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스포츠 영웅 이야기
1562000년 9월 27일 구대성이 던진 공의 개수
구대성에게는 ‘일본 킬러’라는 별명이 있다. 일본만 만나면 유독 강한면모를 보인 덕분이다. 그가 ‘킬러 본능’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경기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에서 일본과 만났을 때다.
이날 구대성이 던진 공의 개수는 156개. 지금은 메이저리거인 일본의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따냈다. 5피안타, 3볼넷에 탈삼진은 무려 11개였다. 이 경기는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8회까지 무실점으로 일본 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던 구대성은 9회초 1점을 내줬다. 1아웃에 주자 1루. 김인식 감독이 투수 교체를 위해 마운드로 올라왔다. 하지만 구대성은 단호했다. “겨우 2명만 잡으면 되는데 왜 바꾸려 하십니까. 계속 던지겠습니다.”
김 감독은 “절대로 안타를 맞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받고서야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구대성은 삼진, 범타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한국은 동메달을 획득, 손민한·장성호 등 5명의 선수가 병역 면제 혜택을 받았다. 또 다른 별명,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87년 대전고의 에이스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상대는 고교 야구 강호인 신일고. 1회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세 타자 연속 볼넷, 노아웃 주자 만루.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긴장했나?”라는 물음에 어린 투수는 답했다. “괜찮습니다. 일부러 그런 겁니다.”
앞으로 경기를 하다 보면 수많은 위기 상황에 직면할 터. 일부러 무사 만루를 만든 후 자신이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하는지 시험하려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운드로 내려간 감독에게 보란 듯 그는 4·5·6번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그 투수의 이름은 다름 아닌 구대성. 불혹이 넘은 나이임에도 먼 타지인 호주에서 아직 현역으로 뛰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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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4관왕에 오르다
1996년 시즌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투수를 꼽으라면 단연 구대성일 것이다. 프로 4년차였던 그 해의 구대성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55경기에 등판, 다승(18승)·구원(24)·평균자책(1.88)·승률(8할5푼7리)을 기록하며 4관왕에 올랐다. 18승 중 한 번의 완투도 있었다.
탈삼진까지 1위였다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관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지만 주형광(롯데)이 221개, 정민태(태평양)가 203개를 기록하며 아쉽게 3위(183개)에 그쳤다. 하지만 이 두 선수는 200이닝을 소화하면서 기록한 것인 반면 구대성은 겨우 139이닝 동안 잡아낸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그의 9이닝당 탈삼진은 11.85개로 한 회에 1개 이상은 꼭 삼진을 잡은 것이다. 정규리그 최우수 선수와 골든 글러브(투수 부문)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이름 앞에 늘 붙는 수식어 ‘대성불패’는 이 해에 가장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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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쳐낸 2루타 개수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활약은 미국·일본 등 해외 프로 구단의 스카우터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구대성은 일본 오릭스 블루웨이브를 거쳐 2005년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 불펜 투수로 입단했다.
그리고 단숨에 전국구 스타가 됐다. 당시 최고의 투수인 랜디 존슨을 상대로 2루타를 때려냈기 때문이다. 7회말 타석에 오른 구대성은 볼카운트 1-1에서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공은 큼지막한 궤적을 그리며 중견수 뒤로 넘어갔고 가운데 담장에서 데굴거렸다.
프로 데뷔 첫 안타를 랜디 존슨을 상대로 뽑아낸 것. 심지어 2루타였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계속 이어졌다. 다음 타자인 호세 레이예스가 희생 번트를 대자 구대성은 3루를 돌아 홈까지 쇄도, 포수의 태그를 피하며 1득점을 올렸다. 메츠의 홈 경기장인 시 스타디움이 그의 성인 ‘Koo’로 가득 찬 것은 당연했다.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사진 한국경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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