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소망’ 대로 산다는 것
감독 난니 모레티 출연 미셸 피콜리, 난니 모레티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外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外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外
지난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갑작스러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급하게 치러진 콘클라베, 즉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는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많은 이가 선출의 흰색 연기가 올라오는지 혹은 선출 실패의 검은색 연기가 올라오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비단 가톨릭 종교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오랜 세월 지키고 다듬어온 교회의 장엄한 의식은 하나의 흥미진진한 스펙터클로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여기까진 실제 상황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딱 2년 전, 이탈리아의 명장 감독 난니 모레티가 콘클라베를 다룬 영화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를 찍었다. 2001년 ‘아들의 방’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난니 모레티의 신작으로서, 2011년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바 있다.

선임 교황의 사망으로 전 세계 추기경들이 로마에 모인다. 몇 차례 투표를 거듭한 끝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멜빌 추기경(미셸 피콜리)이 새 교황으로 선출된다. 하지만 엄청난 인파 앞에서 첫 연설을 하려던 순간 멜빌은 공포에 질려 도망친다. 대변인은 호기심에 찬 언론에 “교황이 기도로 간구 중”이라 둘러대지만 멜빌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진다. 마침내 유명한 정신분석의(난니 모레티)까지 교황청에 불려온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의 시작은 예의 그 익숙한 스펙터클이다. 미켈란젤로의 화려한 작품들과 추기경들과 근위병들이 만들어내는 금색과 붉은색, 흰색, 검은색의 향연은 장엄한 분위기를 더한다. 그러나 영화는 곧 멜빌의 마음속 스펙터클로 들어간다.

멜빌은 분리장애를 떠들어대는 정신분석의의 확신을 거치고도 불안의 원인을 알 수 없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신앙심과 책임감으로 다져온 정갈한 삶을 돌이켜보면 볼수록 포기했던 것, 망각했던 것, 혹은 간절히 원했으나 원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이 하나씩 드러날 뿐이다.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와 함께 영화는 무수한 연기(演技)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망대로 흘러가지 않은 삶, 자신이 원치 않는 타인의 소망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의 환멸의 이야기.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는 종교 이외의 일상생활에선 어린아이처럼 소박한 추기경들의 모습을 따뜻한 웃음으로 풀어내지만, 그 이면은 결코 순진하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타인이 원하는 것이 상충될 때, 그 타인의 의지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놀라운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절실하게 깨닫는 순간 우리는 스크린 앞에서 할 말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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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용언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