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멘토링

비단 해당 업무 관련자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마케팅’이란 단어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다. 기업이 생산해낸 재화나 서비스가 소비자와 고객에게 전달되는 순간까지 벌이는 모든 활동이 마케팅의 영역에 속한다.

때문에 마케터는 각각의 접점에서 늘 사람을 만나고 상대해야 한다. 제네릭 의약품 선도기업으로 손꼽히는 한국산도스(SANDOZ)의 임윤아 이사도 “마케팅은 그 어떤 분야보다 사람이 주축이 되는 일”이라며 마케터의 자질로 유쾌함과 전문지식을 꼽았다.

보수적 분위기가 강하다는 국내 제약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임원이자, 업계 최연소로 마케팅 총괄이사에 오른 그녀가 마케터를 꿈꾸는 잡앤조이 대학생 기자단을 만났다.


임윤아
한국산도스 마케팅 총괄이사
글로벌 제약사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 “전문지식 + 윤리의식 그리고 유쾌한 성격”
약력
1975년생
1998년 이화여대 약학과 졸업
1998년 아벤티스코리아
2002년 GSK코리아
2010년 한국산도스 마케팅 총괄이사


대학생 기자: 우선 ‘한국산도스’가 어떤 회사인지 궁금합니다.

임윤아 이사: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의 제네릭 의약품 사업부예요. 흔히 ‘카피약’이라고도 하죠. 신약은 개발 후 시장에서 팔리기까지 어느 정도는 특허로 보호해줘요. 시간과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죠.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특허도 풀리고, 많은 회사들이 카피약을 생산해요.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약이기 때문에 안정성·유효성 등을 입증해야 해요. 같은 제네릭 의약품이라도 제약사의 수준에 따라 품질 차이가 커요. 한국산도스는 노바티스의 품질 가이드라인에 맞춰 신약 개발 이상으로 관리하죠. 카피가 아닌 제네릭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예요.


대학생 기자: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셨는데, 약사가 아닌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임윤아 이사: 약대 졸업생에게는 크게 네 가지 진로가 있어요. 대학원 진학, 병원 약국, 개원 약국, 그리고 제약회사죠. 개인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대학원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어요.(웃음)

대학병원도 실수가 치명적인 곳이고 계속해서 신약 업데이트가 이뤄지기 때문에 하드한 분야예요. 대학을 갓 졸업한 제겐 개원 약국의 관리약사와 제약사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어요. 1998년 2월에 졸업했는데 IMF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았죠. 제약사는 비교적 경기를 타지 않는 업종인 덕에, 그해 하반기에 결국 한국아벤티스 공채에 합격했어요.
글로벌 제약사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 “전문지식 + 윤리의식 그리고 유쾌한 성격”
대학생 기자: 입사 후에도 신약 개발이 아닌 영업으로 시작하셨어요.

임윤아 이사: 제약회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신입사원은 90% 이상이 영업사원이란 거예요. 저도 2년 정도 영업팀에서 열심히 일하다 마케팅 부서에 자리가 나 발령받은 케이스죠. 여성 약사는 장기근무가 어렵다는 편견이 있는 게 이쪽 업계예요.

그래서 마케팅, 개발, 학술부 등에 자리가 나면 여성 약사에게 기회를 주는 편이죠. 2년간 일하며 영업 실적도 좋았던 터라 마케팅 일을 하라는 제의를 받게 되었죠.


대학생 기자: 그동안 계속 제약사에서 마케터로 일하셨는데요, 일반 기업과 제약사 마케터 간에 특별한 차이점이 있나요.

임윤아 이사: 제약사가 가장 좋아하는 ‘과’가 뭔지 아세요? 불문과예요. 전공불문! 일단 대부분의 신입사원이 영업팀이기 때문에 자신이 다루는 제품, 즉 약에 대한 공부를 입사 후에도 많이 해야 해요.

제약사 입사가 목표인 사람이 굳이 약대에 진학할 필요는 없어요. 일반 기업의 경우 엔드유저와 고객이 일치하죠. 제약사는 엔드유저가 환자이고, 고객은 의사나 약사예요. 가장 큰 차이점이죠.

구두가 발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이 잘못되진 않잖아요? 약은 그렇지 않죠. 시장이라는 표현을 쓰기조차 조심스러운 분야예요. 당연히 마케터도 전문지식을 갖추어야 해요.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도 제약이 있죠.

그나마 일반의약품은 자유로운 편이에요. 전문의약품의 경우 전문인에게만 마케팅할 수 있거든요. 내 고객이 서울대병원 교수라 생각해보세요. 공부도 엄청 많이 해야겠죠? 또 마케터로서 단순히 ‘내 제품을 많이 파는 것’을 넘어 굉장한 윤리의식도 갖춰야 해요.
글로벌 제약사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 “전문지식 + 윤리의식 그리고 유쾌한 성격”
대학생 기자: 마케터의 자질로 유쾌함과 전문지식을 꼽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임윤아 이사: 마케터는 PM(Product Manager), BM(Brand Manager) 등 회사마다 부르는 호칭이 조금씩 달라요. 매니저라 하면 보통 팀원을 두고 일하는 관리자를 말하는데, 유일하게 피플 매니지먼트를 하지 않으면서도 매니저 타이틀을 달 수 있는 게 바로 마케터예요.

사원 PM, 부장 PM이 다 있는 거죠. 마케터에게 이런 권한(?)이 주어진 건 자신의 브랜드나 제품의 탄생부터 소멸까지를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제품을 ‘제 자식’이라 부르는 이도 마케터가 유일하죠.

제품의 생산부터 최종 판매까지 책임지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는 사장을 닦달할 수도 있어야 해요. 내 제품을 열심히 팔도록 영업사원을 꾀기도 하고 칭찬도 해주고, 때로는 달달 볶을 수도 있는 사람. 유쾌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예요.

마케팅도 일면으론 학문의 영역이에요. 원칙이 있죠. 이론적인 룰만 잘 지키면 대박은 몰라도 쪽박은 면할 수 있어요. 다만 더 성장하기 위해선 관련 제품(업계)에 대한 부단한 공부가 필요하죠. 한 가지 더 중요한 덕목을 꼽으라면 ‘체력’이에요.


대학생 기자: 제약업계 최연소 이사 기록을 갖고 계신데, 비결을 들려주세요.

임윤아 이사: 첫째, 제가 잘나서가 아니에요. 큰 다국적 제약사에선 당연히 승진이 늦죠. 한국산도스는 40명 정도의 인원으로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예요. 지난 13년간 큰 회사에서 일하며 배운 경험들을 이곳에서 풀어내고 싶었어요.

직장인들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죠. 안주할 것이냐, 더 큰일을 할 것이냐. 제약사의 경우 커머셜(마케팅&세일즈) 부문에 여자 약사의 비율이 굉장히 낮아요. 굉장히 터프한 분야이기 때문에 기혼자가 출장에서 빼달라거나 행사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남자에게 미룬다거나 하면 제외되기 십상이죠.

요즘은 덜하지만 사회생활 초기에는 술도 엄청 마셨고요. 제 별명이 ‘임장군’이었어요. 이 사람에게 제품을 맡기면 어느 정도는 하겠다는 신뢰감을 살벌한 영업 현장에서 증명했던 셈이죠.
글로벌 제약사 마케터에게 필요한 것? “전문지식 + 윤리의식 그리고 유쾌한 성격”
대학생 기자: 다국적 제약사에서 오래 일하셨는데, 국내 기업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임윤아 이사: 분명 다르긴 해요. 한국산도스의 파트너 중에도 국내 기업이 많죠. 다국적 기업은 국내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위 기업의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에요. 6개월이나 걸려 검토한 사안이 ‘No’라는 대답을 들을 때도 있죠. 국내 기업은 오너의 의사결정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리스크도 커요.

회사 내에서 영어를 많이 쓰는 등 사소한 분위기도 달라요. 외국계 기업의 경우 40대는 물론 30대 사장도 있어 젊고 활력 있는 분위기가 강해요. 차이는 있지만, 제 결론은 결국 사람 사는 건 똑같다는 거예요. 외국인이 합리적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에요.


대학생 기자: 제약사 마케터를 꿈꾸고 있다면 뭘 준비해야 할까요.

임윤아 이사: 우선 소질, 자질 다 무시하고 대기업만 찾는 마인드부터 버리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대부분 영업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기회가 오면 무조건 시작하는 게 좋아요. 취업한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현실적인 조언으로는 인터뷰(면접)는 무조건 많이 하는 게 좋아요.

인터뷰도 스킬이에요. 좋은 직원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췄더라도 첫 만남은 고작 10분에 불과한 경우가 많잖아요. 짧은 시간 안에 그가 나를 뽑고 싶게끔 만들어야죠. 트레이닝이 돼 있지 않으면 힘들어요.

사람들도 많이 만나세요. 네트워킹이죠. 능력은 주머니 속 송곳과 같아서 감춰도 보이고 언젠가는 다 볼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이란 말은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기도 해요. 오늘 캠퍼스 잡앤조이 대학생 기자와 저의 만남도 굉장한 인연이죠. 사람을 낚는 어부가 의외로 많아요.



글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인터뷰 함께 한 대학생 기자 김근아(단국대 화학 2)·이유현(숭실대 국제통상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