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곤의 잡 멘토링

얼마 전 모 대학에서 예비 신입생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들을 보니 ‘새내기’란 단어가 절로 나왔다. 갓 졸업한 ‘고딩’이기에 가질 수 있는 좋은 습관도 목격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100% 필기도구를 갖고 특강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문득 그들의 이런 모습이 4년 동안 이루어진다면 취업난도 진로문제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Column] 고3처럼, 딱 한 번만 다시!
3월 캠퍼스의 신입생을 보면 누구나 자신의 대학 1학년 때를 떠올린다. 필자도 대학 1학년 때 여느 대학생과 다르지 않았다. 1990년 3월 첫 등교일, 조교의 안내를 받으면서 사인펜으로 OMR카드에 수강 신청하던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대학 강의실에서 누구와 친해져야 할지, 강의 끝난 후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오래할 필요가 없었다. 이틀도 되지 않아서 학과 동기들 모두가 쉽게 말문을 열고 친해졌다. 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서로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 달 정도 지나면 술자리에선 이런 이야기가 가득하다.

“내가 생각하던 대학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어.”

“나는 운이 없었어. 고등학교 때 나보다 못한 얘들이 Z 대학을 갔단 말이야.”

이런 소재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필자가 성장하고 있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전공 공부와 학교생활에 점차 염증을 느끼고 친구들과 대학이 주는 무한한 자유와 방탕을 만끽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하나씩 군대를 가고 필자도 결국 군대를 갔다. 남은 것은 2학년 1학기까지 평점 1.23이라는 학점뿐이었다.

군대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전공과 대학이었지만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서 친구들과 내 자신에게 했던 변명이 구차하게 느껴졌다. 병장 때 말년 휴가를 나왔다. 군대 가기 전 늘 답답해했지만 별 말씀이 없으셨던 어머니가 처음으로 대학생활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의 고 3 때를 생각해봐라. 복학 후 그때의 50%만이라도 비슷하게 생활한다면 대학생활 장학금은 모두 네 것이 될 것이다.”

작정하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면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그 한마디가 화살이 되어 가슴에 완전히 박혀 버렸다. 복학해서 그대로 해보리라 다짐했다.

고 3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25세 대학 2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대학공부다운 공부를 시작했다. 그 시작은 예습과 복습이었다. 전공 강의뿐 아니라 교양 강의까지 모조리 예습과 복습을 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공강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 아르바이트를 했다.

낯설던 도서관의 배치와 이용법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도 도서관에 앉아서 베스트셀러와 삼국지 같은 꼭 읽어야 할 책을 읽고 나갔다. 그리고 과목별로 노트를 만들었다.

정말 고 3과 같았다. 과목별 노트, 참고서를 바탕으로 하루하루를 정리해갔고, 중간고사 기간 전에는 시간표를 별도로 만들어 시험 대비를 했다. 한마디로 필(feel) 받았다. 복학 후 첫 학기에 바로 장학금을 받고 나서 더욱 가속을 붙였다. 방학 때는 집 근처 사설 독서실 이용권을 끊었다.

그렇게 방학 때 전공 기초서 몇 권을 마스터했다. 1년이 지나고 나서 필자는 완전히 변했다. 복학 후 첫 시험에서 40명 정원의 학년에서 5등 정도를 했고 1년 만에 학과 160명 전체에서 1등을 했다.

3년 내내 4.5 만점을 받았고 평점 4점대로 졸업했다. 성적표 모든 곳에 A학점으로 도배가 돼 있었다. 필자의 시간과 열정은 은행의 복리 이자 제도처럼 계속 커져 나갔다. 아주 간단한 원리가 인생을 바꾸어 버렸다.

“고 3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자.”

만약 지금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신입생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하다면 고등학생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우리 인생에 고 3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순간이 아니라 우리의 에너지를 묻어둔 타임캡슐과 같은 저장고다.


[Column] 고3처럼, 딱 한 번만 다시!
이우곤 이우곤HR연구소장

KTV ‘일자리가 희망입니다’ MC
건국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