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최근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냥 가사가 아닌 ‘요즘 가사’다.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다’며 짜증 내는 이부터 ‘재미있고 쉽게 기억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까지 팽팽하게 엇갈린다. 단순히 최신 음악 노랫말이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가사는 이전의 가사들과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른 걸까. 가사는 시대를 타고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변해가는 법. 당대 인기를 끌었던 대중음악의 가사들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 살펴보자.

1980년대 조금 더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고운 해야 아침을 기다리는 앳된 얼굴 어둠이 걷히고 햇볕이 번지면 깃을 치리라 - 마그마 ‘해야’ (1집 ‘마그마’, 1981)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을 수는 없겠지 나의 미래는 때로는 힘이 들겠지 그러나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릴 거야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 - 들국화 ‘행진’ (1집 ‘행진’, 1985)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중략) 둘러보아도 찾을 길 없네 그대여 힘이 돼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 - 김현식 ‘가리워진 길’ (3집 ‘비처럼 음악처럼’, 1986)

바람이 불면 내가 알고 있는 허위의 길들이 잊혀질까 바람이 불면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 동물원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2집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1988)


1980년대의 대중음악은 요즘 대학생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억압을 받고 있었다. 양희은 씨의 ‘아침 이슬’이 단지 시위 현장에서 많이 불렸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 유명한 일화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당시 상황을 반영하듯 가사도 ‘꿈’ ‘희망’ ‘미래’에 관해 논하는 경우가 많다. 80년대 초반에는 하드록 시장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강력한 사운드와 함께 역동적인 가사들이 선보였다. 더불어 인문·사회과학에 기초한 세상보기가 널리 퍼지면서 젊은 층의 고뇌, 과도기적 시대의 고민을 가사를 통해 다루기도 했다.



1990년대 인디 음악과 아이돌 음악의 태동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 한 민족인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 -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 (3집 ‘발해를 꿈꾸며’, 1994)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너의 목소리가 들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델리스파이스 ‘챠우챠우’ (1집 ‘Deli Spice’, 1997)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노래하면 잊혀지나 사랑하면 사랑받나 돈 많으면 성공하나 차 있으면 빨리 가지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달려야 해 바보놈이 될 순 없어 말 달리자 - 크라잉 넛 ‘말 달리자’ (1집 ‘말 달리자’, 1998)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그래 우리가 만든 헌장대로 지켜진 게 뭐가 있는가 그들은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보호받지도 못하고 타고난 권리조차 지켜주지 못했고 그래 언제까지 이 따위로 살 텐가 - H.O.T. ‘아이야’ (4집 ‘I Yah!’, 1999)


당시의 음악 시장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획기적인 음악 스타일은 물론, 뒤이은 1세대 아이돌 그룹의 등장으로 이때부터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가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반기에는 인디 가수들이 메이저 시장으로 진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델리스파이스’는 단 두 문장의 가사로 ‘챠우챠우’라는 곡을 완성했다. ‘챠우챠우’가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사람들은 인디 신의 음악과 가사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주목할 만한 점은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 1996년 음반 사전심의가 철폐되면서 ‘닥쳐’라는 가사가 무사히 노래방에서 울려퍼질 수 있었다는 사실.


2000년대 이후 가장 솔직하고 자극적인, 그러나 일상적인 노랫말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넌 내게 반했어 솔직하게 말을 해봐 도도한 눈빛으로 제압하려 해도 난 그런 속임수에 속지 않아 넌 내게 반했어 애매한 그 눈빛은 뭘 말하는 거니 - 노브레인 ‘넌 내게 반했어’ (3.5집 ‘Stand Up Again!’, 2004)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난 다른 사람은 싫어 니가 아니면 싫어 I want nobody nobody nobody nobody - 원더걸스 ‘Nobody’ (싱글앨범 ‘The Wonder Years-Trilogy’, 2008)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쓱 지나가도 -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 (1집 ‘별일 없이 산다’, 2009)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독창적 별명 짓기 예를 들면 꿍디꿍디 맘에 들어 손 번쩍 들기 정말 난 NU 예삐오 - f(x) ‘NU 예삐오(NU ABO)’ (EP앨범 ‘NU 예삐오(NU ABO)’, 2010)
[대중음악 가사 들여다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노랫말’ 그게 대체 어떻길래?
믿었던 니가 친구인 니가 내게 이럴 수 있어 널 저주하겠어 이제 그 더러운 입 제발 다물래 이 피눈물 다 돌려줄게 똑똑히 귀에 새겨 너를 절대 가만 안 둬 언젠가 알게 될 거라 생각은 했겠지 널 용서 못해 이제부터 넌 전쟁이야 - 엠블랙(MBLAQ) ‘전쟁이야’ (미니앨범 ‘100%Ver.’, 2012)



2000년대 대중음악은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다. 가사는 솔직해지고 자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주제는 오히려 일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부담 없으나 핵심을 찌르는 단어들의 사용으로 홍대 출신 가수들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대중음악 시장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동일 가사의 반복과 영어의 사용. 이는 후렴구를 강조하는 노래가 상승세를 타며 생긴 현상이다. 아이돌 가수의 음악을 대표하는 반복성 짙은 노래들은 같은 단어, 특정한 의미가 없는 영어의 반복으로 후크송의 운율감을 더한다. 그러나 문학성이 결여되고 무의미한 문장들 때문에 ‘언어를 파괴한다’는 비판도 사고 있다.



Q&A 작사가의 생각은?

심재희 작사가 (대표곡 : 윤하 ‘기다리다’, 성시경 ‘잘 지내나요’, 소야 ‘눈물아 슬픔아(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OST)’ 등)

Q. 소위 ‘요즘 가사’가 문제시되는 이유는 뭘까요?

A.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서’일 듯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죠. 가사는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글이고, 대중음악은 특히 더 그래요. 그런데 그 가사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제 역할을 못하는 거예요. 참신함이나 독특함은 누구든 좋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도를 넘어서 언어 파괴까지 일어난다면 문제가 되는 거죠.



Q. 그럼 ‘요즘 가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A.
일정한 ‘콘셉트 송’을 다른 음악들과 같은 잣대로 봐서는 안 돼요. 발라드의 경우는 감정 이입이 가장 중요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모든 가사가 구구절절해야 할 필요는 없죠. 또 시대적인 변화가 중요하다고 봐요. 세상이 점점 바빠지면서 음악의 가장 큰 주제인 사랑도 같이 쉬워지는 것 같아요. 몇 초 만에 상대방과 연락할 수 있으니 이젠 편지를 기다리거나 공중전화를 붙들고 있지 않잖아요. 시대와 대중이 과정에 얽매이기보다 자극적인 결과를 찾으니까 가사나 음악의 소재도 거기서 나오게 되는 거죠.



Q. 작사가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A.
대중음악 가사라고 했을 때 앞에 ‘대중’이라는 글자가 괜히 붙는 것이 아니에요. 분명 대중이 원하는 상품을 뽑아낼 줄 알아야 하고 시대의 흐름도 따라가야 하죠. 하지만 작사가로서 지향해야 할 바는 분명해요. 가사는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해요.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이 역할이죠. 물론 가수의 이미지, 나이, 성별, 발음, 감정 등 모든 요인이 중요하지만 적어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진심을 다해서 써야 하는 건 확실해요. 게다가 K-POP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요즘엔 작곡가들도 같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글 박혜인 인턴 기자 pi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