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작품 과외·대행 성행 중

학교 시험도 없고 각 기업의 공채도 얼추 마무리 국면인 11월, 캠퍼스 한쪽이 분주하다. 대학생활의 마지막 과제인 졸업 작품을 제출해야 하는 이들의 바쁜 움직임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터넷 검색창에 ‘졸업 작품 대행’이라는 문구를 입력한 경험이 있다. 부담스러운 ‘졸작(졸업 작품)’ 때문에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하다 보면 한 번쯤 돈을 주고 맡기고 싶은 유혹을 받는 까닭이다.
[이슈 체크] 그 졸작, 네 손으로 만든 거니?
취업 때문에? 남의 손에 졸작 맡기는 이유
인문계 전공자들은 졸업 논문을 쓰지만 예체능·이공계 전공자들은 졸업 작품을 만든다. 미술 전공자나 의상디자인, 컴퓨터공학, 전자과 등의 전공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앱 개발, 프로그래밍, 3D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계해 4년 동안 준비해온 역작을 탄생시키는가 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도 한다. 전공에 따라서는 공개 발표회를 통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기도 한다. 졸업 작품은 강의실에서 머리를 붙들고 들었던 수업 내용들을 총망라한 결과물로서 의미가 크다. 4년 대학 과정의 마지막 과제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졸업 작품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종종 벌어지고 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졸업 작품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졸업 작품 대행’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 정당한 방법이 아닌 것은 물론 대학생으로선 부담스러운 거액의 비용이 드는데도 ‘대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공보다 중요한 취업…배운 게 있어야 만들지!
대학 2학년 때부터 고시 준비를 해온 서은혜(24·가명) 씨의 전공은 전자공학이다. 고시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전공과목에 매진할 수 없었고, 시험 때는 족보를 돌려보며 공부하거나 벼락치기를 하는 방법을 써 간신히 학점을 유지했다. 그러나 문제는 졸업 작품이었다.

“졸업 작품을 반드시 내야만 졸업이 되잖아요. 그런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충이라도 만들 수 있는 전문 지식이 없었어요. 그러다 친구가 알려준 졸업 작품 대행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게 된 거예요.”

고시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졸업 작품에 시간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서 씨의 설명이다. 전공과목과는 다른 진로를 준비하느라 전공 지식이 약하기 때문에 졸업 작품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졸업은 해야겠고, 궁여지책으로 선택하는 게 ‘졸업 작품 대행’인 셈이다.


졸업·취업 시즌이 같아 감당 불가!
졸업 작품을 제출해야 하는 10~11월은 취업준비를 하는 4학년에게는 하반기 공채 시즌이기도 하다. 시기가 딱 겹치는 것. “취업을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대행을 맡겼어요. 취업 준비하는 데 시간이 부족하니까, 시간을 사는 거죠.”

지난 9월 초 졸업 작품을 대행업체에 맡긴 김현종(가명·26) 씨는 대행사를 이용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구상하고 작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부담되는 게 사실이에요. 보통 9월부터 구상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가 4학년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기거든요.” 김 씨처럼 취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 4학년들에게 졸업 작품 대행은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학점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방법이든 작품만 제출하면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년 내내 무위도식… 졸업작품도 다르지 않아
대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할 때면 찾는 사이트가 있다. 짧은 시간 내 끝낼 수 없는 과제임에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제출일 전날 부랴부랴 인터넷에 있는 기존의 리포트를 짜깁기해서 제출하려는 속셈으로 찾는 곳이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고 대가를 얻으려는 것. 이런 습관이 대학 생활 내내 몸에 밴 학생들은 졸업 작품도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과제나 발표 때 스스로의 힘으로 제출한 경험이 적을 뿐 아니라,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돈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작업에 들어가야 함에도 제출일이 다가오면 급히 찾는 곳이‘대행’이나‘구매’업체인 것이다.
[이슈 체크] 그 졸작, 네 손으로 만든 거니?
10만~300만 원까지 천차만별… 대행 시장 팽창
학생들의 수요가 많아지니 졸업 작품을 대행하는 관련 시장도 커지는 상황이다. 적게는 10만 원부터 많게는 300만 원까지 의뢰비를 받는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한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의뢰를 받아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상품 유형도 여러 가지다. 완성 작품과 관련 논문을 함께 제공하는가 하면, ‘전문가가 만든 작품’인 것을 표내지 않기 위해 학생 수준에 맞춰 제작해주는 ‘섬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이슈 체크] 그 졸작, 네 손으로 만든 거니?
졸업 작품 과외 해 드립니다!
남의 손을 빌려 졸업 작품을 만드는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최근엔 ‘졸작 과외’가 급부상했다. ‘졸작’이라는 두 글자를 내세운 온라인 카페들은 대부분 과외를 해주는 곳. 실제 한 사이트에 졸작 과외를 의뢰하자 “초급 과정부터 배우려면 8회를 수강해야 하고, 가격은 40만 원이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 있다면, 4회만 들어도 된다. 가격은 20만 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직접 만나서 과외를 받아도 되지만, 만나기 부담스럽다면 원격으로 수강해도 된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지난해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영상 관련 과외를 받았다는 이미나(가명·24) 씨는 “몇 마디 말만 던져주고 작품을 마음대로 만들어 주는 대행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며 “돈을 지불하고 배우는 것은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은 별로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청서 한 장이면 졸작이 뚝딱!
아예 졸업 작품을 만들어서 대령하는 ‘대행’은 과외에 비해 비용이 2배 이상 들어간다. 납품 종류는 완제품, 반제품으로 나뉜다. 반제품의 경우 설계도나 핵심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완제품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완성된 상태로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원하는 프로젝트와 종류, 제출 일시, 희망 가격 등 ‘소비자(의뢰 학생)’가 원하는 정보를 메일이나 메신저로 보내면 신청이 완료된다. ‘공급자(제작 대행자)’가 모든 내용을 검토한 후 가능 여부와 가격을 적어서 다시 회신해주고, 조건이 맞으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가격은 분야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10만 원부터 많게는 30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작품 제작을 완성할 때까지 동영상으로 계속해서 피드백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예상 밖으로 많다. 대행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졸업 작품 제출 3~5개월 전부터 신청 게시글이 적잖게 올라온다.

의뢰자의 의견대로 만들어 주는 대행뿐 아니라, 이미 만들어져 있는 작품을 판매하는 유통 채널도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는 ‘시간 없는 분, 졸작 팝니다’라고 적힌 게시물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과외나 대행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반면, 완성품은 돈만 지불하면 완성본과 논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Helping hand
Helping hand
세운상가 찾는 공대생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졸업 작품 대행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지난해 졸업을 앞두고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컴퓨터 공학과 전공의 최재진(가명·27) 씨는 서울 청계천의 세운상가를 찾았다. 세운상가 3층의 업체들이 졸업 작품 대행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 나선 것이다. 최 씨는 “처음에는 혹시나 대행한 것이 탄로날까 봐 망설였지만, 수년 동안 졸업작품을 만들어왔으니 안심하라는 상인의 말을 듣고 맡겼다”고 말했다. 최 씨가 원하는 작품을 의뢰했을 때 업체는 60~80만 원의 금액을 원했다.

세운상가의 가게들은 버젓이 ‘졸업 작품 판매’ 문구를 문 앞에 적어놓고 영업한다. ‘학생 전문’을 걸어놓은 곳도 있다. 세운상가의 상인들은 센서를 이용한 간단한 도구부터 전기자동차 모터제어, 자동주차시스템 등 구체적인 적용 프로그램이나 정보가 없어도 원하는 것을 주문하면 뭐든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혹시 생길 불상사를 위해 제작 후 재료나 원리 등에 대한 교육도 따로 진행한다. 작품에 문제가 있을 경우 AS까지 제공할 정도로 치밀하다 보니, 학생들이 믿고 찾는 것이다.


사기 당해도 신고·보상 어려워
거액이 오가는 만큼 사기도 부지기수다. 먼저 돈을 지불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 처음 한두 번은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메일로 보내주다가 9~10월이 되면 연락을 끊는 일이 빈번하다. 지난 8월 졸업 작품 대행업체에 친구들과 함께 60만 원을 지불하고 프로젝트를 의뢰했던 윤동진(가명·28) 씨는 중간에 연락이 끊긴 대행업체 때문에 10월이 돼서야 다시 졸업 작품 작업을 시작했다.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하고 있는 윤 씨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완성시켜야 하는 것이었는데, 무임승차하는 조원이 있어 합의하에 대행업체에 맡긴 것이다. 그런데 돈을 입금하고 일주일 뒤 확인을 위해 전화를 하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성만 들려왔다. 윤 씨는 신고를 하려 했지만 졸업 작품 매매 자체가 불법적인 행위여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졸업 작품 매매의 경우 사기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학교의 졸업사정 관련 업무를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한다는 ‘업무방해죄’가 성립되므로 선뜻 신고 하기도 어렵다.


“졸업 작품은 사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 호흡”
졸업 작품 대행에 대해 일부 학생들은 “대행 업체를 이용하는 친구들을 보면 취업 준비하랴, 졸업 준비하랴 애쓰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며 “돈으로 해결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하대 기계공학과 김주형 교수는 “졸업 작품은 그 동안 배웠던 지식들을 통틀어 창의성을 발휘해 스스로 만드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기존에 있던 작품들을 그대로 베껴 만들거나 남의 손을 빌려 작품을 만드는 것은 졸업 작품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교에서는 졸업 작품으로 완벽하고 멋진 작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발전하면 되는 것이다. 노력없이 대가를 치르려는 자세를 고치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서도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며 되도록 졸업 작품은 스스로 만들 것을 당부했다. 또한 “졸업 작품을 달리기 직전에 매는 ‘신발끈’이라고 생각하고 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글 김은진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