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멘토링

오디션, 특히 대중가수를 뽑는 프로그램들이 공중파와 케이블을 가릴 것 없이 인기몰이다. 때론 독설을 마다하지 않는 냉철함, 때론 ‘아빠 미소’로 불리는 영혼의 멘토까지 자처하는 심사위원들. 이들의 활약은 때론 오디션 참가자보다 더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한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음악과 작곡에 대한 관심도 가히 폭발적인 수준이다. 대한민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스타 작곡가 윤일상을 잡앤조이 기자단이 직접 찾았다. “작곡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나요?”
한국 가요계 미다스의 손 작곡가 윤일상 “음악은 결국 영감… 순수함 유지하면 좋은 곡 만들 수 있어”
윤일상 님 곡에선 ‘세대 불문’ ‘연령 불문’이라는 말이 떠올라요. 세월이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는 명불허전의 곡을 쓰는 비법이 궁금해요.

19세에 데뷔했으니 어린 나이였죠. 쿨의 ‘운명’이나 DJ DOC 노래들도 20대 초반 작품들이고요. 지금 그때의 느낌을 낼 순 없을 거예요. 대신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감각이 계속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 드는 게 오히려 기대되죠.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큼 지속적인 노력을 쏟아부어야 해요. 제 경우엔 작곡이 직업이라기보다는 늘 호흡하고 밥을 먹는 것 같은 일상에 가까워요. 녹음 작업을 마치고 나서도 새로운 음악 스킬이 없나 찾아보고 공부하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자고 있을 때 혼자 깨어 있는 쾌감’ 같은 거 말이죠. 가장 중요한 건 ‘고이면 끝’이라는 거예요. 음악이나 인생이나 가장 안 좋은 게 바로 ‘제로(0)’상태예요. 마이너스는 더 큰 마이너스와 시너지를 일으켜 플러스로 돌아설 수 있죠. 언제나 제로가 되지 않게 노력해온 모습이 ‘감각 있다’는 말로 인정받은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자부하죠.

작곡가로 데뷔하고 싶을 때 어떤 경로를 밟아야 하나요. 가수들처럼 오디션도 보나요?

마찬가지예요. 오디션도 보죠. 지금 우리 회사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중에도 오디션 출신이 있어요. 기성 작곡가 밑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기도 하고요.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컴퓨터 음악이 기본은 아니었어요. 음악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작곡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죠.

지금은 문턱이 가벼워진 셈이에요. 하지만 오래가는 음악은 요령만으론 안 돼요. 작곡을 업으로, 삶의 일부로 가져가려면 베이스를 갈고닦아야죠. 작곡의 시작은 영감을 떠올리는 거예요. 요즘 음악계가 혼란스러운 이유도 음악을 기술적으로 만들어낸다는 착각 때문이죠.

편곡이나 트랙을 만드는 게 작곡같이 여겨지고 있어요. 그건 작곡이 아니라 기술적인 배열이죠.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본질적인 부분은 변하지 않아요. 음악 전문 기획사의 오디션이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같은 창작경연 등 의외로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는 많아요.
한국 가요계 미다스의 손 작곡가 윤일상 “음악은 결국 영감… 순수함 유지하면 좋은 곡 만들 수 있어”
주위에 학업과 음악 사이에서 갈등하는 친구가 많아요. 뒤늦게 소질을 발견한 친구들에게 해주시고픈 조언은 없나요?

예술 한다고 현실과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반대로 예술 안 한다고 현실과 가까워지나요? ‘예술은 일상과 다르다’는 고정관념부터 버리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특히 대중예술일수록 순수함을 잃지 않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음악뿐 아니라 어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죠. 특히 IT나 광고같이 크리에이티브한 분야는 ‘뭐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으론 성공할 수 없어요. 작곡을 하겠다면 음악을 편식해서도 안 돼죠.

또 하나 중요한 게 공부엔 때가 있다는 말이에요. 시기를 놓치고 늦게 시작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힘들고 어렵죠. 10대면 10대, 20대면 20대에 경험할 수 있는 일을 다 겪어보세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만큼 멋있는 일이 있을까요? 학업과도 충분히 병행할 수 있어요. 대신 잠을 줄이세요. 저는 한 해가 시작될 때마다 10년의 계획을 세워요. 물론 계획대로 안 될 수도 있죠. 그래도 실망하진 않아요. 아직 9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수 지망생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습생 수가 100만 명이라고 해요. 솔직히 기대 반 우려 반이에요. 음악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건 기대할 만한 현상이죠. 음악 하는 환경도 그만큼 좋아질 거고요. 반면 가수라는 직업을 단순히 연예인의 대체 직업군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오히려 패착이에요. 작곡가는 자기 자리에서 곡을 열심히 쓰고, 가수는 노래를 열심히 부르면 좋겠어요. 자기 직업, 자기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단순히 얼굴 알리고 연예인되기 위해서 가수를 택하는 건 순전한 착각이에요. 음악 자체가 목표가 돼야죠.

곡 쓰실 때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요?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나요?

살아가는 모든 환경에서 영감을 받죠. 누군가가 걸어오는 장면, 좋은 색감, 아내의 말과 표정 등 수없이 많아요. 좋은 영화를 보다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지금 이렇게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떠오를 수도 있죠. 어머님 집안이 클래식을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며 자랐죠. 특별히 영향을 받은 뮤지션으로는 비틀즈를 꼽을 수밖에 없네요. 비틀즈의 음악이 없었다면 아마 팝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을 거예요. 어릴 때는 징 박힌 옷 입고 가죽부츠 신으며 록음악도 했는데, 레드 제플린 등 수없이 많은 선생님이 있었죠.
한국 가요계 미다스의 손 작곡가 윤일상 “음악은 결국 영감… 순수함 유지하면 좋은 곡 만들 수 있어”
김범수의 ‘보고 싶다’나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같이 롱런하는 히트작이 많고, 리메이크되는 노래도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결국 멜로디의 힘 아닐까요. 음악이 오래갈 수 있는 힘, 모든 음악의 중심에는 멜로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스팅, 엘튼 존 같은 슈퍼스타들이 모인 밴드가 있었어요. 사운드도 정말 훌륭했죠. 그런데 맨 마지막 순서에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가 기타 한 대 달랑 들고 ‘예스터데이’를 부르는 거예요. 그 순간 팔 위에서 닭들이 팔딱팔딱 뛰어다니더군요. 그게 바로 멜로디의 힘이죠. 작곡가로서 앞으로도 좋은 멜로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 같아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독설하시는 모습을 뵀어요. 음악 하실 때와 평소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독설을 한 적은 없어요. 직설이었죠. 방송 특성상 편집의 효과도 컸고요. 심사위원들은 다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하면 떨어뜨리지 않을까’를 고민하죠. 작은 재능이나 가능성을 지나쳐버릴 수 있으니까요. 오디션은 원석을 찾는 작업이잖아요.

직설적으로 대하는 경우는 진정성이 부족한 친구들에 한해서예요. 방송엔 안 나왔지만 심하게 화를 낸 적도 있어요. 20대 초반에 잠깐 일본에 다녀온 경험이 전부인데 말투 자체가 일본식인 경우였어요. 자세가 안 된 친구에겐 냉철하게 얘기해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희망 고문도 없죠.

디렉터의 경우엔 더해요. 녹음실이란 장소에서 한정된 시간 안에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선 에둘러 얘기하기 힘들죠. 잘 알아듣게 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직업병도 생겼어요. 음악을 순수하게 감상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평가를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집에 전축도 새로 들여놨죠.
한국 가요계 미다스의 손 작곡가 윤일상 “음악은 결국 영감… 순수함 유지하면 좋은 곡 만들 수 있어”
작곡, 프로듀서, 멘토 활동에 에세이까지 출판하셨어요. 앞으로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은 활동이나 계획이 있나요?

올해 우리 회사에서 나올 친구들이 많아요. 가장 큰 과제죠. 브라운아이드걸스를 비롯해 신인들도 많고요. 회사 잘 세우는 게 우선이에요. 외부 작업보다는 내 식구를 많이 챙기려고 해요. 그래서 연습생들도 하드하게 가르치고 있죠. ‘요아리’같이 홍대에서 공연 위주의 활동을 벌이는 가수들을 배출하기 위해 인디 뮤지션 전문 회사도 따로 세웠어요. TV에 많이 나가기보다 공연으로 먹고살게끔 하자는 거죠.

뒤늦게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일단 음과 친해져야 해요. 영감이 떠오르는 게 가장 중요하죠. 악기를 하나 이상 다루면서 음과 친해지세요. 작곡의 첫걸음마예요. 보통 ‘컴퓨터에 뭘 깔아야 하나’ 물어보곤 하는데, ‘포토샵 깔아놓고 그림 그린다’고 하는 것과 같아요. 기술이 하루 단위로 바뀐다 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건 있어요.

가족, 사랑 같은 것. 음악으로 치면 멜로디같이 음악만이 가진 순수성이죠. 그게 중요해요. 저 스스로도 그런 가치를 중심으로 삼고 음악 할 거고요. 당장 빅히트가 아니더라도 오래갈 수 있는 음악. 그러려면 내가 먼저 질리지 않아야 해요. 물론 코드 모르고 화성학 몰라도 작곡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알려고 노력하는 친구들도 있죠. 그런 친구들은 인정해요. 어차피 공부하는 단계니까요. 음악엔, 공부엔 끝이 없어요.
한국 가요계 미다스의 손 작곡가 윤일상 “음악은 결국 영감… 순수함 유지하면 좋은 곡 만들 수 있어”
오래가는 음악의 조건이 뭘까요?

저 스스로 이벤트적인 비즈니스를 매우 싫어해요. 유튜브 등 플랫폼 자체가 많이 변했지만, 메가 히트작을 보면 결국 뮤지션 스스로 즐기는 음악이에요. 잠깐의 이슈는 뷰가 올라가는 정도죠.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유튜브에서도 인정받아요. 대중은 바보가 아니에요. 몇 번만 접해도 목적을 다 알죠. ‘진정성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하지만, 실상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학생들에게 더욱 절실한 말이에요. 미래를 변화시켜야 하는 주역들이니까요.

‘위대한 탄생’이 화제였어요. 객관적으로 가능성이 부족한 친구들을 선택하신 게 연일 뉴스였는데요.

노력해서 되는 재능이 있고, 아닌 경우가 있어요. 가창력이나 춤은 노력하면 돼요. 노력해도 안 되는 게 톤, 자기만의 톤이에요. 색깔은 노력한다고 갖기 힘들거든요. 정서경, 샘 카터(루나 플라이) 같은 친구들이죠. 사실 제가 선택한 친구들은 다 이런 경우예요. 일반적인 기준으로 본다면 음악적으로도, 외모로도 떨어질지 몰라요.

하지만 옆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어느 순간 몰라보게 발전할 수 있는 아이들이죠. 그런데 이상하게 오디션을 보면 여자들만 걸려요.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잘하는 게 사실이에요. 제가 남자다 보니 여성 보컬을 위한 노래를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죠.
한국 가요계 미다스의 손 작곡가 윤일상 “음악은 결국 영감… 순수함 유지하면 좋은 곡 만들 수 있어”
작곡이나 음악을 하려는 후배들을 보며 안타까운 점은 없나요?

요새 다시 LP가 붐이래요. 우리 때는 레코드숍에 가서 “그 가수 노래 언제 나오느냐”며 계속 묻는 재미가 있었죠. 처음 가져와서 겉 비닐을 뜯는 순간, 그 특유의 냄새. 턴테이블에 올린 다음 조심스레 바늘을 올리던 기억. 그다음 재킷을 보며 작곡가는 누구고, 연주는 누가 했나 꼼꼼히 들여다보던 재미.

한 곡을 듣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었어요. 요즘은? 버튼 하나 누르면 그만이에요. 남녀가 만나 키스부터 하면 재밌겠어요? 어떻게 하면 손이라도 잡나 두근대던 과정이 사라진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자면 요즘 어린 친구들이 안타까움을 넘어서 불쌍하기까지 해요. 아쉽기도 하고요. LP가 안 되면 CD라도 사서 경험해보세요. 진짜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은 음원 말고 CD를 사서 들어봐야 해요.
한국 가요계 미다스의 손 작곡가 윤일상 “음악은 결국 영감… 순수함 유지하면 좋은 곡 만들 수 있어”
끝으로 20대 청춘들에게 들려주고픈 조언 부탁드려요.

할 수 있는 경험을 다해 보라! 스펙이 아닌 그런 경험 때문에 바빠졌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론 여행에서 얻은 게 많았어요. 서울만 해도 안 가본 데가 많을걸요? 조그만 사진기 하나 메고 세상 스케치도 해보고요. 그 밖에도 할 게 너무나 많죠. 20대라면 조금 무모해도 좋아요.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아니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도전해보세요. 그게 젊음이에요. 여러분은 아직 사회라는 정글에 발을 내딛지 않은 상태예요. 사회는 정글이죠. 언제 뱀이 튀어나올지 몰라요. 그만큼 잘 준비하세요. 정글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나와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건 ‘착한 사람이 승리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반칙하지 않고 정도를 걷는 사람이 승리하는 세상을 여러분이 꿈꾸고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기성세대에게 불만이 있다면서 똑같이 행동한다면 더 나쁜 거죠.


글 장진원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