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처음 홀드를 잡았던 손은 어느새 하얀 초크 가루가 익숙하다. 클라이밍에 입문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세월. 예쁜 발가락을 굽고 울퉁불퉁하게 만든 암벽화는 분신과도 같아졌다. “암벽에 매달려 있을 때가 가장 나답다”고 말하는 암벽등반여제(女帝), 김자인 선수 이야기다.
[나의 꿈 나의 길]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암벽과 하나 된, 나는 클라이머다!”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약력 1988년 출생 153cm, 42kg
2012년 고려대 체육교육과 졸업
동 대학원 스포츠심리학 전공
올해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SFC) 7차 월드컵 리드 1위 등 다수 세계대회 석권
2012년 현재 세계 랭킹 1위, 월드컵 랭킹 2위

김자인 선수는 인공 암벽을 오른다. ‘홀드’라 부르는 인공물을 벽에 설치하고, 이를 잡고 오르는 경기로 ‘스포츠클라이밍’이라 부른다. 처음엔 산악인들의 실내외 훈련용으로 시작했지만, 2020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 유력할 만큼 인기 스포츠로 발전했다. 전통의 산악 강국인 유럽에선 TV 생중계로 방송될 정도로 인기다.

국내 스포츠클라이밍 계에서 그녀는 독보적인 존재다. 동양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인 ‘아르코 록 마스터’에서 우승(2010년)했고, 아시안 챔피언십은 무려 8연패(2012년)를 달성했다. 올 시즌만 해도 3번의 월드컵 우승 등 세계 랭킹 1~2위를 다투는 톱랭커. 피겨로 치면 김연아, 수영으로 치면 박태환 급 활약을 펼치는 셈이다.

친구들은 중학교 진학 준비로 들떠 있던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처음 홀드를 잡았을 때만 해도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암벽등반 마니아 부모님 덕에 오빠들이 먼저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고, 어릴 때부터 암장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하며 자연스레 발을 디디게 됐다.

“처음엔 재밌는 줄도 몰랐어요. 욕심이 많은 편이라 뭘 하면 무조건 잘하고 싶어해요. 클라이밍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하다 보니 점점 재미있어지는 거예요. 2004년부터 월드컵 대회에 나갔고, 2007년 들어 처음으로 입상했어요. 월드컵 첫 우승은 2009년에, 세계 랭킹 1위는 2010년에 처음 기록했죠.”
[나의 꿈 나의 길]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암벽과 하나 된, 나는 클라이머다!”
세계 랭킹 1위 다투는 ‘암벽 여제’

153cm 키에 42kg의 몸무게. 일반인치고도 작은 체구지만,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럽게 암벽을 오르는 모습에서 ‘여제’라는 별명이 주는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클라이밍 선수답게 암벽과 그녀의 운명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하셨대요. 워낙 등산을 좋아하셔서 제 이름이 자일(seil, 로프)의 ‘자’와 인수봉의 ‘인’을 딴 거예요. 아버지가 지어주셨죠.”

김자인 선수는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 리드, 볼더링, 스피드 등 크게 3가지로 나뉘는 개별 종목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

리드 종목은 15m 내외의 암벽에 안전장구를 착용한 후 완등을 겨루는 경기다. 볼더링은 5m 내외의 낮은 벽이지만, 안전장비 없이 서로 다른 4~5개 루트를 완등하는 방식을 말한다. 스피드는 15m 높이의 벽을 누가 가장 빠르게 오르나를 겨룬다.

홀드를 잡고 몸을 지탱하는 것이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육상으로 치면 100m 달리기, 높이뛰기, 마라톤만큼이나 개성과 등정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난이도를 우선으로 하는 리드에 비해 볼더링은 크고 화려한 동작이 많고 그만큼 근지구력(파워)을 요한다. 종목마다 훈련 방법, 주로 쓰는 근육도 다르다고.

김자인 선수는 리드 종목에선 명실공히 세계 최고다. 볼더링의 경우 지난해 처음 1위에 올랐는데, 리드 선수가 볼더링 결승에 꾸준히 진출하는 예는 세계적으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요즘 들어 새로운 레저 스포츠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 실내 암장이 속속 문을 열고 있고, 동호인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 ‘얼짱’ 소리를 듣는 예쁜 용모에 아담한 체구, 그럼에도 세계를 제패하는 실력까지 갖춘 그녀의 활약이 스포츠클라이밍 저변 확대의 일등 공신임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유럽에선 특히 인기예요. 생활 스포츠로 자리 잡았죠. 우리도 인지도가 많이 올랐고, 직접 운동하는 분도 엄청 늘었어요. 사실 실력에 비해 국내 인지도가 만족스러운 수준은 못 됐죠. 솔직히 억울한 면도 있었고요. 사람들이 스포츠클라이밍이라는 종목 자체를 모른다는 게 많이 아쉬웠어요. 그럴수록 훈련 열심히 하고 경기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요즘엔 미디어에도 많이 소개돼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어요.”
[나의 꿈 나의 길]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암벽과 하나 된, 나는 클라이머다!”
스포츠클라이밍 대중화 일등 공신

보통 4~7월 사이에는 볼더링 대회가, 7~11월에는 리드 경기가 많이 열린다. 1년 중 넉 달을 빼고는 내내 시즌이 이어지는 것. 비시즌이라 하더라도 웨이트트레이닝과 클라이밍 훈련을 빠뜨리지 않는다. 시즌 중에는 클라이밍에만 전념하는데, 일단 대회 자체가 워낙 많아 체력 관리가 제일 중요한 요소다.

“비시즌 때는 조금 더 나가기도 하지만, 항상 42kg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밥은 보통 하루 한 끼 먹는데, 아침 겸 점심이죠. 원래 먹는 걸 엄청 좋아해요. 특히 고기를 좋아해 아침에 스테이크를 구워 먹을 때도 많아요. 하지만 운동 중엔 과일이나 고구마만 중간 중간 먹어요. 허기를 없애는 정도죠. 시즌이 끝나면 근육량도 늘려야 해서 자유롭게 먹는 편이에요. 술도 가끔 하고요.(웃음)”

여자 선수의 경우 160cm대 초반이 가장 이상적인 신장. 무려 10cm나 작은 키가 핸디캡이기도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린다거나 발을 더 높이 올려야 할 때는 작은 키와 몸집이 유리한 면도 있다.

“발 사이즈가 225~230mm인데 암벽화는 205를 신어요. 신발을 신으면 안에 있는 발가락이 완전히 굽어지죠. 좁은 틈 사이에 발을 끼고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나의 꿈 나의 길]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암벽과 하나 된, 나는 클라이머다!”
[나의 꿈 나의 길]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암벽과 하나 된, 나는 클라이머다!”
발뿐만이 아니다. 클라이밍을 시작하면서 넓어진 어깨와 팔 등 탄탄한 상체 근육이 웬만한 남자 못지않다.

“사춘기 때는 ‘그렇게 넓은 어깨로 어떻게 시집가겠느냐’는 오빠들 놀림에 운 적도 있어요. 지금은 전혀! 전 누구보다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사람이잖아요. 클라이머에게는 클라이머다운 몸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우락부락한 큰 근육도 아니라 전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해요.”

경기가 없는 날은 ‘산쟁이’처럼 입지 않는다. 굽은 발가락일지언정 색색의 페디큐어도 하고 원피스도 즐겨 입는 패셔니스타다. 대회 때도 화장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말에선 또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풋풋함이 느껴진다.
[나의 꿈 나의 길]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암벽과 하나 된, 나는 클라이머다!”
[나의 꿈 나의 길]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암벽과 하나 된, 나는 클라이머다!”
운동과 학업 다 잡은 ‘독종’

1년에 20개가 넘는 대회에, 유럽과 아시아를 가리지 않는 강행군은 월드 랭커라면 감내해야 할 숙명이다. 올해만 해도 프랑스,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등 유럽 각국과 중국, 일본, 한국에서 월드컵 대회가 열렸다. 올 초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슬럼프를 맛보는 성장통도 겪었다.

“첫 번째 월드컵 대회에서 2등을 했는데 2·3차는 모두 결승 문턱에도 못 올랐어요. 심리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게 사실이에요. 클라이밍을 좋아하고 나름 최선을 다해가며 재밌어 했는데, 언제부턴가 경기 결과만으로 제 클라이밍을 판단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런 상황 자체가 두렵고 부담스러워 견딜 수 없을 정도였어요.”

생각을 바꾸고 부진을 탈출한 계기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올해 런던올림픽에서 부상 투혼을 보여주며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감동을 불러왔던 역도 장미란 선수의 모습을 보고 나서다.
[나의 꿈 나의 길]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암벽과 하나 된, 나는 클라이머다!”
“금메달이 당연한 것 같았던 장미란 선수가 4위에 그쳤잖아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확실한 사실을 깨달았죠. ‘내가 클라이밍을 좋아하고 재미있어 한다’는 것. 경기는 나를 판단하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즐겨야 하는 일이란 것. 운동을 안 한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도 아니잖아요. 경기 결과 때문에 창피해하지 말자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안해졌어요. 그렇게 마음먹으니 결과도 실제로 좋아졌고요.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어요.”

동양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건 오롯이 노력의 산물이다. 학업도 어물쩍 넘기는 건 없다. 바쁜 경기 일정 속에서 올해 고려대 체육교육과를 부끄럽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스포츠심리학 전공으로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막연히 관심 있던 분야지만 실제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 진학을 결정했어요. 선수 생활은 물론 나중에 지도자가 돼서도 유용할 것 같아요. 학부 때도 힘들긴 했죠. 국내에 있을 때는 수업을 빠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열심히 했어요. 시험 때는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고요.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독종’이라는 소리도 들었죠.”

운동 종목이 대개 그렇듯 스포츠클라이밍 역시 30대 초반이면 노장 축에 든다. 2020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 유력한 만큼 30대 초반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게 큰 목표다. 은퇴 후에도 클라이밍은 그녀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될 건 확실하다.

“스포츠클라이밍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제 몸과 같은 존재죠. 은퇴 후에는 자연암벽 등반도 많이 하고 싶어요. 한국에 훌륭한 스포츠클라이밍 학교를 세우는 것도 꿈이에요. 그렇다고 정해진 꿈을 놓고 매달리진 않을 거예요. 지금이나 그때나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죠. 1등에 대한 부담감이요? 당연히 욕심이 나죠. 하지만 그것만이 목표는 아니에요. 일단 스스로 즐기면서 재밌게 운동하는 게 우선이죠.”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