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권 대학이 아니면 안 된다’ ‘한 번 탈락했던 재수생은 서류에서 탈락시킨다’ ‘29세 이상은 뽑지 않는다’ ‘2년 준비해도 안 되면 영원히 안 된다’ 등은 언론사 취준생들 사이에 공공연히 돌고 있는 루머. KBS 이정욱 PD는 이런 이야기가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낸 인물이다. 지방대 출신, 無스펙에도 불구하고 KBS 입사 준비 4수 끝에 당당히 합격한 이정욱 PD를 만났다.
[창간 3주년 특집] 4수끝에KBS 합격 “넘어지고깨지면서 내공쌓았다”
KBS 예능국 PD 이정욱
1984년생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2012년 7월 KBS 입사


“2012년 KBS 예능·드라마 PD직군은 총 6명을 선발했는데 1000명 이상이 지원했을 정도로 인기가 매우 높았습니다. 이정욱 PD는 6명 중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친구죠.”

KBS 인사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그에 대해 잠시 상상해봤다. 분명 삐까번쩍한 스펙에 화려한 말발을 옵션으로 장착했겠지. 긴장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이정욱 PD와 마주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의 반전으로 기자를 놀라게 했다.

지방대 졸업에 토익 850점, 한국어능력시험 3+등급.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했을 법한 대외활동도 없고 동기들에 비해 나이도 많은 편. 게다가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 10여 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고, KBS는 무려 4번째 도전이었다.
[창간 3주년 특집] 4수끝에KBS 합격 “넘어지고깨지면서 내공쌓았다”
험난한 입사 과정, 자전거 배울 때와 비슷

“저는 한 번도 제 학벌이나 스펙을 콤플렉스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언론사는 학벌보다 인성을 본다고 생각했어요. 숫자에 불과한 스펙들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책상에 앉아 영어 점수 몇 점을 높이는 대신 문화공연도 많이 보고 여행도 다니며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했어요. 또 1, 2년 안에 합격하려고 초조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좀 달랐어요.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맞는 적합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좀 더 여유를 갖고 준비할 수 있었어요.”

이 PD는 조바심을 내기보다 자신의 실력을 쌓고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그는 그런 과정들이 “자전거를 배울 때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넘어지고 깨지는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는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반복된 탈락이 쌓여 결국 자신의 내공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서류 통과하는 것도 쉽지 않았거든요. 자기소개서 같은 경우 성장배경이나 성격 등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게 되잖아요. 탈락을 거듭하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안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나 의지, 열정 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KBS에서 폐지해야 할 프로그램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그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특히 평소 TV를 시청할 때 같은 시간대나 같은 카테고리 안의 타 방송들과 비교하며 분석하는 연습을 오랫동안 해온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때 제가 얘기한 것이 분명 정답은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면접관들이 원하는 것은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방송에 대한 관심도거든요. 그 부분을 잘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요. 하고 싶은 방송의 지향점이나 목표 같은 것을 이렇게 잘 표현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무조건 오래 준비한다고 모두가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시험꾼’같이 요령이나 노하우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초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지치지 않는 것이 성공의 포인트라고 그는 말한다. 결국 묵묵히 오랜 기간 준비해온 이 PD는 현재 꿈에 그리던 예능 PD가 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기소개서에 KBS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썼었어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몸은 좀 힘들지만 정말 재미있게 일하고 있어요. 앞으로 많이 배워가며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겠습니다.”
[창간 3주년 특집] 4수끝에KBS 합격 “넘어지고깨지면서 내공쌓았다”
이정욱 PD가 일러주는 방송사 입사 Tip

KBS 열린 채용을 적극 활용하라

KBS는 서류부터 최종 면접까지 학벌, 나이, 이력 등을 오픈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때문에 토익 성적과 한국어능력시험 등급은 일정 정도의 점수만 확보한다면 굳이 올인할 필요가 없다.

현직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라

이 PD의 경우 광주 KBS에서 FD로 일하던 후배를 통해 현직 선배를 소개받았다. 덕분에 많은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 이 PD는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없다면 직접 메일을 보내는 것을 추천했다.

면접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라

갑자기 던지는 질문에 정답을 말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평소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인사담당자 역시 지원자가 외운 듯한 답변을 할 경우 면접관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글 박해나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