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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짜증나, 우리 발표조에 편입생 있어.”

지나가던 여학생 한 무리가 뱉은 말에 김혜나(가명·23) 씨가 순간 움찔했다. 평소 제일 듣기 싫은 말을 길 가다 우연히 들은 것. 편입생인 그는 수업 중에도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조심하고 있다. 교수 질문에 대답을 못하거나 과제를 하나라도 빼먹으면 학생들이 ‘편입생은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할까봐 늘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수능 성적에 맞춰 속칭 ‘인 서울’ 대학에 진학했던 김 씨는 자신의 학교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입학 직후 반수(합격한 대학에 다니면서 다음 수능을 준비하는 것)를 노렸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결국 편입에 도전했다. 평소 자신 있었던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고3 시절만큼이나 편입 공부를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가 학교를 바꾸려고 애쓴 이유는 비교적 단순했다.

“집안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학교에 진학해서 아쉬움이 컸거든요. 그리고 학벌에 대한 부담도 컸고요. 사실 한국 사회는 학교 간판을 중시하잖아요. 학벌이 하나의 무기가 되는 취업시장에서 성공하려면 학교 간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지금의 학교와 전공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어요. 기존 학생들이나 학과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있는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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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주변인”

네이버 포털사이트에는 김 씨가 편입한 학교의 ‘편입생 카페’가 따로 있다. 편입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진 학생들이 가입해 정보를 공유하고 이런저런 고민도 나누는 곳이다. 편입 시험 후에는 합격한 학생들끼리 정모도 한다. 그러나 김 씨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편입생들끼리만 몰려다닌다고 생각할까봐 일부러 나가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이왕 편입해서 다닐 거면 재학생들과 다양하게 사귀어야 학교에 더 잘 녹아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편입에 성공하자마자 평소 관심 있던 동아리부터 찾았거든요. 이미 재학생들의 결속력이 대단한 학과 조직보다는 여러 전공의 사람들이 모이는 동아리가 소속감을 느끼기 좋다고 여겼어요.”



불이익까지 감수하며 선택한 길

“그동안 관리해 놓았던 평점이 거의 다 날아가서 참 아까웠어요.”

편입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김 씨의 학점은 좋은 편이었다. 2학년까지 총 학점 평균이 4.0을 넘었다(4.5점 만점). 스스로 ‘아싸(아웃사이더)’라고 표현할 만큼 학교 행사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고 수업만 열심히 들었다.

과제도 꼬박꼬박 제출하고 특히 전공 시험 전날에는 밤을 새워가며 학점 관리를 했다. 그러나 그 2년 동안의 노력으로 이뤄낸 학점을 인정받으려고 찾아간 담당 본부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편입한 대학에서 기존 학교의 수업을 대부분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졸업 학점을 채우기 위해선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수업을 듣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학점 인정을 거의 받지 못해 졸업 때까지 빽빽하게 수업을 들어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녀가 감수한 불이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경제적인 불이익. 김 씨는 “편입하면서 입학금을 한 번 더 냈다”고 말했다. 처음 다녔던 대학에서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으로 학비를 마련한 김 씨로서는 등록금과 별개인 입학금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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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때문에 더 아파

“아무래도 ‘지잡대(지방에 위치한 비교적 이름 없는 대학교) 출신’이라는 편견이 가장 힘들어요.”

낯선 환경과 생소한 시스템, 학점에 불이익을 받고 남들보다 돈도 더 많이 내야 하는 편입생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편견’.

마치 고등학교 때 공부를 안 해서 지잡대에 들어가 놓고 편법으로 학벌을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편입이라는 좁은 관문을 뚫고 들어왔다고 인정해주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좋지 않은 선입관을 가진 이가 더 많다는 것.

“가끔 대학 이름 앞에 ‘편’ 자를 붙여서 재학생들과 구분 짓는 표현을 들을 때는 정말 섭섭해요. 예컨대 연세대 원주 캠퍼스나 고려대 세종 캠퍼스를 원세대, 조려대라고 하는 것처럼 편O대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래도 1년 동안 편입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깨달은 사실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실력이 최고라는 점. 김 씨는 “신경 써서 학점 관리를 하니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는 것 같다”면서 “취업시장도 아닌데 학점으로 평가받는 게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편입 준비생·편입생이 기억해야 할 3가지 포인트
“학력 세탁하려고 편입? 절대 하지 마!”

수능으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경우, 재수·삼수를 선택하느니 나중에 편입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생각하는 편입의 효과는 기대치보다 훨씬 낮다는 게 취업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편입을 준비하거나 편입에 성공한 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세 가지 포인트를 간추렸다.

도움말 : 신길자 언니네 취업가게 운영자·윤호상 인사PR연구소장



‘자기만족’과 ‘취업 성공’ 가운데 무엇을 위한 선택인가

자기만족을 위한 편입이라면 나름의 성취감이 있을 터. 하지만 취업을 위한 편입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편입한 학교가 자신의 최종 학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특히 학벌을 중시하는 기업이라면 편입 전 학교와 편입 후 학교의 중간치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편입 전 학교도 평가 대상으로 늘 따라다니는 셈이다. 다시 말해 편입은 ‘학력 세탁’ 용도로 썩 좋은 선택이 아니므로 학교 간판에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다.



새 학교에 녹아들 수 있는 강한 멘탈을 준비하라

낯선 환경, 낯선 학우들, 낯선 교수들까지 편입 후 적응 과정은 녹록하지 않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편입 전 학교와 편입 후 학교, 그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편입으로 입학한 새 학교는 이미 재학생들끼리 만들어진 끈끈한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것인 만큼 정신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소속감을 느끼며 성공적인 대학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이질감을 이겨내고 기존 멤버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강한 멘탈’을 가져야 한다.



면접 때 ‘간판 때문에’라고 답하지 말라

신입사원 면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편입을 한 지원자에게 면접관이 묻는다. “왜 편입을 했나요?” 여기서 “학교 간판 때문에”라고 솔직히(?) 답한다면 탈락 가능성은 확 높아진다. 가장 바람직한 대답은 편입한 학교의 특정 교수나 학교 분위기, 커리큘럼, 그 학교만의 특징 등 학교 자체에 대해 말하는 것. 학과 역시 진로나 적성과 맞는 것을 선택해 강조하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이때 주의할 게 한 가지 있다. 수능 점수에 맞춰 전공을 정했다가 편입을 통해 전공을 바꾼 경우, 본인의 기존 전공을 부정하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점. 두 전공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게 바람직하다. “기존 전공이 나에게 맞지 않아서”라는 대답은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다. 같은 전공으로 편입했을 때도 마찬가지. “색다른 환경에서 경쟁하면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고 싶었다”는 의미로 대답하는 게 바람직하다.


글 이시경 인턴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