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래왔듯 세상에는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고 있는 부분만큼 그 이면에는 짙은 그늘이 길게 늘어져 있다. 그리고 이따금 그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은 그 잔인한 수법만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나의 꿈 나의 인생] 한국의 셜록 홈즈를 꿈꾸다…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 교수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범죄 심리 전문가) 표창원 교수. 크고 작은 사건 현장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수없이 목격했던 그는 그 원인을 “가정과 학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인과 정서적 교감을 하지 못한 채 자라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그간 억눌렸던 욕구와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리는 것이 흉악 범죄의 본질”이라고 전한다. 이것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던 자신과 주위 친구들의 유년 시절을 되돌아보며 느낀 술회이기도 하다.

각종 강력 범죄 뿐만 아니라 청소년 일탈, 가족 해체, 부정부패 등 부조리한 사회 문제를 보면 어김없이 일갈을 날리는 표 교수. 그만의 날카로운 분석은 세상에 ‘정의’를 심기 위한 20년 베테랑의 꾸준한 노력이다. 뚜렷한 이목구비 때문에 조금은 냉철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의 말 속에는 웃음과 사랑 그리고 따스함이 묻어났다.
[나의 꿈 나의 인생] 한국의 셜록 홈즈를 꿈꾸다…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 교수
그가 오래전부터 롤모델로 삼았던 ‘셜록 홈즈’의 모습 그대로였다. 인터뷰는 늦은 5월의 어느 날, 표창원 교수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표 교수가 잠시 전화받는 틈을 타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 벽에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크레이그와 폴, 두 형제의 삶을 잔잔한 화면 속에 담아낸 영화다. 두 형제가 보트를 훔쳐 타고 거친 강 물살을 가르며 래프팅을 즐기는 장면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표 교수의 유년 시절은 영화 주인공의 그것과 무척 닮아 있다.

“한마디로 장난꾸러기였습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얄개’라는 단어가 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 같아요. 장난기가 넘치면서도 모호한 정체성 때문에 방황하는 소년을 일컫는 말이죠.”

하지만 장난이 도를 지나치면 화가 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삶의 방향이 전환되기도 한다. 표 교수가 그랬다. 고등학교 시절 표 교수가 살았던 서울 창동에서는 파이프로 된 TV 안테나를 끊어서 안에 화약을 채우고 심지를 단 일종의 사제 폭탄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 일이 있던 날은 마침 체력장 기간이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체력장 감독을 가셨고 저희끼리 자율 학습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축축 늘어지는 아이들이 많았죠. 그때 ‘이 친구들에게 활력을 주자’는 생각으로 사제 폭탄을 만들어 터뜨렸어요. 아이들이 놀라긴 했지만 재미있어 하더군요.”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어느 친구가 “축구부에 경기용 화약이 있으니 그걸 넣어서 한 번 더 해보자”라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경기용 화약이 일반 화약보다 빨리 연소하고 그만큼 위력도 상당하다는 것을 몰랐던 거예요. 심지가 있긴 해도 안전한 장소에 놓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거죠. 손에 들고 창밖으로 내밀어 불을 붙이는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른손이 피로 범벅돼 있었어요. 아이들은 제 손가락이 잘려나간 줄 알았다고 해요.”

살갗이 모두 벗겨지고 화상도 입었지만 어떻게든 부모님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실망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일을 숨길 수는 없는 터. 이윽고 부모님이 찾아왔고 혼날까 두려웠던 표 교수에게 부모님은 “걱정 말라, 괜찮다”며 위안을 줬다고 한다.

“그래서 제가 청소년들의 심리를 잘 알아요. 청소년들은 자신이 큰 사고를 치면 부모의 분노가 두려워 부모를 피하려 하죠. 하지만 부모는 오히려 자식을 보듬어줍니다. 평소에는 잘되라고 야단 치고 혼도 내지만 정말 커다란 문제를 자녀가 겪으면 안심시키려고 노력해요.”

다행히 어린 나이여서 항생제가 잘 들었고, 신경도 손상되지 않아 손가락 절단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입은 상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손가락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 상처의 역사는 그가 미래의 꿈을 가진 기간과 일치한다.

“돈이 들지 않는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또 형이 돈이 많이 드는 의대에 갔기 때문에 짐을 더해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국가에서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는 학교는 사관학교, 철도대, 경찰대 등이 있다. 그중 그가 목표로 삼은 곳은 바로 지금 교수로 재직 중인 경찰대다. 정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과 대학 팸플릿 첫 장에 그려진 캠프파이어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정의를 추구하면서도 청춘의 자유와 낭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여겨졌다. 목표를 갖게 된 표 교수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임에도 공부에 매진, 화장실에서 쓰러져 의사에게 ‘공부 금지 명령’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한다.

“경찰대 시험 때는 운도 좋았어요. 국영수 3과목 중 수학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붕대 감은 손으로 쓰면서 문제를 풀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채점해 보니 제가 푼 문제가 다 맞아도 과락을 면치 못하는 수준이었어요. 하지만 합격했습니다. 행운이었죠.”

도산 안창호의 굳은 의지 존경해
[나의 꿈 나의 인생] 한국의 셜록 홈즈를 꿈꾸다…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 교수
꿈에 그리던 경찰대에 입학했지만 새벽 기상, 제식 훈련 같은 규칙과 규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자유분방한 소년이 꼭 짜인 틀 속에 들어갔으니 답답할 법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것을 하나의 시험으로 여겼다.

‘이 정도도 견뎌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내 꿈을 실현할 기회는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힘든 과정을 이겨냈다고 한다.

“또 다른 어려움은 선배와의 관계였어요. 조직 사회의 특성 때문에 선배가 후배 위에 군림하고, 한 사람의 잘못을 집단 전체의 잘못으로 여기는 것 등이 있었죠. 그런 현장에 있을 때마다 손을 번쩍번쩍 들었습니다.”

그런 그를 격려해주는 선배도 있었지만 못마땅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밤에 호출을 당해 호되게 혼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뜻을 굽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잘못했다면 정식 절차를 거쳐 징계를 받을 수는 있지만 사적인 방법을 통한 제재는 어긋난 것이라는 신념도 있었다.

“이때의 경험들이 마음속에서 큰 힘이 됐어요. 스스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던 경험은 후에 신념과 그 신념에 대한 믿음으로 자리했습니다.”

문득 그가 존경하는 인물이 궁금했다. 지조 있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나 맞았다.

“어렸을 때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을 좋아했어요. 다른 세력과 결탁해 즉각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고 꿋꿋하게 올바른 길을 가는 자세가 저를 사로잡았죠.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점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꿈 나의 인생] 한국의 셜록 홈즈를 꿈꾸다…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 교수
“나의 길은 범죄 수사”

남자라면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형사를 꿈꾼다. 범인이 남긴 조각의 단서를 모아 마치 퍼즐을 맞추듯 전체 밑그림을 그리고 진범을 찾아내는 것이 멋지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시리즈를 즐겨 읽었다는 표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차이점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 꿈을 계속 간직했다는 것이다.

“처음 경찰서에 배치됐을 때 서장님께 말한 것이 ‘저 형사 좀 시켜주세요’였어요. 굉장히 당돌하게 여겼겠죠. 형사는 많은 경력, 대인관계 기술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형사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말이에요. 그래도 효과가 있었는지 4개월 정도 조르니 형사과로 배치됐습니다.”

하지만 수사라는 것은 생각만큼 만만한 게 아니었다. 일상적인 사건은 매뉴얼에 따라 처리할 수 있었지만 범인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사건은 헤맬 수밖에 없었다.

“선배 형사들은 씩 웃고 나가선 몇 시간 후 범인을 떡 하고 잡아왔어요. 그간 열심히 공부한 만큼 수사 현장에 가면 추리소설 주인공처럼 척척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벽을 많이 느꼈죠.”

알고 보니 선배들이 수사하는 방법은 ‘정보망’을 통해 조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맥은 오랜 시간 만남이 쌓이면서 만들어지는 것. 초짜 형사인 그가 단기간에 가질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만의 정보망보다 범죄 수사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방법과 기법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책상에서 국비 유학 팸플릿을 발견했습니다. ‘이거다!’ 싶었어요. 국내에는 수사 기법에 대해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거든요. 열심히 준비했고 3명 뽑는 시험에서 턱걸이로 합격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학교는 영국. 셜록 홈즈의 나라이기에 아무런 주저함 없이 택했다. 학교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에 무작정 영국문화원을 찾아가 알아봐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영국문화원에서 골라준 엑서터대학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자 ‘고창 연쇄살인 사건’을 꺼냈다. 어린 여학생과 여고생이 연쇄 피살된 사건으로 수법의 잔인함, 태연자약한 범인의 태도, 그리고 검거 후 표 교수에게 소송을 걸었기 때문이다.

“제가 쓴 ‘한국의 연쇄살인’에 그 사건의 내용이 있어요. 그런데 범인이 ‘자기 이름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 자신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했어요. 이런 케이스가 한국에 없었으므로 판례로 남겨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는 자신의 범죄 행위를 이용해서 출판이나 영화를 통해 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한 ‘Sun of Sam Law’라는 법이 있다. 수익을 올리면 국가가 몰수해서 피해자 지원 기금으로 쓰이도록 한다. 흉악 범죄자는 공익을 목적으로 실명과 얼굴을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확정 판결이 난 후에도 그들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하지 못해요. 사진은 물론이고요. 저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들의 범죄는 분명 역사의 한 부분이므로 감춰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검찰에서도 ‘패소할지 모르니 소송까지 가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표 교수는 끝까지 자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종결됐다.

표 교수는 중학생인 딸과 초등학생인 아들이 있다. 가족 이야기를 묻자 표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자세히 살피니 ‘가족’이라는 단어를 말하고 난 뒤에는 언제나 웃는다. 그 점을 이야기하니 “기자님, 프로파일러 다 되셨네”라며 크게 웃었다.

“가족은 제 생활의 원동력이자 활력소입니다. 삶의 이유이기도 하죠.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인 아버지지만 언제나 자랑스럽고 좋은 아버지로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가 자녀에게 특히 당부하고 싶은 점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것. 이는 표 교수 자신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모 유력 기관과 관련된 지인을 검거한 적이 있었어요. 이곳저곳에서 간접적인 압박이 들어왔죠. 하지만 모두 무시하고 사건 처리를 해버렸어요. 그러고 나니 아무 말이 없더군요. 그때 느꼈습니다. 가장 커다란 적은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것을요.”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길이 열린다
[나의 꿈 나의 인생] 한국의 셜록 홈즈를 꿈꾸다…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 교수
표 교수는 불안에 떠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도 말했다. 원칙과 소신을 지켜나가라고. 반대로 ‘꿈’이라는 것은 너무 확고히 세우지 말라고 전했다.

“인생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너무 미리 미래를 설정하고 집착하기보다는 지금 단계에서 자신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랍니다.

먼 미래의 좌표를 너무 일찍 정하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그것이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가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어요.”

꿈이 그림의 스케치라면 원칙과 소신은 구도다. 구도가 바뀌면 그림의 본질이 바뀌어 버린다. 그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사회 기반이기도 한 원칙과 소신을 잃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본 기자의 인터뷰 마지막 질문은 언제나 같다. “행복하신가요?” 가족 이야기를 했을 때처럼 또 한 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행복합니다, 정말로.”

조금 특이했던 인터뷰 섭외 과정

보통 인터뷰이를 섭외할 때는 전화를 이용한다. 하지만 표 교수 인터뷰는 특이하게 ‘트위터’를 통해 섭외했다. 트위터의 DM(Direct Message·쪽지와 비슷한 기능)을 이용해 인터뷰 가능 여부뿐 아니라 인터뷰 시간과 장소까지 정했다. 표 교수가 트위터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표 교수는 개인 홈페이지뿐 아니라 블로그, 트위터까지 모두 섭렵하고 있다. 특히 유명 인사의 경우 트위터에서 자신의 지인만 팔로우하는 것과 달리 표 교수는 모든 이에게 맞팔(서로 팔로우하는 것)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이 공간의 의미를 물었다.

“세상에 외치고 싶은 것을 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는 공간입니다. 나와 세상이 소통을 이룰 수 있는 곳이죠.”


표창원 경찰대 교수

1966년 경북 포항 출생
1989년 경찰대 졸업
1990~1991년 경기도 화성경찰서
1991~1992년 경기도 부천경찰서 형사과
1992~1993년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계
1993~1997년 영국 엑서터대학 석사 및 박사(경찰학, 범죄학)
2001년~현재 경찰대 부교수(범죄학, 범죄심리학, 피해자학)

방송 : 채널 뷰 ‘범죄심리분석 더 프로파일러’ 진행
저서 : 2005년 ‘한국의 연쇄살인’, 2010년 ‘숨겨진 심리학’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herejun(Twitter)│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