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 인터뷰

1837년에 창립해 올해로 무려 1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 P&G. 샴푸, 화장품, 면도기, 비누, 제과, 여성용품에서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웬만해선 다루지 않는 소비재가 없을 정도다. 소비자와 최접점에서 만나는 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P&G는 ‘마케팅 사관학교’라 불리며 글로벌 마케팅 전략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대학 마케팅 연합 동아리인 MCL 회원들이 현장의 베테랑 마케터를 직접 만나 궁금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P&G 마케팅본부에서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 ‘SKⅡ’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박정연 부장이 학생들의 갈증을 해결해줄 멘토로 나섰다.
[마케팅 완벽 해부] ‘마케팅 사관학교’ 한국P&G에 가다 “시장 움직이는 희열…안 해보면 절대 몰라”
[마케팅 완벽 해부] ‘마케팅 사관학교’ 한국P&G에 가다 “시장 움직이는 희열…안 해보면 절대 몰라”
MCL 마케팅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정말 어려운데, P&G가 생각하는 마케팅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인가요?

박정연 부장 마케팅이란 건 결국은 브랜드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을 말해요. 굉장히 광범위한 개념이죠. 우선 내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게 마케터로서 기본이에요. 마케터가 생각하는 가치와 소비자가 인지하고 있는 가치 사이의 간극을 줄여가는 것. 그 두 가지가 정확하게 일치하면 환상적인 마케팅이 되겠죠.


MCL 마케팅을 광고나 PR, 혹은 영업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 업무는 어떤가요?

박정연 부장 P&G에선 마케팅팀을 브랜드팀이라고 불러요. 브랜드팀과 협력하는 부서는 광고, 홍보, 영업기획팀 등 다양하죠. 사내 여러 부서 중 조금 더 중심에 서서 브랜드의 전략을 짜고, 또 그 전략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중심 역할을 한다고 보면 돼요. 제품과 브랜드가 가고자 하는 방향, 또 가는 방법, 즉 전략을 결정하죠. 결정된 전략이 정말 잘 실행되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사람도 마케터예요. 홍보 파트는 협력부서라고 부르죠. 여러 부서가 그들만의 전문성을 발휘해 전략을 가장 잘 실행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전문가 집단이 마케팅 부문이에요. 기본적으로 마케팅은 여러 업무와 부서를 아우르는 중심에 서고, 각각의 부서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돕는 부서라고 할 수 있어요.
[마케팅 완벽 해부] ‘마케팅 사관학교’ 한국P&G에 가다 “시장 움직이는 희열…안 해보면 절대 몰라”

MCL 실제 현장에선 마케팅 전략을 어떤 과정을 통해 수립하는지 궁금해요.

박정연 부장 회사마다 다를 것 같은데, P&G의 경우 ABM(Assistant Brand Manager)과 BM(Brand Manager)으로 구분돼 있어요. 브랜드팀 전체적으로는 소비자의 불만족 사항 등에 대해 관련 부서와 협업을 하죠. 시장에 나가 리서치도 하고 관련 데이터도 확인해요. 또 소비자를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경쟁사의 제품·동향 등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거시적 경제 상황까지 점검해서 현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집어내는 거예요. 그 다음 문제 해결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협업 부서와 같이 전략을 세우죠. 전략에 대한 기획서를 만들면 최종적으로 임원진 결정을 통해 일이 진행돼요. 임원진이 전체 전략을 주도하는 회사도 많지만 P&G의 가장 큰 매력은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 소비자와 시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전략을 제안한다는 점이에요. 경영진이 이를 받아들여 일이 실행되기 시작할 때 비로소 희열을 느끼죠.


MCL 그렇다면 마케터 개개인의 전략과 제안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나요?

박정연 부장 이것도 회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P&G는 ‘End to End’라는 원칙과 철학이 있어요. 마케터가 제안할 수 있는 범위가 제품 개발에서 프로모션 전략까지 모두 오픈돼 있다는 뜻이에요. 때로 한 가지 제품을 개발하는 데 몇 년씩 걸리기도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이러이러한 이노베이션, 콘셉트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글로벌 본사로 제안할 수도 있어요. 모든 단계에서 제안하는 게 가능하지만, 물론 실현 가능성이나 프로젝트의 시간은 제각각 다르죠. 재미있는 건 연차가 적은 신입사원일수록 원대한 제안을 하게 마련이란 거예요. 또 그 점이 회사가 신입사원들에게 원하는 바이기도 하죠. 그래서 때로는 ‘이 브랜드의 점유율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이 어려운 프로젝트가 신입에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MCL 마케터로서 현장에서 일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어떤 게 있을까요?

박정연 부장 확실한 건 마케팅이 화려한 직종은 아니란 거예요. 어떤 전략을 수립하거나 컨설팅에만 그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내가 수립한 전략을 실행해서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는 부서가 바로 마케팅팀이죠. 전략을 정말 잘 실행해서 시장에서 반응이 올 때, 매출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댓글이 엄청 많이 달린다거나 캠페인 참가자 수가 많을 때 큰 보람을 느끼죠. 각각의 브랜드가 제품과 콘셉트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이 냉담한 경우도 물론 있어요. 그럴 때면 재빨리 관련 팀들이 모여 회의를 열죠. 전략을 수정하거나, 유지하되 방법을 바꾸는 식이죠. 수정된 방법에 시장의 반응이 오고, 소비자도 마케터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줄 때 가장 큰 희열을 느껴요.



MCL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여전히 마케팅이 유효한가요?

박정연 부장 물론 물량 공세에 나서는 돈 많은 기업도 있어요. 노출도를 끌어올리면 소위 ‘대세’로 굳어지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그건 소수의 대기업만 가능해요. 제가 입사 9년차인데, 신입사원일 때와 지금의 환경은 엄청나게 달라요. 예전엔 TV와 잡지에 광고 실으면 쉽게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집중해서 공략해야 할 미디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젊은 친구들은 TV도 잘 안 보잖아요. 온라인은 물론이고 소위 SNS에서 회자가 돼야 해요. 마케터 입장에선 일하기 어려운 시대죠.

자본이 부족할수록 타깃 집단을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해요. 그들의 미디어 매체 습관, 그들이 자주 가는 곳, 영향을 줄 수 있는 곳부터 파악해야 하죠. 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훨씬 효율적일 수 있어요. 싸이의 경우처럼 콘텐츠가 좋으면 스스로 돌아다니게 마련이에요. 이제는 TV에 아무리 광고를 해도 반응이 시들한 경우도 많아요.
[마케팅 완벽 해부] ‘마케팅 사관학교’ 한국P&G에 가다 “시장 움직이는 희열…안 해보면 절대 몰라”
MCL 최근 화장품 소비재의 마케팅 트렌드는 어떤지 궁금해요. 더불어 한국 시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고 하던데요.

박정연 부장 한국이 정말 어려운 시장인 건 맞아요. 소비자들이 엄청 까다롭거든요. 이들을 만족시키려면 엄청난 기술력과 마케팅이 필요하죠. 니즈 충족이 어려운 데 비해 시장의 크기 자체는 작다는 핸디캡도 있어요. 투자자 입장에선 한국에 얼마를 쏟아붓느냐 결정하기가 쉽지 않겠죠.

뷰티 제품의 경우 한때 테크놀로지가 글로벌 트렌드이자 화두였어요. 지금은 기능성은 기본이에요. 여기에 현대인들이 원하는 테마를 더해야 하죠.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나 자연 같은 콘셉트예요. 그도 아니라면 정말 하이테크놀로지로 가든가 해야죠. 또 요즘엔 경제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서 소비자가 더 똑똑해지고 있어요. ‘올인원’ 제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예요. 인터넷이 워낙 발달한 터라 소비자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선 더 정직해져야 하죠. 과대포장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어요. 부족함을 보충하려는 기업의 자세가 그만큼 중요하죠.


MCL 지금 맡고 계신 SKⅡ 브랜드에서 진행한 마케팅 프로젝트는 어떤 게 있나요?

박정연 부장 SKⅡ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포지셔닝한 제품이에요.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콘텐츠나 온라인, SNS 등에선 소극적이라 판단했죠.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신사동 가로수길에 ‘SKⅡ 피테라하우스’라는 팝업스토어를 냈어요. 백화점에만 있다 보니 소비자와 교류가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브랜드의 역사, 차별점, 피부 측정기계를 통한 소비자 상담 등 고객에게 친근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어요. 10센치 같은 뮤지션을 초청해 콘서트도 열었고요. 가장 최근 프로젝트였는데 긍정적이고 좋은 반응을 얻었죠. 처음 해보는 시도라 재미있고 기억에 많이 남아요. 사실 프리미엄 브랜드에선 드문 시도였죠. 예전에는 스타 마케팅만 해도 통했는데 이제는 ‘연예인이니 당연히 피부가 좋지’라고 생각하세요. 이미지는 기본이고 거기에 효능, 또 더 많은 부가 콘텐츠를 전달해야 하는 게 요즘의 마케팅 트렌드예요.


MCL 다른 브랜드가 카피 제품을 내는 등 공세를 펼 때는 어떻게 대응하시나요?

박정연 부장 프리미엄 콘셉트를 모방해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켰다면, 비즈니스로만 보면 잘한 게 분명해요. 우리끼리는 ‘상도의에 맞느냐’고 말하기도 하지만요.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아요. 특히 SKⅡ의 ‘피테라’는 원료는 정말 많이 모방하는 아이템이에요. SK3라는 브랜드까지 나왔죠. SK가 ‘Secret Key’의 약자인데, 정말 그런 이름을 가진 브랜드도 있어요. 결론적으로 두 가지 방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아예 일대일로 차별성을 두고 경쟁하는 방식과 더 모방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을 높이는 방법이에요. 결국 결정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니까요. 제품의 콘셉트를 보고 사용해본 소비자가 왜 우리 제품이 좋은지 차별성을 느끼면 되는 거죠. 기업 입장에서도 우리 제품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우리만의 스토리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저렴한 제품을 여러 개 듬뿍듬뿍 바르는 것보다 좋은 제품 하나를 사서 잘 쓰는 게 스마트한 쇼핑이라는 가치를 고객에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이유예요.


MCL 실제로 저가 모방 제품에 타격을 받기도 하나요?

박정연 부장 매출에선 눈에 띄는 타격이 당장 나오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미래 가치와 장기적인 관점에선 불리해질 수도 있겠죠. 우리의 가치, 연구력, 내공 등을 많이 알리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경쟁사 입장에선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잘된 캠페인이라는 건 인정하죠.


MCL P&G 마케터로 일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마케팅 사례가 궁금해요.

박정연 부장 지난 런던 올림픽 때부터 시작한 ‘땡큐맘 프로젝트’가 기억나네요. 원래 P&G는 모기업보다는 개별 브랜드를 강조하는 전략이에요. P&G 이름을 걸고 펼친 몇 안 되는 캠페인이었죠.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어머니를 후원하는 캠페인이에요. 스포츠 스타 뒤에 숨어 있는 어머니들의 헌신을 기리자는 콘셉트예요. 이용대, 손연재 선수의 어머니와 함께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P&G가 소비재 전문 기업이다 보니 샴푸, 섬유유연제, 탈취제 등 기본적인 생활용품을 제공해드렸어요. 일반 소비자들 중에서도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는 캠페인을 함께 진행했어요.
[마케팅 완벽 해부] ‘마케팅 사관학교’ 한국P&G에 가다 “시장 움직이는 희열…안 해보면 절대 몰라”
MCL 첫 직장, 첫 직종을 정하는 게 정말 어려운데, 마케팅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박정연 부장 마케터는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예요. 신입사원같이 사회 경력 초반기에는 내가 뭘 잘하는지, 뭘 원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마케팅은 다양한 부서와 협업하고 소통하기 때문에 그만큼 자기 장단점을 빨리 찾아낼 수 있죠. 그러다 보면 제너럴 매니저로 가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MCL 마케터 입장에서 ‘이 제품은 된다’는 확신이 올 때가 있나요?

박정연 부장 경험치가 많은 마케터의 경우 ‘감’이라는 게 진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위험하죠. 결국엔 소비자 조사가 제일 확실한 방법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제품의 특성, 콘셉트 등을 제일 먼저 조사하고, 점점 방향을 좁혀 나가는 거죠.



MCL 마케팅 부서는 퇴근도 늦고 업무량도 많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박정연 부장 정말 빡빡해요! P&G의 경우 ‘플렉서블 아워즈’ 제도를 도입해 아침 8~10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할 수 있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근무시간이 긴 편이죠. 열정이 충만한 신입 때는 밤을 새우는 경우도 부지기수예요. ‘일과 개인의 밸런스’ 같은 건 없어요.(웃음) 두 가지 다 잘하려는 열정과 의지만 있을 뿐이죠. 하루에도 회의를 3~4번은 해요. 많을 때는 하루 종일 회의만 하기도 하죠. 협업할 부서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에요.



MCL 글로벌 팀과의 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학생들에게 굉장한 메리트인데요.

박정연 부장 전체 업무 비중으로는 30~40% 정도예요. 문서와 이메일은 90% 이상이 영어로 이뤄져요. 회의는 40% 정도가 영어라고 보면 되고요. P&G는 아시아본부가 싱가포르에 있다 보니 그곳 사람들과 협업이 특히 많아요. 마케팅 부서의 경우 싱가포르로 많이 나가요.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더라도 협업, 이메일링 같은 업무가 굉장히 많죠. 그렇다고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 실력을 원하는 건 아니에요. 영어를 잘하는 것보다 효과적으로 말하는 게 더 중요해요.



MCL 마케터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들려주시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박정연 부장 마케팅엔 자격증이 없어요. 가장 광범위한 분야이기도 하고요. 회계나 재무를 몰라서도 안 돼요. 마케터도 수적인 감이 있어야 해요. 마케팅도 일정 부분 수익 창출을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얼마 들여서 얼마나 수익을 낼 건지 정해야 하잖아요. 그래야 점유율을 올릴 수 있죠. 그게 없으면 굉장히 약한 마케팅이에요.

학창 시절에는 뭔가 하나를 깊이 파기보다 여러 분야를 골고루 공부하는 게 훨씬 좋을 듯해요. 경영학, 인문학 등 책도 많이 읽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이과적인 부분도 공부해보세요. 마케팅 전문 서적을 읽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훨씬 중요해요. 공모전, 조 모임같이 팀워크를 기를 수 있는 경험도 좋아요. 농담 삼아 “마케터는 입으로 먹고 산다”고도 해요. 그만큼 소통해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에요. 협력 부서에 내 얘기를 정확히 전하고 그들의 말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하죠.
[마케팅 완벽 해부] ‘마케팅 사관학교’ 한국P&G에 가다 “시장 움직이는 희열…안 해보면 절대 몰라”
글 장진원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