보는 법이에요. 예를 들어볼까요. “물 떠오라” 시켜서 일하는 사람과 ‘사무실이 건조한지, 목마른 사람이 많은지, 물 대신 음료수가 낫지 않은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고 쳐보죠. 행동은 비슷하지만 훗날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겁니다. 일에 대한 열정도 좋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게 바로 주인의식이에요.
대학생 기자 주인의식 못지않게 청년들에게 강조하시고 싶은 성공의 요건이 또 있나요?
원기찬 부사장 제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 바로 균형감각이죠. 판단력 앞에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 바로 균형감각이에요. 요즘 청년들을 보며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죠. 그런 면에서 인터넷의 발달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에요. 종이 신문을 보는 친구들이 거의 없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인터넷 뉴스만 접하다 보면 한쪽에 몰려 균형감각을 잃기 쉬워요. 입사지원 서류를 보면 두 줄만으로 핵심을 찌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10줄을 써도 뭘 말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균형감각이 모자라기 때문인데, 이런 분들에게 꼭 신문을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대학생 기자 주인의식이나 균형감각을 갖추기 위해 요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원기찬 부사장 긍정적인 사고를 주문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신입사원들에게 복사를 많이 시켰어요. 툴툴거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복사기 앞에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공부하라고 배려했다’는 마음가짐으로 해당 문서를 열심히 읽은 친구가 있다고 칩시다. 훗날 과연 누가 성공할까요. 지식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아요. 특히 요즘은 네이버 ‘지식인 씨’가 모르는 건 다 알려주잖아요? 중요한 건 근본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와 마음입니다. 면접은 그런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자리이고요. 대학생 기자 ‘스펙이 중요한 건 아니다’라는 말씀인가요?
원기찬 부사장 지원 요건인 학점 3.0 이상이나 어학점수는 말 그대로 ‘기본만 보겠다’는 뜻이에요. 세상은 ‘학력, 직급, 나이’에서 철저한 ‘능력’ 위주로 바뀌고 있어요. 명문대가 아니어도 능력만 있으면 됩니다. 삼성이 제일 앞서 나가는 사항 중 하나죠.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사람이 코딩도 제대로 못하는가 하면, 영문과 출신이 마케팅에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어요. 대학 때부터 마케팅 동아리 활동이나 공모전 등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실력을 키운 케이스죠. 컴퓨터에 미쳐 있는 사람이 전공한 사람보다 몇 배 나은 경우가 많아요. 삼성은 학점이나 학교는 보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실력이죠. 스펙으로 표시되지 않는 자기만의 능력을 쌓아야 합니다.”
대학생 기자 삼성전자의 인재상 중 창의적인 인재를 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SSAT 점수와는 별개로 판단하나요?
원기찬 부사장 SSAT 역시 기본을 보는 거예요.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지 적성과 자질을 보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 문제해결 능력인데, 여기서 창의력을 보기는 어렵죠. 창의적 인재 찾기는 기업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숙제예요.
예를 들어 정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를 푸는 과정에 보이는 창의력이 중요해요. 1+1은 2인데, 3이 될 수도 있다는 식이죠. 수학적으론 2가 정답이지만 사람 사이에서는 협업을 잘해 3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남이 보지 않는 방법으로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창의력의 기본이에요. 또 하나, 창의는 머리 좋다고 나오는 게 아니에요. 고민을 많이 해야 창의도 나오는 겁니다. 애플과 스마트폰에서 경쟁하고, TV에서 1등을 하는 실력은 머리 좋은 천재들에게서 나온 게 아니에요. 모두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들이죠. 면접 과정에서도 이런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대학생 기자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해 갖춰야 할 역량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원기찬 부사장 삼성전자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나옵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의 첫 번째는 언어입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죠.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어요. 다만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죠. 이해의 근본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수용할 줄 아는 것입니다. 언어를 잘하려면 그 나라 문화를 잘 알아야 해요. 문화와 언어는 같은 것이기 때문이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찌는 듯한 더위의 아프리카나 중동의 모래바람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인도 같은 경우 섭씨 38도면 ‘시원하다’며 에어컨 판매량이 뚝 떨어집니다. ‘이런 나라에 가서 일해보겠다’는 개척 정신이 반드시 필요해요. 지금 현재보다 여러분 세대에는 개척할 시장이 더 많아요. 삼성전자가 1등이라 하지만 ‘스틸 헝그리’입니다. 현지 음식, 때론 컵라면 먹어가며 도전하겠다는 파이팅 정신 가진 인재가 절실해요. 대학생 기자 이미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보며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원기찬 부사장 많죠.(웃음) 제일 중요한 게 근성이에요. 쉽게 말하면 인내, 참을성 같은 거죠. 우리 세대와 비교했을 때 가장 부족한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요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장점도 많죠. 정보 파악 능력, 네트워크 구축 능력, 어학 실력, 글로벌 경험 같은 건 우리 세대가 따라가기 힘들어요. 확실히 낫죠.
대학생 기자 신입사원들을 위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이 궁금합니다. 신입사원 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원기찬 부사장 일단 입사 직후 24일 동안 그룹 전체 교육이 진행됩니다. 회사에 배치된 후 2주간 교육이 이어지죠. 그런 다음 사업부에 배치되고 또 1주간 교육이 이뤄집니다. 이후 또 한 번 직능별로 1~10주간 교육이 있습니다. 기본 인성, 조직에서 생활하는 방법, 최소한의 업무 전문성 등은 교육시킨다고 봐야죠. 하지만 중요한 건 앞서 말했듯 균형감각과 근성이에요. 이런 면은 한 달 교육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죠. 그래서 평소 기회가 닿는 대로 젊은이들에게 책도 보고, 특히 신문을 많이 보라고 얘기합니다.
대학생 기자 임원 면접의 경우 인성을 주로 체크하는 것으로 아는데, 주로 하시는 질문이 있나요?
원기찬 부사장 따로 정해놓은 건 없어요. 질문 자체는 계속 바뀌게 마련이죠. 흔히 말하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종합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죠.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도 정답보다는 균형감각이나 과정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예전엔 ‘기업의 목적’을 물었을 때 ‘이윤 추구 못지않게 사회적 기여도 중요하다’는 답이 많았는데, 요즘엔 또 ‘이윤 추구’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달달 외우는 답은 의미도 없고, 변별력도 떨어지게 마련이죠. 그보다는 답변 속에 밸런스가 갖춰져 있나, 다른 생각을 포용할 수 있나 등이 중요합니다. 논쟁에서 끝까지 이기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죠. 과연 협업에서 어떤 사람이 더 유리할까요. 판에 박힌 대답보다 어떻게 답을 하느냐가 더 중요해요.
대학생 기자 면접 과정에서 인상에 깊이 남은 인재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원기찬 부사장 구체적인 학교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통섭형 교육’이 뛰어난 학교가 있어요. 이 학교 영문과 출신 지원자가 있었는데 마케팅 분야에 지원했더군요. 사고의 폭과 지원 분야에 대한 지식이 관련 전공자보다 훨씬 뛰어났어요.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영문과인데 학교에서 폭넓게 가르치는 편이다”고 답했어요. 저는 이 학교의 방식이 맞다고 봐요. 그래서 ‘일전다능(一專多能)’이란 표현을 즐겨 쓰죠.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가지 자신 있는 분야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경영학 중에서도 마케팅은 자신 있다’는 식이죠. 이런 인재는 당연히 채용 1순위예요.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업무 능력도 뛰어납니다.
대학생 기자 처음 입사하셨을 당시와 지금의 인재상에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원기찬 부사장 1984년에 입사했는데, 당시는 무조건 ‘워크하드’였어요. 농업적 근면성으로 열심히만 하면 될 때였죠. 예전에는 삼성이 팔로어의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TV, 휴대폰, 반도체, 모니터 모두 글로벌 1등이죠. 1등이 되면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합니다. TV를 예로 들면 LCD를 대중화시킨 건 일본의 샤프예요. 하지만 얇고 예쁘게 만든 건 삼성이죠. LED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든 것도 삼성입니다.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서 열심히만 하면 되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삼성의 가이드도 ‘워크하드’에서 ‘워크스마트’로 바뀌었죠. 얼리버드 타입이 있는가 하면 오후부터 발동 걸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아침보다 오후에 나오는 게 좋죠. 전날 야근으로 밤 1시에 퇴근한 사람이 다음날 아침 8시에 칼같이 나온다고 해서 과연 일이 될까요. 오히려 늦잠 자고 사우나 하고 오후에 나오는 게 낫죠. 삼성이 ‘자율 출근제’를 도입한 이유예요.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창의적으로 똘똘하게 일하는 것, 그게 바로 워크스마트입니다.
대학생 기자 자신의 꿈을 좇는 자와 회사에 충실한 자가 있다면, 어떤 사람을 채용하시겠습니까?
원기찬 부사장 두 개가 일치되는 사람이 제일 좋겠죠. 그런데 현실에서 개인의 꿈과 회사의 충성도가 구분되진 않아요.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회사에 충실한 사람이겠죠. 이상적인 건 두 개의 상이한 목표 가운데서 긍정적 사고와 주인의식을 갖춘 인재입니다. 사실 아직도 제 꿈속엔 영업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온전히 개인적인 꿈을 포기한 채 회사를 위해서만 일한 걸까요? 그건 아니에요. 인사 업무에서도 커다란 가치를 창출해왔죠. 제 꿈의 반 정도는 회사와 함께 이뤘다고 생각해요. 그 맛에 여기까지 온 거 아닐까요?(웃음)
대학생 기자 끝으로 취업과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원기찬 부사장 일을 잘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은 세 가지가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러면서 의미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이죠. 쉬운 말이지만 현실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고 자신의 꿈에 맞지 않는 경우라 해도 미리부터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긴 시각으로 ‘지금의 경험이 훗날 내 일을 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게 좋아요.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을 예로 들어볼까요. 마쓰시타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중퇴의 학력에, 어릴 때부터 가난했고, 건강도 좋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 서길 좋아했죠. 또 가난했기 때문에 잘 살아보겠다는 승부근성을 키울 수 있었어요. 평생 건강에 신경 쓰다 보니 95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죠. 누가 봐도 약점투성이었던 사람이 ‘경영의 신’으로 불리게 된 건 현재의 처지를 비관하며 좌절하기보다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긍정적 사고로 승화시켰기 때문이에요. 요즘 청년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나만의 주장,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열려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투철한 목표의식이나 목적, 주장도 좋지만 오픈 마인드가 없으면 100% 불리하게 돼 있어요. 저도 인사 업무만 만 29년인데 아직도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요.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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