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던 서울 북촌 골목이 시끌벅적해졌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젊은 청년들 덕분이다. 삭막하던 서울에 낯설지만 활기찬 에너지를 불어넣은 ‘아띠인력거’. “차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을 사람 냄새 나게 바꾸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포부다.
[창간 3주년 특집] 미국 명문대 나온 엄친아, 인력거를 끌다
아띠인력거 대표 이인재
1985년생
미국 웨슬리안 대학교 졸업
2012년 7월 아띠인력거 창업


‘아띠인력거’ 이인재 대표와 처음 만났을 때는 찬바람이 쌩쌩 불던 지난겨울이었다. 인력거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페달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해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보려(?) 애쓰는 기자에게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니 미안해하거나 안쓰럽게 보지 말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놓여 지나는 사람들에게 손까지 흔들며 낯선 호사를 마음껏 즐겼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다시 만난 그는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밝게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옷은 한결 가벼워졌고, 주말에만 운영하던 인력거 투어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로 늘렸다. 지난 겨울에는 마음 가는 대로 페달을 밟았는데 이제는 북촌 코스 2개, 정동길 코스 1개, 서촌 코스 1개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요금은 성인 기준 1인당 2만 원. 3명까지 함께 탈 수 있고, 택시처럼 원하는 거리만 이동할 경우에는 알아서 요금을 내는 시스템이다.

5명이었던 직원도 16명으로 늘었다. 이 대표와 함께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20대, 절반 정도는 대학생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말에만 인력거를 끄는 투잡족도 있다. 의외로 여직원도 5명이나 된다. ‘놀면서 재미있게 일하자’는 그의 뜻에 맞는 젊은이들이 모여서인지 아띠인력거가 가는 곳에는 늘 밝은 에너지가 넘쳐난다.
[창간 3주년 특집] 미국 명문대 나온 엄친아, 인력거를 끌다
보스턴에서 인력거 알바한 경험 살려

이 대표는 미국 웨슬리안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들어와 증권사에서 1년여간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증권사를 때려치우고 굳이 고생하며 인력거를 끄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회사에서 일하면서 한 번도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매일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사업’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요.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대학 시절 보스턴에서 인력거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때 정말 즐겁게 일했었거든요.”

2006년 여름방학, 보스턴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던 이 대표는 당시 유행이던 인력거 아르바이트를 접하게 됐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쾌한 일이었다. 몸은 좀 피곤했지만, 그 덕분에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어느 때보다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즐겁게 일했던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서울에 인력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난해 여름 회사에서 나와 인력거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에서 유럽, 미국 수출용으로 제작된 고급 인력거 6대를 구입했고, 같은 생각을 가진 20대 초반의 또래 청년들이 그와 함께했다.

아띠인력거는 특히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미로처럼 엉켜 있는 서울의 뒷골목은 차로 이동하거나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것이 어려운데 인력거를 타면 작은 골목도 편하게 앉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거 라이더들이 영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실력도 출중하니 더없이 훌륭한 관광 가이드가 되고 있는 것.
[창간 3주년 특집] 미국 명문대 나온 엄친아, 인력거를 끌다
“인력거를 타면서 많은 분을 만났어요. 그중 스위스에서 왔던 한국인 모녀와의 추억이 기억에 남아요. 일주일간 한국 여행을 왔는데 인력거를 타고 난 뒤 그 어머니께서 다시 연락을 주셨어요. ‘딸이 생일인데 이벤트를 해줄 수 없겠냐’면서요. 알고 보니 모녀 사이가 좋지 않아 그동안 딸이 웃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인력거를 타면서 즐거워하는 딸의 모습에 감동을 받으셨대요. 그래서 인력거를 예쁘게 꾸미고 케이크도 준비해 멋진 이벤트를 해드렸죠.”

그 외에도 두산 박용만 회장, 엄홍길 대장, 가수 노영심, 배우 박상원 씨 등이 인력거의 손님이 됐다. 특히 노영심 씨와는 누나, 동생 사이로 가까워져 그녀의 콘서트에서 홍보를 위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서울에서 인력거를 끈 지 이제 10개월. 처음에는 이상하게만 바라보던 북촌 주민들도 이제는 그를 응원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날이 추울 때는 “잠시 가게 안에서 쉬어가라”며 자리를 내어주고, 목이 마른 그들에게 먼저 물 한 잔을 건네기도 한다. 사람들의 푸근한 인심에 그들은 더욱 힘을 내 서울 골목을 누빈다.

“얼마 전부터 지역 축제에 인력거를 운영하고 싶다는 연락이 자주 와요. 며칠 후에는 트럭에 인력거를 싣고 군산에 갈 계획이에요. 서울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인력거를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꿈인데,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 정말 기뻐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