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공 스토리

[일자리 찾아 해외로 Go Go] 성실함이 나의 무기… “이름 내건 치과기공소 낼 터”
캐나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붉은 단풍, 자연풍광, 여유로움 등 좋은 점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만을 고려해 취업을 결정할 수는 없었다. 캐나다는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글로벌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또 몇 년 전부터 실업률 증가로 인해 한국으로 역취업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큰 국토에 비해 인구가 부족해 이민 정책이 열려 있다. 또 치안이 탄탄하고 전문직에 대한 대우가 좋다는 점을 고려해 캐나다를 선택했다.

캐나다에 오기 전까지 여러 과정이 있었다. 2006년 치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치과기공사 면허를 취득해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첫 직장은 입사 4개월 만에 거래처와의 마찰로 문을 닫고 말았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행사에 들어가 3년을 일하기도 했다. 보람과 재미가 대단했다. 그러나 마음속 한쪽에는 늘 치과기공사의 꿈이 남아 있었다.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마련한 ‘글로벌 청년리더 양성 치과기공사 해외취업 연수’에 참여했다. 2009년 7월부터 2010년 2월까지 32주간의 연수과정을 통해 실무와 영어수업을 받으며 해외취업을 준비했다. 연수를 받으면서 여권,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항공권 등을 준비했다. 또 인터넷을 통해 캐나다의 숙소와 인터뷰를 할 치과기공소 위치, 연락처, 이메일 주소까지 수집했다.

연수를 마치고 캐나다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알아놓은 치과기공소를 찾아다니며 수차례 면접과 테스트를 반복했다. 우선 현지 분위기 파악이 중요했다. 주말에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했다.
[일자리 찾아 해외로 Go Go] 성실함이 나의 무기… “이름 내건 치과기공소 낼 터”
마침내 캐나다 도착 55일 만에 정식으로 직장에 출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어서 업무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일했는데 급여가 삭감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적응하면서 원래 약속한 급여를 받으며 규칙적인 출퇴근도 가능해졌다.

그 원동력은 성실함이다. 의사소통에 부족함이 많은 단점을 만회하기 위해 늘 가장 먼저 출근하고 남들보다 30분 늦게 퇴근했다. 그러자 마음이 통하기 시작했다. 비자 만료일이 점점 다가와 대표에게 “정식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더니 그는 흔쾌히 “스폰서가 돼주겠다”고 답했다.

지금 나는 정식 취업비자를 발급받는 과정 중이다. 취업비자 발급과 동시에 영주권 신청을 하기 위해 퇴근 후 틈틈이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 주중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는 봉사활동을 한다. 때로는 메이저리그를 보러 가서 박찬호, 추신수 선수를 목이 터져라 응원하기도 한다. 또 지인들과 바비큐 파티를 열어 와인을 한잔씩 하는 여유도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 내 이름을 건 치과기공소를 오픈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오늘도 한 걸음씩 전진 중이다. 아무 목표나 준비 없이 캐나다에 와서 한국인 가게에 일하면서 기본 시급(온타리오주 기본 시급은 10.25달러. 한국인 운영 식당은 평균 6~7달러)을 안 준다며 투덜거리는 청년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제 ‘맨땅에 헤딩’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꾸준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이면 한국인의 근성으로 못해낼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