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학예사) 24시

큐레이터, 일명 학예사·학예원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개최하고, 작품 또는 유물을 구입·수집·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설명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리 녹록지 않은 과정들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직업, 그래서 매일이 새롭고 스펙터클한 큐레이터의 하루에 동행했다.
[일일 동행 체험] 전시의 A to Z를 책임지는 미술관의 프로듀서
예술의전당 전시사업부에서 근무하는 서민석 큐레이터는 한가람미술관의 전시 기획을 맡고 있다. ‘어떤 전시를 어떻게 열까’ 하는 연구 단계부터 전시장 설계와 도록 제작, 마케팅, 전시장 민원 해결까지.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의 처음과 끝은 그의 손에 달렸다.

“보통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그는 “큐레이터의 업무와 일정은 진행하는 ‘전시’에 따라 달라진다”며 전반적인 스케줄과 업무에 대해 설명했다.

일단 전시의 주제, 콘셉트 등을 구상하는 프로젝트 준비 기간에는 다양한 책과 자료를 보면서 연구하는 일을 한다. 이렇게 준비 기간을 통해 전시의 주제, 콘셉트 등을 확정 지으면 본격적인 프로젝트 기간이 시작된다. 작가 섭외, 도록 제작, 전시장 구성 등 전시의 틀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면서 관련 마케팅이나 홍보 활동도 함께한다. 전시가 시작되면 관람객 통솔이나 현장의 민원 해결, 도슨트(관람객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 교육 등을 진행하며 다시 다음 전시 기획에 들어간다.

큐레이터의 전반적인 업무를 파악하고 나니 그동안 그가 일일 동행 체험의 일정을 미뤄온 이유도 이해가 갔다. 프로젝트 준비 기간에는 하루 종일 책과 자료만 보고 있으니 기자가 동행해도 함께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던 것. 본격적인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드디어 기자는 예술의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일일 동행 체험] 전시의 A to Z를 책임지는 미술관의 프로듀서
[일일 동행 체험] 전시의 A to Z를 책임지는 미술관의 프로듀서
9:00 오전 9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전시사업부를 찾아갔다. 30분 일찍 출근한 서민석 큐레이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잠시 오늘의 일정을 점검한 뒤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오전 10시에 한남동 설계사무소에서 회의가 있어요. 현재 준비 중인 ‘디지털 명화 오디세이 시크릿 뮤지엄’전의 전시 설계와 포스터를 점검하는 회의죠.”

오는 6월 22일부터 100일간 열리는 ‘디지털 명화 오디세이 시크릿 뮤지엄’전은 그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블록버스터형 전시다. 15세기부터 20세기의 명화를 원화 없이 디지털 영상으로 재구성해 화제를 모았던 2010년 프랑스 프티 팔레 미술관의 전시를 국내에 들여왔다. 거기에 국내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더하고 전시 구조를 재구성해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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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으로 이동하며 “한때 ‘멋져 보인다’는 이유로 큐레이터가 되고 싶었다”는 기자의 부끄러운 고백을 털어놨다. 그리고 “공부할 게 너무 많아 금세 포기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 큐레이터가 되는 길은 매우 험난(?)하다. 준학예사 시험에 합격하고 실무 경력 1년 이상을 인정받아야 준학예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준학예사 자격증 취득 후 실무 경력 2년 이상을 인정받으면 3급, 그 후 5년의 경력이 더 쌓이면 2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서 큐레이터는 현재 2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1급 정학예사는 2급 취득 후 7년의 경력이 더 쌓여야 취득할 수 있는데, 국내에는 아직 1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한 큐레이터는 없다.


10:00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남동 설계사무소에 도착했다. 미팅 시간인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서 큐레이터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2명, 설계사무소 직원 2명, 이번 전시의 비주얼 디렉팅을 맡은 하석준 작가, 공동 주최사의 담당자가 함께 자리했다. 모니터를 통해 전시장을 3D로 구현한 장면을 보며 수정 사항을 점검했다.

“원근법 섹션의 벽 색깔을 회색 계통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요? 거리감을 잘 표현하려면 무채색이 나을 것 같은데요.”

“전시장 안에서 관객들이 가진 감정을 끝까지 갖고 나갈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려면 출구의 느낌도 중요할 것 같아요.”

서 큐레이터는 모니터를 보며 그림이 걸린 높이와 전시장 구조물의 각도 등 세세한 부분의 수정 사항까지 체크했다.

“규모가 큰 전시는 이렇게 외부 업체에 설계를 맡겨 진행하지만, 보통의 전시는 큐레이터가 직접 전시장 설계를 해요.”
[일일 동행 체험] 전시의 A to Z를 책임지는 미술관의 프로듀서
12:00 회의가 끝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모두 자리를 정리하고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이 준비되는 동안 서 큐레이터가 다시 회의 자료를 꺼냈다. 이번에는 전시의 홍보와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전시 팸플릿의 모양을 정하고 홈페이지의 구성 내용과 프로모션 방법 등에 관한 의견이 오갔다.

“전시의 홍보, 마케팅도 큐레이터의 업무예요. 이번에는 공동 주최를 하는 쪽에서 마케팅 분야를 맡아 일이 좀 수월해졌지만 보통은 보도 자료를 작성하고 초대권 프로모션을 하는 일도 큐레이터가 해야 하죠.”



13:30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1시 30분. 이번에는 평창동에 있는 회화복원가 김주삼 소장의 작업실로 향했다.

“전시가 시작되면 외근이 많아요. 직접 작가를 섭외하러 다니고 계약서도 쓰고 업체들도 만나야 해요. 사람 만나는 일이 많은 직업이죠. 그래서 큐레이터에게는 대인관계도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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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오후 2시, 평창동 작업실에 도착했다. 이번 전시에서 도움을 받을 김주삼 회화복원가와 계약서를 쓰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전시 설계 도면을 보면서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긴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다시 예술의전당으로 향한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이동하는 차 안에서 수다는 다시 이어졌다.

“큐레이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직업이라 열린 시각을 갖고 시대 흐름, 이슈를 잘 이해해야 하죠. 책도 많이 읽고 TV도 자주 봐야 해요. 해외 출장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1년에 1, 2회 정도 있으니 외국어를 잘한다면 좋겠죠. 해외 경험이 있는 것도 유익해요. 열린 시각을 가질 수 있고 전시에 대한 접근 방법도 보다 폭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17:00 예술의전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서 큐레이터는 자리에 앉아 밀린 업무를 시작했다. 오늘 회의에서 나온 수정 사항을 정리하고 도록을 위한 원고 작업을 할 계획이다.

“도록의 원고 작업도 큐레이터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죠. 그래서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원고 작업만 할 때도 있어요.”
[일일 동행 체험] 전시의 A to Z를 책임지는 미술관의 프로듀서
18:00 오후 6시. 프로젝트 기간에는 야근이 잦다.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 큐레이터는 슬금슬금 먼저 퇴근 준비를 하던 기자를 데리고 예술의전당에서 진행 중인 전시장으로 향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잠시 시간을 내 기자에게 전시를 소개하고 작품 설명도 덧붙였다. “어떤 그림이 가장 좋은 것이냐”는 우문에는 “유명한 작품, 남들이 좋다는 작품보다 자신에게 감명을 주는 작품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현답을 돌려줬다. 그러고 나서 그는 미술관 앞까지 나와 기자를 배웅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해야 할 업무가 많아요. 일이 많긴 해도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은 늘 즐겁죠.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이 이 직업의 매력인 것 같아요.”



글 박해나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취재협조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