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도 다르지 않아요. 인터넷에 없으면 바로 연구실 문을 두드립니다. 예전엔 동기, 선배, 도서관 다 거친 다음에 교수 연구실을 찾아갔지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없으면 바로 와서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없다고 질문합니다.”
학생의 질문은 교수법 중에서 가장 좋은 방식이다. 그런데 교수들은 왜 학습 질문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할까? 바로 사고(思考)하지 않는 학습법에 대한 우려일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규격화된 교육에 익숙하다. 입시생들은 인터넷 강의나 EBS 강의를 통해서 모두가 같은 내용을 듣고 같은 방식으로 공부한다. ‘공신비법’까지 나와서 학습시간과 계획표 짜는 것까지 똑같아지고 있다. 시험에 나오거나 강사가 중요하다고 하면 외운다. 암기로 익힌 학습은 동기 부여가 되기 어렵다. 한국의 영어 학습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인터넷 정보와 암기학습은 분명히 ‘시행착오’를 줄여줄 것이다. 성공을 훨씬 빨리 맛보게 해줄 지도 모른다. 그래, 경제적이다. 그러나 학습은 그렇게 해서 정답을 얻는다고 자신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 필자의 경험상 자기 방식대로 시행착오를 겪은 공부는 다른 학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더 오래 기억하고 이해의 넓이도 크다. 즉 학(學)이 되면서 습(習)이 저절로 된다.
필자는 학부 시절 독일 낭만주의에 대한 논술 시험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대부분의 학생은 학점 높은 친구의 노트를 복사해서 통째로 외우는 수준의 공부를 했다. 예비역이던 필자는 나이 25세인데도 그런 암기 공부를 하는 것이 싫었다.
도서관에서 낭만주의와 관련한 책 4권을 빌렸다. 그리고 5회 정도를 반복해서 읽었다. 처음엔 아무런 감(感)도 없었는데 3번 이상 읽으니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독일 낭만주의뿐 아니라 프랑스·영국의 낭만주의와도 비교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됐다.
시험 날 필자는 마음이 가벼웠다. 왜냐하면 오늘은 내가 그간 공부한 것을 펼쳐내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시간 30분 동안 답안지를 썼다. 아니 내 생각을 펼쳤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 입력기간에 담당교수를 복도에서 만났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25년 동안 교수 생활하면서 너처럼 앞뒤 안 가리고 공부한 답안지는 처음 봤다. 진짜로 공부한 흔적이 보이더구나. 이번 강좌에서 너만 A+다.”
필자는 그 전까지 신문을 읽어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책을 읽어도 그냥 외우기만 했다. 그런데 우등생들의 노트를 빌려서 하는 공부가 아닌 스스로 찾아서 하는 진짜 대학(大學) 공부를 하고 나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문의 행간이 읽히기 시작했다. 사회 현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원론적 도서들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머리가 밝아졌다. 정말 놀라운 현상이었다.
우리 사회는 경제적인 것을 최고로 친다. 족집게 강사를 만나서 최단 시간에 토익 점수를 높이는 것이 스펙 쌓기엔 경제적이다. 그러나 정말로 필요한 영어 실력은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학(學)보다는 습(習)이 중요하다.
습(習)은 혼자 익히면서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진정한 실력이다. 중·고등학생이 이용하는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대학생을 얼마나 보았는가? 필자는 그런 방학생활을 보내봤다.
정말 효과가 크다. 학원을 다닐 때만큼 진도가 빠르진 않았으나 탄탄하게 기초를 쌓아가면서 혼자 하는 공부의 재미를 익혔다. 그 다음 학기부터는 자기주도 학습이 저절로 됐고, 강의 시간도 훨씬 재미있었다.
아직도 학원을 안 다니면 허전하고, 우등생의 노트를 보지 않으면 불안하고, 인터넷에 없는 정보는 없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는 혼자 공부해도 괜찮다.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자기주도 학습을 시작해보자! 이우곤 이우곤HR연구소장
KTV '일자리가 희망입니다' MC.
건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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