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여대 커뮤니티 익명 게시판. “남자친구 첫사랑이 너무 신경쓰여요.” 연애 상담을 청하는 이 질문에 1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다. “과거는 과거일 뿐 중요한 건 현재 진행형인 사랑 아닐까.” “나도 처음엔 그랬는데 지금은 그냥 받아들여요. 누구나 과거가 있는데 뭘.”

인정(人情)은 때와 장소의 구분이 없다. 비록 인터넷 속 이름?얼굴도 모르는 이의 이야기지만 게시판 속 질문과 답변에는 다정함과 친근함이 있다.
요즘 대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소통한다. 각 대학마다 공식 홈페이지가 있는 것은 물론 학생들이 자체 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그 중에서도 여대 온라인 커뮤니티는 특유의 폐쇄성 때문에 ‘신비로운 공간’으로 주목을 받는다.

서울여대의 ‘슈먼닷컴’ 이화여대의 ‘이화이언’ 숙명여대의 ‘스노로즈’ 동덕여대의 ‘동감’ 등이 대표적이다.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용할 수 있고 익명게시판에 접근하기 위해선 별도의 인증이 필요하다. 글의 종류는 가지각색이다. 연애 이야기부터 취업, 대학 생활, 생활 정보까지 수많은 정보들이 하루에도 몇 백건씩 올라온다.

그곳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까? 여자들의 수다처럼 소소하고 진지하면서 왁자지껄한 여대 커뮤니티를 지금부터 해부해보자.


유형별로 보는 여대 ‘비밀 사이트’

친구보다 더 친구 같은... ‘연애 상담’

사랑은 모든 이에게 로망이자 아픔이다. 여대생들에게 연애 얘기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 소개팅하기 좋은 장소부터 고백 받는 팁, 데이트 코스, 싸운 뒤의 넋두리,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연애의 A to Z가 게시판 안에 담겨 있다.

“손 한번 잡으려고 얼굴까지 벌게지던 그 사람이 지금 차갑게 돌아서는 걸 인정하기 싫은 가봐요.” “매번 100% 사랑하다 보니 그만큼 잊는 것도 힘들어요.”

익명 게시판이라서 할 수 있는 얘기들도 있다. “사귄 지 열흘 됐는데 진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친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들을 게시판에 쏟아 놓는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한 마디는 조언과 위로가 된다.


“내 스펙 좀 봐주세요.” 취업게시판

이화여대 ‘이화이언’, 서울여대 ‘슈먼닷컴’ 등은 취업게시판을 따로 만들었다. 학생들은 익명으로 학점, 영어 점수 등을 공개하고 조언을 구한다. 조회수 상위권을 차지하는 글은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이 공개한 ‘스펙’과 ‘팁’. 메일 주소를 남기면 자기소개서를 첨부하는 친절한 합격생도 있다.

‘토익 점수가 낮은데 ○○기업에 취업 원서를 넣어도 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면 ‘○○기업은 토익보다 영어 말하기인 ‘오픽’ 점수를 더 많이 본다’고 구체적으로 답한다. 기업별 자기소개서 항목, 연봉, 외국계 기업과 국내 대기업 비교 글 등 쉽게 얻을 수 없는 고급 정보들도 동문들이기에 나눌 수 있다.


‘치열한 갑을공방’... 토론의 장
정치 사회적 이슈와 학내 정책 방향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총학생회장 선거철이 돌아오면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시비를 가리는 글들로 가득 찬다.

최근 대학교 내 사기업이 늘어가는 것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곳도 대학 신문이 아닌 학교 커뮤니티였다.

최근에는 ‘천안함’사건으로 진보 대 보수가 나뉘어 공방을 벌이기도 한다. 신변잡담을 넘어 여론을 주도하고 생산하는 언론의 역할 또한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1년 365일 다이어트’... 외모, 패션
“졸업 사진 메이크업, 헤어 추천해주세요.”

졸업 사진 촬영 시즌이 돌아오면 많이 올라오는 글이다. 여대생들에게 외모, 패션, 뷰티는 언제나 인기 주제다. 그 중에서도 ‘다이어트’ 관련 글이 조회수가 높다.

덴마크 다이어트, 고구마 다이어트, 한방 다이어트 등 갖가지 다이어트가 등장한다. 하루 동안 먹는 음식과 칼로리를 올리고 분석을 요구하는 글도 있다.

10kg 이상 감량을 했다는 후일담은 다이어트 성공 비법으로 회자된다. 그 중에는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 아무리 살을 빼도 만족이 안 된다”며 “다이어트에 민감한 여대생들로 한국이 거식증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진지한 목소리도 있다.


‘웃음은 나눌수록 커진다.’ 유머 코너

“어떤 애가 엄마가 학교 가서 먹으라고 백설기를 싸줬는데 수업시간 도중에 몰래 먹으려다가 선생님이랑 마주쳐서 지우개인 척 책상에 빡빡 문질렀대.” “어떤 사람이 면접 보러 가서 면접관이 ‘아버지는 뭐하세요?’ 하니까 그 사람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했다고. “방에서 나올 때 불 끄는 게 습관인 사람이 면접 보러 갔다가 나오면서 불 끄고 나왔대.”

재미있는 글과 경험담은 커뮤니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많은 이의 공감을 산 유머는 ‘저장글’이 돼 자주 오르내린다.
학점 팁, 강의 평가.. 대학 생활 정보

특히 대학 초년생들은 학교 생활 정보에 관심이 많다.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는 없는 추천 명강의, 명교수 목록도 비밀 사이트엔 있다. 시험을 잘보기 위해선 ‘? 교수님의 강의를 다 받아 적고 ? 암기는 반복하고 ? 모르는 부분은 따로 적어 공부하고 ? 주관식 답안지는 ‘의의, 정의, 목적, 종류, 한계’를 담아 키워드 중심으로 서술한다’는 ‘학점 팁’도 공개돼 있다.


졸업생들의 ‘친목 도모 공간’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하나 둘 떠나가는 대학 친구에 대한 쓸쓸함을 느껴봤을 것이다.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들에게 가상의 친구다. 직장, 재취업, 결혼, 신혼, 시댁과의 갈등 등 마음 속 이야기를 터놓는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한 졸업생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한층 깊이가 있다.


‘보안’유지가 가장 큰 숙제
여대 익명 게시판은 같은 고민을 하는 동성 친구들이 모인 공간이다. 그만큼 편하고 부담 없다. 타 커뮤니티에 비해 공감도가 높아 이용자들은 말 못할 고민도 털어놓게 된다.

하지만 폐해도 있다. 중독되면 ‘오타쿠’ 못지 않은 ‘죽순이’가 되기 십상. 대학생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껴야 할 시간을 컴퓨터와 함께 보내는 것이다.

온라인의 특성상 거짓글도 많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이 되지 않은 글에 쉽게 휘둘릴 수 있다.

여대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침입자로 인한 정보유출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대 비밀 게시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높은 관심을 사고, 접근하려는 외부인들이 많이 때문이다.

숙명여대 ‘스노로즈’ 운영자는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해선 신뢰와 보안이 가장 중요하다”며 “회원들이 아이디를 공유한다거나 외부로 유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현주 한경비즈니스기자 charis@kbizweek.com
이현지 대학생 기자(숙명여대 인문학부 2학년) yh983528@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