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or’라는 영어 단어 알지? 중학교 교과서에 나올 법한 아주 쉬운 단어야. 혹시라도 영어 알레르기가 있는 위인이 있을지도 모르니 친절하게 해석해줄게. ‘가난한’이란 형용사, 혹은 ‘가난한 사람’ 즉 ‘가난뱅이’를 가리키는 명사로도 쓰여.

세상에 가난뱅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예술가의 영감은 배부를 때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만, 고매한 예술가라 해서 가난을 영광으로 삼고 싶다는 인간은 장담하건대 한 명도 없다는 데 500원 건다! 근데 요즘 매스컴, 특히 경제신문이나 뉴스에서 이놈의 ‘푸어’란 말이 심심찮게 들려. 갑자기 가난뱅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라도 한 걸까? 내 주위 사람들은 별일 없이 잘들 사는 거 같은데….

특히 자주 들리는 소리, 하우스 푸어! house는 집이고, poor는 가난이라…. 집이 있는데 가난뱅이라고? 아니, 버젓이 내 집을 사서 살고 있는 사람이 대체 왜 가난하다는 거야! 그럼 세 들어 살면 죽으란 소린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야.

우선 내 집을 가지고 있다는 건 분명 세 들어 사는 경우에 비해 보유한 자산이 많다는 걸 뜻하지. 10억짜리 아파트 사서 사는 사람과 100만 원짜리 월세 사는 사람의 자산 가치를 비교해봐. 근데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아.

2000년대 들어 급상승한 아파트 가격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급습하기 전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어. 이른바 ‘강남·부동산 불패’ 신화지. 2000년 2억4000만 원 하던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는 2001년 처음 3억 원을 돌파해 이듬해 4억 원, 2003년 6억 원, 2005년 7억 원을 거쳐 2006년 9월에 9억 원을 돌파했어. 상한가 화살표가 어디까지인지 모를 정도였어. 이때부터 시작된 현상이 있어. 자기 돈 3~4억 원에 대출금 3~4억 원을 얹어 집을 사기 시작한 거야. 2005년 무렵부터 본격화된 현상이지.
[입사 시험에 나와! 족집게 경제상식 강의] 집 가진 가난뱅이들의 합창 “오빤 ‘하우스 푸어’ 스타일~”
아파트값 떨어지며 ‘푸어’ 양산

셋방살이가 지긋지긋해 집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거액의 빚을 척척 내면서까지 집을 산 이유는 간단해. ‘부동산은 오른다’는 맹목적 믿음! 당장 원리금 내는 게 조금 빠듯해도 몇 년만 지나면 시세 차익이 대출금을 충당하고도 남는다는 믿음이었지.

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치자 자산, 특히 부동산에 낀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졌어. 힘들게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것도 모자라 처음 구매가(새 아파트라면 분양가)보다 값이 떨어지는 경우가 속출하게 된 거지.

적게는 집값의 50%, 많게는 90%까지 대출을 받으며 집을 산 경우도 있어. 이자만 내다 원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집값이 자꾸만 떨어진다고 생각해봐. 심지어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기 모자란 주택, 이른바 ‘깡통주택’까지 등장했지.


이자만 내다 원금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 왔는데, 집값이 자꾸만 떨어진다고 생각해봐. 심지어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기 모자란 주택, 이른바 ‘깡통주택’까지 등장했지.

사실 하우스 푸어는 정식 경제학 용어도 아니야. 정확한 정의도, 기준도 없어. 그러다 보니 조사하는 기관에 따라 ‘100만 가구가 넘는다’고 하는 경우도 있고, ‘7만 가구 정도에 그친다’고 하는 곳도 있어. 어쨌든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곤란을 느끼거나, 주택을 처분해도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야.

대책? 뾰족한 수는 없다고 보는 게 맞아. 자산 가치의 상승, 즉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한 방에 해결되겠지만, 언제가 ‘바닥’인 줄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솔직한 말이야. 그렇다고 집값에 또 거품이 끼는 것도 문제니, 이래저래 딜레마에 빠진 게 바로 하우스 푸어 문제야.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