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땐 여자친구보다 주식 공부가 더 좋을 때도 있어요.” “주식 공부에 빠져(?) 남자 친구와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했어요.”

하루 종일 주식과 씨름하는 전문 투자자나 펀드매니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경험담은 전공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정신없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다. 바로 고려대가치투자연구회(RISK·Real Investment Society of Korea) 멤버들이 그들이다.

최근 대학 동아리의 특징을 꼽는다면 과거 80~90년대 대학가에선 볼 수 없었던 투자 관련 동아리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들 동아리는 단순히 투자 관련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금을 모아 펀드를 운용하기도 한다. 동아리 회원들의 신분은 학생이지만 투자에 대한 열정이나 치열한 탐구 정신은 웬만한 투자 전문가 못지않다.

많은 대학 투자 동아리 중 RISK는 학내·외에서 가장 많은 눈길을 끌고 있는 모임이다. RISK는 지난해 3월 CFA협회가 전국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주최한 글로벌 인베스트먼트 리서치 챌린지대회에서 우승, 한국 대표로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퍼시픽 대회에 출전했다.

올해 우승팀도 RISK에서 나왔다. 세계적인 투자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만큼 권위를 인정받는 이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한 대학 동아리는 RISK가 유일하다.

김도훈(경영학과 4) RISK 회장은 “우리는 기업의 주가는 그 기업의 가치에 수렴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실질적 수익과 학문적 성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장기적 안목을 바탕으로 하는 가치투자의 특성상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은 필수적이다. 가치투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확한 리서치를 위해 RISK 멤버들은 현장으로 직접 달려가기도 한다.

당연히 주식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RISK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단순히 취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RISK를 찾았다가는 얼마 안 가 스스로 나가버리고 만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실제 RISK의 입회 과정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RISK에 들어가기 위해선 1차 서류전형과 2차 면접을 거쳐야 한다. 1,2차 과정을 모두 통과한 학생들에게는 4주간의 신입회원 교육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RISK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일까. 전공을 살펴보면 경영학과가 대부분일 것 같지만 예상외로 경영학 전공자는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공대?문과대 등 다른 단과대학 학생들이 채우고 있다.

RISK회원들이 학회(회원들은 가치투자연구회를 학회라고 부른다) 활동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일반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매주 토요일 오후 1시 반부터 6시까지 열리는 세션(기업분석 세미나)을 위해 회원들은 하루 평균 4~5시간의 시간을 투자한다. 전공수업 외에는 사실상 거의 세션 준비에 ‘올인’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션 시간 때 선·후배들로부터 쏟아지는 날카로운 질문에 대처하기 위해선 이 정도 공부는 기본이라는 게 회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RISK의 이은비(영문학 4) 씨는 “평소 함께 공부하고 친한 사이지만 세션 때는 절대 봐주는 법이 없다”며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고 세션에 참가했다간 망신당하기 딱 좋다”고 말했다.

정교한 이론으로 무장한 RISK회원들이지만 세션 뒤 이어지는 뒷풀이 시간 때는 ‘전혀 딴사람들’이 된다. RISK 리크루팅 설명회 자료의 맨 마지막 장에 씌어 있는 ‘주식&사람&정(情)’에 이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민아(경영학과 4) 씨는 “RISK 멤버들의 모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일할 땐 확실히 하고 놀 때도 후회 없이 놀자’입니다. 세션 때 비록 ‘치고 박고’ 했을지라도 서로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만큼 뒤풀이 때는 아무런 뒤탈 없이 다 풀어버리죠”라며 뒤풀이의 분위기를 전했다.

김도훈 회장은 “우리가 분석한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확실한 수익을 올렸을 때의 짜릿한 느낌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라며 “함께 공부하면서 지적 호기심도 맛볼 수 있어 활동할수록 학회 활동에 재미가 붙는다”며 웃었다.


**가치투자연구회
가치투자연구회는 적은 규모이긴 하지만 실제 자금을 운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실전 투자에서도 꽤 좋은 성적을 냈다. 설정액 1000만 원인 RISK의 펀드는 지난해 상반기 89%의 수익률로 대학 동아리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1기 선배들도 지난 2003년 4억 원짜리 펀드를 설정해 1년 5개월 만에 50%의 수익률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반대로 소위 ‘묻지마 투자’를 했다가 모든 계좌를 날리거나 실패를 한 사람은 거의 없다. 단기간에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생각보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것이 이들의 기본 마인드이기 때문이다.

RISK에서 만들어진 분석 자료는 실제 증권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2008년 국제적으로 납 가격이 급락한 것에 주목했던 RISK는 자동차에 쓰이는 납축전지에 대한 분석을 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축전지 산업에 대한 분석 보고서가 거의 없던 상황이어서 이들의 분석이 여러 증권 관계자들 입에 회자되기도 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했던 학생은 증권사에 스카우트 됐다고 한다.

김재창 한경비즈니스기자 cha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