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호의 스타일 제안

필자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가끔씩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발목을 보는데 왜 그런 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내가 양말에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한다면 비웃을지 모르지만 내 서랍장엔 양말만 100켤레를 육박한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모 톱스타와 광고 촬영을 하게 됐다. 평소에도 그가 패셔니스타로 알려져서 그런지 액세서리와 소품에 민감하다고, 광고를 기획하는 사람이 의상에 어울리는 다양한 양말을 준비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SANYO DIGITAL CAMERA
SANYO DIGITAL CAMERA
이게 웬일인가! 내게는 ‘듣보잡’(보고 듣지도 못한 물건을 줄인 요즘 속말) 같은 양말들이 많으니 그 컬렉션을 한번 꺼낼 기회가 되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소품에 민감하다는 그도 내 양말에 넋을 잃었다.

20컷이 넘는 지루한 촬영이었는데 그도 양말 갈아 신는 것에 지쳤는지 나중에는 ‘형 그냥 이 양말로 가요’ 라고 했다. 패셔너블한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양말은 진정한 패션을 완성시키는 도구이다.

올해의 일이다. 이것 또한 광고 촬영장에서 생긴 일.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나의 직업이 궁금할 것이다. 내 본업은 패션 스타일리스트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양말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됐다. 여성의 샌들 위로 올라온 반 양말에 몹시도 못 마땅했나 보다. 양말을 이용한 구두 스타일링에 의구심을 가지며 계속 반문을 했다.

“왜 양말을 신기셨나요? 이것이 이번 시즌의 트렌드인가요? 젊은 사람들이 추구하나요? 촌스러워 보이는데?” 이런 질문이 귀찮아 양말을 벗기려다 나도 한 고집하는지라 끝까지 버티고 촬영을 끝내 버렸다.

나중에 완성된 사진을 보니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멋스러웠다. 남자들이여! 양말에 따라 패셔니스타가 되거나 아니면 패션 무관심주의자가 되니 양말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이건 스타일리스트가 부탁하는 충고다.

종종 지하철에서 생기는 일. 체격 좋고 잘생기고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남자. 그러나 그가 자리에 앉으면 양말에서 NG가 난다. 열에 여덟 명은 이런 실수를 하고 있다. 정장에 검은 면양말은 무난하게 보기 좋다.

하지만 발목까지 오는 스니커즈용 양말은 너무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정장을 무시하는 처사다. 멋진 타이와 셔츠는 이해하면서 정장에 매치해야 할 양말에서 이런 실수를 많은 사람들이 범하고 있다.

양말은 이번 시즌 유행을 즐기는 중요한 화두다. 존 갈리아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디자인한 디올의 이번 시즌 의상은 50년대의 여주인공 로렌 바콜에서 영향을 받아 글래머러스한 감성의 레이디 라이크 룩을 제안한다.

트렌치 코트와 시폰 소재 미니스커트의 매치, 잘록한 허리선을 강조하는 블레이저와 란제리에서 영감을 받은 핫 팬츠의 조화를 통해 글램 스타일의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이번 컬렉션에서 주목할 것은 의상에 사용된 화려한 소재와 장식도 관심을 모으지만 또 하나는 양말이다. 은사와 금사가 섞인 발목 길이의 스타킹을 매치해 발목에 끈을 묶는 스트랩 슈즈나 레이스 소재의 오픈 토 슈즈와 매치해 50년대 복고풍 스타일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바꿨다.

비단 여성복 컬렉션뿐만 아니라 남성복 컬렉션에서도 정장이 패션쇼 무대 위에 나올 때면 의상과 통일된 색상을 매치해 세련된 감각을 더하는 액세서리로 종종 활용되고 있다. 디스퀘어드의 컬렉션은 두 가지 색상이 매치된 무릎 길이 양말이 패션쇼의 시작부터 끝까지 장식된다.

데님 반바지에 매치된 등산화 스타일의 워커에는 반양말이 소품으로 사용되고 수영복과 매치한 양말, 언더웨어와 매치한 양말 등이 패션쇼에 재미를 더하기 위한 기상천외한 발상이지만 스타일링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 양말에 대한 활용도를 높인 컬렉션이다.

양말은 스타일을 완성하는 액세서리다. 포멀한 슈트에 같은 색상의 양말을 신는 것보다 체크나 디테일이 가미된 양말이나 그레이 컬러의 양말을 매치하는 것도 패션을 즐기는 색다른 노하우다.

청바지에도 마찬가지다. 청바지에 갈색 구두를 매치한다면 체크양말이 프레피 룩을 연출해줄 것이다. 때론 화려한 색상의 양말로 포인트를 주는 것도 패셔너블하다는 인상을 전해 줄 것이다.

SANYO DIGITAL CAMERA
SANYO DIGITAL CAMERA
조대호 스타일리스트


월간 ‘네이버’ 등에서 패션 에디터로 10여 년간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 각 매체에 패션칼럼을 쓰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