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계 백종원 꿈꾸는 정경 교수, 워너뮤직코리아 상임이사로 EBS라디오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DJ로 발탁
워너뮤직서 새로운 예술경영 해보고파··· 제 2, 3의 정경 만드는 후배 양성도

△정경 워너뮤직코리아 상임이사
△정경 워너뮤직코리아 상임이사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제 삶의 원동력은 인생 밑바닥부터 겪은 넓고 깊은 경험입니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저의 긍정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 올 수 있게 만들어 준 셈이죠.”

‘한국에도 저런 성악가가···’ 첫 만남에서 흠칫 놀랐다. 성악가라기보다 배우에 가까운 외모와 특유의 제스처들. 수컷의 진한 향기를 내뿜는 대한민국 대표 바리톤 정경 교수의 이야기다. 삼일절, 현충일, 광복절 등 국가 행사에서 섭외 1순위로 꼽히는 정경 교수는 뉴욕 카네기홀 독창회를 비롯해 메트로폴리탄, 런던 IHQ 등 국내외 수많은 음악회에 초청돼 한국가곡을 2000여회 노래했다. 2020년 6월에는 UN기후변화 국제회의 공식 초청으로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축사 전 오프닝 공연에서 노래를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 워너뮤직코리아의 상임이사로, EBS 라디오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 프로그램에 DJ로 발탁된 정경 교수를 만났다. 학창시절, 엘리트 코스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온 그에게 현재의 삶이 가능하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도 문득 궁금해졌다.

성악가 정경을 떠올리면 ‘오페라마’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공연이 줄어 오페라마 공연을 볼 수 없게 된 것 아닌가
“1년에 150회 이상 공연을 하다가 코로나19로 작년부터 모든 공연이 취소됐다. 공연을 못하니 다른 것들을 많이 하고 있다. 올 초부터 세계적인 음원사인 워너뮤직 코리아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라디오 디제이도 맡게 됐다. 공연을 할 때만큼 바쁘게 지내고 있다.(웃음)”

라디오 이야기부터 해보자. 어떤 프로그램인가
“EBS에서 10년 만에 론칭한 클래식 프로그램 ‘정경의 클래식, 클래식’이다. 3월 29일부터 매일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1시간 방송되는 프로그램으로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클래식계 유명인사들이 대거 출연한다고 들었다
“수요일마다 초대석을 진행하는데, 첫 게스트로 국내 합창 지휘의 레전드이신 윤학원 선생님을 모신다. 그리고 이경선 바이올리니스트, 김정원 피아니스트, 고성현 바리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들이 나올 예정이다.”


“EBS에서 10년 만에 신설된 클래식 프로그램을 맡게 돼 영광이죠.
청취자와 클래식을 좀 더 가깝게 하는 게 제 역할 아닐까요“


평소 라디오는 즐겨 듣나
“자주 듣진 못하지만 차로 이동하면서 가끔 듣는다. CBS 라디오를 진행하시는 강석우 선생님의 방송을 종종 듣곤 한다.”

클래식을 주제로 하니 ‘강석우의 아름다운 당신에게(CBS)’와 경쟁 프로그램이 될 수 있겠다
“그럴 수도 있을까? 다행히 시간대가 겹치지 않는다. 선생님의 방송을 듣고 바로 저희 주파수로 맞춰 들으시는 걸 추천 드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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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디제이는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어떤 방송으로 만들고 싶나
“음···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의 디제이는 방송인들이지만 나는 클래식 전공자다. 청취자들이 보내주신 사연에 클래식 스토리를 녹여 소개할 수 있는 게 나만의 무기가 아닐까. 1년에 150회 이상 토크콘서트를 진행해왔고, 방송 경험도 나름 많다. 무엇보다 라디오를 통해 정경만의 개그코드를 보여드리고 싶다.(웃음) ‘요리계 백종원이라면, 클래식계 정경’ 콘셉트로 밀고 있다.(웃음)”

올 초 워너뮤직코리아로 옮겼다. 워너뮤직은 어떤 곳인가
“워너뮤직으로 온 지 두 달 정도 됐다. 워너뮤직그룹의 본사는 미국 뉴욕에 있고, 총자산 규모가 세계 10대 그룹에 속할 정도의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 74개국에 진출해 있다. 세계 3대 엔터테인먼트 및 메이저 음반사로 2020년 6월 음반사 중 유일하게 나스닥에 상장한 기업이다. 여기에 브루노마스, 콜드플레이 등 세계적인 가수들이 소속돼 있는 레이블이며, 클래식 분야에서는 EMI, TELDEC을 인수한 곳이다.”

워너뮤직에서 어떤 일을 맡았나
“최근 워너뮤직에서 미스터트롯에 출연했던 성악가 김호중 씨의 앨범을 발매해 110만장을 판매했다. 요즘 음반시장을 봤을 땐 대단한 성과다. 이 성과를 시작으로 워너뮤직에서 ‘클래식 신사업 예술경영부’를 신설했다. 제가 맡은 역할은 워너뮤직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 예술경영의 철학과 대한민국 클래식을 연결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드는 일이다. 한마디로 예술경영 신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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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은 정경 교수와 인연이 있지 않나. 기존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를 운영한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예술경영이 무엇인지 소개해 달라
“예술경영은 단순히 예술과 경영을 결합시키는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예술과 결합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기존에 없었던 것들과 예술과의 콜래보레이션, 기존에 있었던 것이라 하더라도 더욱 예술적으로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경영방식이다.”

워너뮤직으로의 행보가 의외다. 워너뮤직과는 어떤 인연인가
“6년 전 제가 운영하던 오페라마 공연을 워너뮤직코리아 대표님께서 보신 적이 있다. 제 공연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오페라는 딱딱하고 무겁다'는 편견을 깨는 공연으로 유명하다. 클래식이라는 테마로 재미있게 콘텐츠화한 오페라마를 보시곤 신기해하셨다. 사실 그 이후부터 저에게 러브콜을 보내셨는데, 1년에 150회 이상 공연을 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도저히 시간이 안 나더라. 어떻게 보면 코로나19가 제겐 또 다른 기회가 된 셈이다.”

오페라마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워너뮤직에서 오페라마 공연을 새롭게 기획하게 되는 건가
“물론 그것도 가능하다. 사실 국내 오페라 시장을 보면 안타깝다. 오페라 공연의 유료티켓 판매가 2%가 안 되는 게 현실이다. 혹자들은 오페라를 대중화해야 한다지만 쉽지 않다. 워너뮤직에서는 오페라마와 같은 새로운 일을 해 볼 생각이다.”


“오페라마는 고전의 명작과 인문학을 재해석하고 현대적으로 변용한 새로운 프로젝트입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20세기 미국에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면 오페라마는 21세기 한국에서 시작된 최초의 디지털 오페라입니다”



어릴 적부터 성악가를 꿈꿨나
“아니다. 학창시절엔 소위 말하는 꼴통이었다.(웃음) 공부안하고 사고만 치고 다니니 부모님께서 대학은 가야하지 않겠냐며 권유하신 게 노래였다.”

학창시절엔 누구나 그런 시기가 한번쯤 있지 않나
“이런 말하기 부끄럽지만, 공부를 얼마나 안했냐하면 대전의 공고, 농고, 상고를 모두 떨어져 뺑뺑이로 인문계고를 들어갈 정도였다. 공부보단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 걸 더 좋아했다. 그런 모습을 본 어머니께서 고3때 서울의 한 교수님을 찾아가 레슨을 받게 하셨다. 그 전까진 그냥 목소리는 좋으니 노래해보라는 얘기는 가끔 들을 정도였지, 전문적으로 해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버지께선 시골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제 사정을 들으신 교수님이 ‘성악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 어떻게 하실거냐’며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 얘길 들으니 생각에도 없었던 노래를 해보고 싶더라. 그게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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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시절 친구들과 함께(가운데).

“학창시절 문제아로 인생막장을 달리던 시기, 처음으로 인생의 자극을 느끼며 해보고 싶다는 게 생겼어요. 돈도 없고, 실력도 없었는데 그냥 해보고 싶더라고요. 악착같이 1년을 더 준비해서 대학에 갔어요. 근데 그게 끝이 아닌 시작이었죠”



남들에 비해 늦게 시작했으니 열심히 했겠다
“음···대학에 들어가서 세상을 알게 됐다. 막상 가보니 나 빼고 대부분이 예중·예고 출신이더라. 당연히 시험만 보면 꼴등이었다. 그리고 노래 실력보다 학연과 지연, 인맥 등 예술과는 상관없는 것들이 더 중요해보이더라.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던 나로선 그걸 깨고 싶었다. 학교에선 인정을 못 받으니 콩쿠르에 나가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근데 그 콩쿠르에서 지금도 잊지 못할 내 인생의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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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학교 1학년때 첫연주 후, 부모님과 함께, (중간)군악대(해양경찰악대) 성악병(왼쪽) 시절, (아래)대학교 성악도 시절.(사진제공=정경 교수)

어떤 사건이었나
“콩쿠르 파이널에 나를 포함해 4명이 올라갔다. 나 빼고 모두 서울대 출신이었다. 맘속으로 3등만 하자는 생각이었다. 한 명만 이겨도 성공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내 앞 차례였던 참가자가 실수로 노래가 끊기더라. 그리고 실수가 몇 차례 더 있었다. 그걸 보고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최소한 3등은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무대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발표가 났는데··· 내 앞 순서였던 그 친구가 1등으로 발표됐다. 그 날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참 많이 울었다. 그때 알았다. 세상은 내 생각만큼 논리적이지 않다는 걸.”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겠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앞으로 더 쌓는다 해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사건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그 콩쿠르에서 꼴등을 한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만약 3등을 했더라면 그들과 경쟁하려고 이길 수 없는 싸움에 계속 목 메여 있지 않았을까. 그 계기로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했고, 그게 ‘오페라마’였다.”


“세상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걸 콩쿠르를 통해 알게 됐죠
그래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게 ‘오페라마’였죠“



오페라마 공연은 기존의 오페라 공연과는 분명 차별점이 있다
“기업이나 정부기관에서 의뢰한 B2B 공연과 대중들을 위한 B2C 공연을 연간 150회 이상 해왔다. 오페라 공연은 대부분 누군가의 초대로 시작되는데, 오페라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공연을 해, 보고 싶은 이들이 언제든 올 수 있게 만드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런 취지로 압구정 윤당 아트홀, CGV청담씨네시티, 대학로 JTN아트홀에서 몇 년 간 공연을 해왔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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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공연계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료로서, 선배로서 많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저와 같은 많은 예술가들이 본연의 예술행위를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대중문화는 더욱 승승장구하지 않나. BTS나 블랙핑크 등 국내 가수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날로 성장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비해 예술가들이 힘든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누군가가 '예술적 행위를 대중화시켜야 하나’라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아니다’라고 말 할 것이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클래식은 대중화가 될 수 없는 장르다. 그렇다고 예술가들이 내가 하는 예술은 고귀하다고 규정하는 순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다. 클래식이 대중화가 될 순 없지만 우리 같은 예술가들이 대중에게 좀 더 쉽게 클래식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예술가 스스로 예술이 고귀하다고 규정하는 순간,
스스로 세상과 고립을 시키는 것입니다“


인생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 같다
“그것이 현재 나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이다. 꿈도 없이 허덕이며 세상의 밑바닥을 경험했고,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 만들어간 경험이 내 자산이고 무기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건 무너지지 않고 확고한 신념과 자신감으로 내 길을 간 것이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본인들이 지나온 길 이외 것들은 실패라고 생각하더라. 난 가보지 않은 길을 오히려 즐긴다. 누군가의 손가락질이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코로나19로 멈춰있었던 활동을 온라인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라디오도 그 일환이다. 매일 청취자와 만나면서 클래식을 좀 더 친근하게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 말이다. 코로나19가 사라지면 미국과 일본 진출도 계획 중이다. 그리고 먼저 예술을 한 선배로서 많은 후배 예술가들이 좋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 후배 양성도 생각 중이다. 제2, 제3의 정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웃음)”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