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겸 교수 이윤석

마른 몸의 남자가 다가와 꾸벅 인사를 한다. 길쭉한 몸이 90도로 접혔다가 반듯하게 펴질 때 몸에 배어 있는 정중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주 본 그가 활짝 웃는다. 눈가와 입가에 웃음이 물결칠 때 주름에 배어나는 천진함이 반갑다. 문득 생각했다. 이 사람은 스스로를 구기면서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일까. 개그맨 이윤석의 첫인상이었다.

누구나 알아주는 명문대를 나왔고 재학 중에 데뷔를 했지만 ‘우연의 산물’이라고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 국내 최초의 박사 개그맨이자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이지만 이마저도 “제자들한텐 그저 동네 형”이라며 웃어넘기는 사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가 전하는 “평범하다”는 자기소개가 이상하게도 진심으로 다가왔다.

아주 특별한 보통 사람 이윤석과 나눈 대화 몇 조각을 전한다. “평범해도 괜찮다”는 그의 위로가 이 시대 평범한 청춘들에게 전해지길.
[나의 꿈 나의 인생] 꿈이 없어도 좋아, 청춘이라면
조각1. ‘그저 그랬던’ 대학 시절

“대학에 가서 제일 열심히 했던 건 여학생 따라다니기죠.”

장난기 어린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20년 전 새내기 이윤석은 ‘캠퍼스 커플’의 로맨스를 그리며 동아리를 전전하던 학생이었다. 풍물패를 비롯해 유도, 역도 동아리 등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성과는 변변찮았다. 대부분이 그렇듯 흥미가 시들해진 그는 동아리 활동도 이내 그만두었다고 회상했다.

연애 사업 다음으로 열심히 한 것은 마음 맞는 친구들과 술 마시기. 알려진 바대로 그는 헤비메탈 마니아다. 메탈리카, 카르카스와 같은 밴드의 음악을 좇아 신촌과 홍대 앞의 ‘록바(Rock Bar)’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밴, 프리버드, 크로스아이, 시저, 레인보우 등 당시 그 일대를 주름잡았던 유명한 클럽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백스테이지’라고 홍대 앞에 헤비메탈만 틀어주는 곳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없어졌죠. 클럽에서 만난 친구들이랑 모여서 헤비메탈을 듣고 있으면 지나가던 선배들이 ‘제국의 앞잡이’ 음악을 듣는다고 야단치곤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다 낭만이었던 것 같아요.”
[나의 꿈 나의 인생] 꿈이 없어도 좋아, 청춘이라면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국문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던 것도 단순히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졸업하면 국어 교사가 되거나 언론 계통으로 진출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는 그는 “꿈이 없는 아이”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연애 경험 전무. 뚜렷한 꿈 없음. 유일한 취미는 술 마시며 음악 듣기. 막연히 하루하루를 살던 대학생 이윤석은 ‘그저 그런 청춘’이었던 셈이다.

“사실은 저처럼 꿈이 없는 사람이 더 많아요.” 그가 말했다. “김연아처럼, 서태지처럼 처음부터 목표를 정해서 꾸준히 달려가 성취해낸 사람은 생각보다 적어요. 살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길이 보이고 방향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꿈이 없다고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인생의 길은 사람에 따라 조금 늦게 나타날 수도 있는 것. 어릴 때부터 한 목표를 정하고 정진해온 소수의 사례에 굳이 자신을 맞출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아직 가지 않은 길. 어쩌면 가장 큰 가능성의 길이 아닐까.



조각2. 삶의 길은 우연의 연속

‘개그맨’이라는 삶의 길 역시 우연히 찾아왔다.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추억을 만들자며 친구들과 개그맨 시험에 응시한 것이 계기였다. “방송국 구경이나 좀 하자는 뜻이었지 진짜로 뽑힐 줄은 몰랐죠. 같이 시험 보기로 한 친구가 둘이 있었는데 시험 보는 날 그들은 오지도 않았어요.”

얼떨결에 참가한 개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타면서 그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같이 수상했던 서경석 씨와 개그 콤비로 활동했어요.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요. 처음에는 이 길이 내 길이라는 것도 몰랐고 큰 포부도 없었죠. 단지 방송국에서 나오라고 하니까, 당장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던 것뿐이에요. 사람들이 점점 알아보고, 인기가 생기고, 수입이 늘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죠.”

개그맨이란 직업에 대한 확신이 생긴 건 오히려 3년이 지나 인기가 좀 시들해졌을 때였다. ‘개그맨이란 일이 나쁘지 않다. 재미있다. 인기가 좀 떨어졌지만 여기서 주저앉기보다 한 번 더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의 꿈 나의 인생] 꿈이 없어도 좋아, 청춘이라면
그때부터는 ‘꿈’이 된 개그맨의 삶을 위해 살았다. 개그를 연구하고 ‘허리케인 블루’라는 립싱크 코미디를 선보였다. 더 멋진 개그맨이 돼야겠다는 꿈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그의 일이 된 개그맨이란 직업은 어느새 평생 직업으로 그의 삶에 함께 하고 있다.

“우연히 내딛기 전엔 몰랐지만 이게 제 길이었던 거죠. 바람직한 경우는 아닐지 몰라도 그렇다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진로를 만들어가기보다 우연히 결정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줄을 잘못 서서 원래 학과가 아닌 다른 전공을 시작하게 된 어느 물리학자는 우연히 만난 그 학문에 재미를 느껴 후에 노벨상 수상자까지 됐다는 일화도 있지 않은가. 세상을 바꾼 과학적 발견도 의도했던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다. “‘우연’이란 요소가 세상을 더 의미 있고 즐겁게 만들어준다”고 그는 말했다.

‘꿈을 찾아서 매진하라’는 이야기 일색인 강연을 접할 때마다 그는 ‘10년 동안 하나만 하다가 내 길이 아닌 걸 알게 되면 어떡하려고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젊을 땐 오히려 다양한 것을 해보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해요. 새로운 일에 자꾸 발을 담가봐야 그것이 내 발에 맞는지 아닌지를 알게 되는 거지, 처음부터 알긴 힘들죠. 중요한 건 내 일을 찾을 때까지 자꾸 시도해보는 겁니다. 발도 안 담근 채로 자꾸 내 발에 뭐가 맞을까를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닐까요?”
[나의 꿈 나의 인생] 꿈이 없어도 좋아, 청춘이라면
조각3. 평범한 사람이 결국 이기더라

개그맨이 된 뒤 그가 깨달은 현실은 ‘세상엔 생각보다 웃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방송국 개그맨실은 전국에서 웃기는 사람들을 다 모아놓은 곳인데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많겠어요. 웃기는 걸로는 제가 1등이 못 되겠더라고요. 어딜 가도 저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었으니까요.”

그가 인정하는 최고의 동료 개그맨은 유재석과 이경규. 타고난 코미디언인데다 지극히 성실하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런닝맨’ 촬영 현장에서 유재석 씨는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가장 오래 뛰고, 또 가장 빨리 뛰어다니는 사람이죠. 이경규 씨는 어떻고요. 누구보다 먼저 스탠바이하고, 누구보다 먼저 얘기하고, 끝난 뒤에는 라면 회사로, 치킨 회사로, 또 영화사로 부지런히 돌아다니세요. 타고난 재능에 노력까지 하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못 이기겠더라고요.”

자신보다 더 웃기는 개그맨들을 보며 좌절한 적은 없었을까. 우문을 던지니 현답이 돌아왔다. 평범함과 특별함은 상대적인 가치라는 것. “학창 시절엔 저도 공부로 상위 1% 안에 든 적 있었죠. 개그맨 생활을 하면서도 10% 안에 든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10% 안에 들어가보면 그 안에서 또 10%가 있고 그러다 보면 또 내가 평범한 사람이 돼버리더라고요.”

차라리 평범하다고 인정하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노력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겪어보니 그것은 0.00000001%의 이야기. 재능이 있고 노력까지 더하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더라는 것. 그래서 대개는 노력하는 사람이 이긴단다. 재능이 부족한 사람도 노력하면 결국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는 것이 그가 20년간 방송인으로 살아오며 깨달은 점이었다.
[나의 꿈 나의 인생] 꿈이 없어도 좋아, 청춘이라면
남들보다 뛰어난 점과 부족한 점을 알게 된 것도 시간이 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그렇게 찾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다른 개그맨들보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이 나의 장점이니까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하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었어요.”

국내 1호 박사 개그맨이란 수식어는 그런 고민과 실천을 거쳐 탄생했다.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개그맨’과 ‘박사’라는 두 이름이 부딪히지 않고 그의 삶 속에서 스며들었던 까닭은 스스로가 가진 장점 안에서 길을 찾았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른다.

“지금 제가 가르치고 있는 개그과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게 있어요. 방송하고 상관없는 일이라도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하라는 이야기죠. 당장은 쓸모없어 보여도 남들이 볼 때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만들면 분명히 무기가 됩니다. 세상에 소용없는 게 없더라고요.”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또 하나의 모습은 ‘노력하는 코미디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 “저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먼저 목표를 세우고 질주하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하지만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잘해내려고 하는 편이에요. 성실함을 인정받으니까 끊임없이 새로운 일이 주어지더라고요. ‘타고난 재능이 없더라도 노력하면 너네도 나만큼 될 수 있어’ 이런 마음을 심어주고 싶어요.”



조각4. 일등석에 오르기 위해 보내는 시간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그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타고 있던 비행기가 10초 뒤에 추락한다면 남은 시간 동안 뭘 하겠어요? 1번 연인에게 전화한다, 2번 장인한테 전화한다, 3번 부모님께 전화한다, 4번 일등석에 앉아본다.”

얼마 전 KBS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에서 마련한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다. 이 질문을 했을 때 모든 청중이 4번 문항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그가 다시 말했다. “우리 인생도 어떻게 보면 10년, 100년에 걸쳐 추락하는 비행기나 마찬가지죠. 10초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일등석에 앉아보려는 사람들 이야기에 모두 웃었지만 제가 보기엔 ‘인생’이라는 비행기 안의 상황도 비슷한 것 같아요. 대부분 어떻게든 일등석에 앉아보려고 왔다 갔다 하다가 비행기와 함께 추락해버리는 것 같아요. 이코노미석에 있더라도 조금 더 재밌게, 조금 더 편안하게, 조금 더 행복하게, 그리고 조금 더 살뜰하게 우리 삶을 가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어느 시인이 말했듯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꿈꾸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그리워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청춘의 얼굴이다. 불안한 그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새내기 시절로 돌아간다면 ‘연애’와 ‘악기’에 시간을 쏟겠다고 말했다. 소박한 그 바람처럼 이 시대 대학생들에게도 많은 것을 주문하지는 않았다. 대신 청춘이 가진 ‘미완의 불안’을 ‘끝없는 도전’으로 이어갈 것을 강조했다.

“내가 찾는 물고기가 어느 물에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자기 스스로 물고기가 있을 자리를 지레짐작하는데 여러 곳에 낚싯대를 드리워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있다면 놓지 말고 계속하세요. 안 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나아요. 젊음은 무엇을 해도 좋은 시간이니까요. 세상에 소용없는 건 없다니까요.”
[나의 꿈 나의 인생] 꿈이 없어도 좋아, 청춘이라면
1972년 2월 14일 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중앙대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
중앙대 대학원 신문방송학 박사
1993년 MBC 개그 콘테스트로 데뷔(금상)
1997 MBC코미디대상 남자우수상
2004 MBC 방송연예대상 쇼버라이어티 부문 우수상
2005 MBC 방송연예대상 코미디시트콤 부문 최우수상
2007년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엔터테인먼트경영학과 겸임교수
2009~현재 서울예술전문학교 방송연예학부 교수(학부장)
저서 웃음의 과학(2011. 사이언스북스)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