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용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한 두 마디의 대화로 내 마음을 꿰뚫어 볼 것 같은 생각에 자칫 심리적 위축이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과 한편으론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내 볼까 하는 복잡한 생각으로 이 직업과 마주했다. 정신건강전문의(이하 정신과 전문의)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정신과 전문의를 찾는 이들도 증가했다. 하지만 정신과에 관한 오해와 잘못된 정보로 여전히 문턱은 높다. OECD 통계를 보면 2020년 우리나라의 우울증 유병률은 36.8%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높았다. 현재 10명 중 4명이 우울증 또는 우울감을 겪고 있다는 것. 특히 코로나19 이후 20~30대 우울 위험군 비율은 60대에 비해 2배 이상 높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아픔을 겪지만 내색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지용(37)정신과 전문의는 정신과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서고, 펜을 잡았다.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정신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그는 설명했다.
타인의 인생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강홍민의 굿잡]
김지용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연세웰정신건강의학과의원)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팟캐스트 ‘뇌부자들’
네이버 오디오클립 ‘뇌섹맘클리닉’
‘어쩌다 정신과의사’ 저자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어떤 직업인가.
“정형외과 의사가 근골격계에 생긴 문제를 치료하고 심장내과 의사가 심장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듯, 정신과의사는 뇌에 생긴 문제를 치료하는 사람이다. 뇌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긴 우울증과 공황장애, 불면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한다. 사람을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는 온전히 호르몬만의 문제라기보다 심리적 부분도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 두 가지 모두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진료실과 다른 모습이다. 정신과라고 하면 환자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카우치가 있던데, 이곳에는 안 보인다.
“우리 병원은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곳이다. 대부분의 병원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된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처럼 편안한 의자에 누워 심리치료를 하는 곳도 있지만 그리 많진 않다. 반대로 진료를 짧게 하고, 약물처방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식당으로 비유하자면, ‘패스트푸드점’, ‘일반 식당’, ‘오마카세’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 병원은 일반 식당으로 비유할 수 있다.”

환자 한 명당 진료시간이 정해져 있나.
“우리 병원의 경우엔 보통 30~40분 정도 상담을 한다. 아까 말씀하셨던 카우치가 있는 곳은 정신분석치료를 하기 때문에 좀 더 깊고 길게 진료한다.”

정신과 전문의 외에도 팟캐스트, 작가,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작년에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유퀴즈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방송 이후 주변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얼떨떨하다.(웃음) 팟캐스트 ‘뇌부자들’은 연대 의대 동기들과 2017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들이 들어주셔서 감사하게 방송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1/4 한번쯤 정신질환 겪지만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아···
검증되지 않는 정보가 환자의 삶 망쳐“
△김지용 원장이 운영 중인 팟캐스트 ‘뇌부자들’ 녹음 현장.
△김지용 원장이 운영 중인 팟캐스트 ‘뇌부자들’ 녹음 현장.
팟캐스트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
“사실 화가 나서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빨리 치료했으면 분명 좋아졌을 분들이 많은데, 주변에서 잘못된 이야기를 듣고 치료를 늦추다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되는 걸 너무도 많이 봐왔다. 굿을 해야 한다거나, 기도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검증되지 않는 말로 환자의 인생을 망치는 분들을 많이 봐 왔다. 대한민국 국민 1/4이 한번쯤 정신질환을 겪는다.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질환이지만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아 팟캐스트를 통해 알려드리면 좋겠다 싶어 시작하게 됐다.”

주로 어떤 내용들이 왜곡돼 있나.
“대표적으로 정신과 기록과 약물에 대한 잘못된 정보다.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게 되면 기록이 남아 나중에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점을 활용해 우리 병원은 기록이 남지 않는다고 홍보하는 병원도 있다.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공포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정신과 기록은 제3자가 함부로 열어 볼 수도 없고, 사회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진료기록은 보관기간이 정해져 있어 아이들의 경우 성인이 될 무렵이면 기록은 사라진다. 약도 마찬가지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은 살이 찐다거나 멍해진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잘못된 정보다.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만 200여 종류가 넘는다. 그 중 부작용이 있는 약이 있는 반면 없는 약도 많다.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을 정신과 약이라고 부르는 자체가 오류다. 우리가 내과나 정형외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내과약, 정형외과약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정신과에서 처방하는 약도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에 진통제, 해열제 등등으로 불리는 것이 맞다.”

최근 조현병 등 정신질환으로 발생한 사건들이 언론에 많이 비춰진다. 예전에 비해 정신질환환자가 많아진 건가.
“최근 정신보건법에서 정신건강복지법(2017년 5월)으로 개정되면서 환자의 인권보호차원에서 입원치료가 까다롭게 바뀌었다. 기존에는 보호자 2인과 담당의사의 동의가 있으면 입원치료가 가능했지만 법 개정으로 인해 입원 치료의 요건이 이전보다 까다로워졌다. 정신질환은 환자가 원하지 않더라도 불가피하게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2018년 안타깝게 사망하신 임세원 교수님의 사건도 마찬가진데, 정신과 전문의 중 환자에게 해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법 개정으로 인해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 줄어들어 입원이 필요한 환자들이 입원을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물론 정신질환 사건은 자극적인 이슈라 보도가 많이 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19 이후 우울증, 불안장애 겪는 이들 늘고 있어···운동, 취미 등 스스로 루틴을 만드는 것 중요”


코로나19로 인해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같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우울증 환자의 수가 늘었나.
“통계를 봐도 그렇지만 코로나19 이후 정신과를 찾는 분들이 늘었다. 대부분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는 분들이다. 갑자기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거나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막히면서 안 좋은 생각이 드는 증상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오는 것이 우울증과 불안장애다.”
타인의 인생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강홍민의 굿잡]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겪는 이들 중에는 언제 병원을 찾아야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언제 병원을 찾아야 하나.
“우리가 감기나 몸살로 동네병원을 갈 땐 애매할 때 가는 경우가 많다. 조금 이상하더라도 병원을 방문하는데, 정신과는 문턱이 높다보니 대게 참을 만큼 참았다가 방문한다. 때문에 병원에 왔을 땐 대부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요즘에는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유 없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거나 갑자기 공황증상을 겪는 분들도 더러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를 미리 막는 예방법이 있나.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가장 좋지만 쉽지 않다. 인간에겐 루틴이 중요하다. 코로나19 전에는 출근, 식사, 티타임, 퇴근으로 이어지는 루틴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우울증이나 불안증세가 찾아오는 것이다. 정신질환의 경우 보통 하강 나선을 탄다고 한다. 재택근무 시작으로 인해 활동량이 줄어들고, 광합성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하나의 변화가 여러 증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예방하는 방법은 스스로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이 없더라도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의대 진학 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거쳐야 전문의 자격 주어져···
수련 기간 동안 상담·진료법 배우고 환자 분석·연구한 자료 만들고 발표해“



정신과 전문의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될 수 있나.
“종종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고 연락 오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럴 때 하는 말이 먼저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의대를 졸업한 뒤 1년의 인턴과정을 마쳐야 정신과 전공의에 지원할 자격이 생긴다. 합격하면 4년간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담, 진료방법 등 여러 가지를 배워야 하는데, 그 중 자신이 만난 환자의 케이스를 토대로 평가받게 된다. 어떤 증상의 환자를 어떻게 상담하고 진료했는지를 빼곡히 적어 제출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전문의가 될 수 있다.”
△김지용 원장의 전공의 시절 모습.
△김지용 원장의 전공의 시절 모습.
정신과 전문의가 갖춰야할 자질이 있다면 무엇인가.
“다른 의학 전공과 다르게 정신과 의사만이 갖춰야할 역량이라면 공감능력, 감정조절능력,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지만 스스로 세상을 등진 환자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주 만난 환자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외에도 한 분 한 분의 살아온 인생사가 다 다르고, 자신만의 심리를 가지고 있어 오랜만에 다시 만나도 예전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편이다.”

스스로 생을 달리하는 환자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심적으로 힘들 것 같다. 극복법도 궁금하다.
“스스로가 감정적으로 잘 흔들리지 않는 편이다. 환자분들이 돌아가시는 경우도 그렇고 진료 시 의사를 비난하거나 욕을 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적으론 힘들지만 금방 회복하는 편이다. 흔히 회복탄력성이라고 하는데, 남들에 비해 빠른 편이다.”


“방어기제를 가진 환자들, 정신과 의사에게 욕·비난은 흔한 일···환자의 말과 행동으로 이유를 알아내고 진단, 치료가 정신과 전문의의 역할”


상담 시 환자가 욕을 하거나 난동을 부리는 경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환자들이 욕을 하는 경우는 일종의 방어기제다.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똑같이 욕을 하거나 사람들이 떠나가는데, 의사 역시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면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된다. 이런 증상을 ‘투사적 동일시’라 부른다. 레지던트 시절엔 나에게 욕을 하거나 침을 뱉는 환자들과 마주치면 이런 것까지 참으면서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환자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를 분석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주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없을 것 같다.
“환자의 그런 행동들이 진심이 아니라 방어기제의 일종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내 정신건강을 위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 주로 운동을 하거나 웹툰을 본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할 수 있어 나에겐 꼭 필요한 시간이다. 아까 말씀드린 예방법 중 하나가 생각을 끊는 것이다. 직장 내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이 퇴근 후에도 직장을 떠올리면 이곳(정신과)에 오게 된다. 스트레스는 원래 한 번 끊고 나면 그 강도가 줄기 마련이라 본인만의 스트레스를 끊을 수 있는 취미의 루틴이 필요하다.”

진료를 하면서 위험한 적은 없었나.
“아직 큰 난동으로 이어진 적은 없지만 정신과 의사들 책상에는 인근 지구대와 연결 돼 있는 비상벨이 있다. 혹 위험한 상황이 발생될 경우 비상벨을 누르면 바로 경찰이 출동한다. 이것 말고도 민간 보안 출동 서비스도 구비돼 있는데, 아직 누른 적은 없다.”
타인의 인생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강홍민의 굿잡]
정신과 특성상 다른 의학과 다른 점이 많은 것 같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신과 전문의는 환자의 상태를 머릿속으로 진단하고 판단해야 한다. 물론 진단교과서라는 가이드가 있지만 그걸 외우고 인지해 판단하는 것은 의사의 몫이다. 의사 스스로가 진단과 치료의 도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더 큰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치료가 잘 되었을 땐 보람도 두 배가 된다. 당신이 내 삶을 바꿨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정신과만의 특혜다.(웃음)”

직업병이 있다면.
“예전에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학창시절에도 앞에 나가 말하는 걸 좋아했는데, 의사를 하면서 말수가 줄었다. 듣는 게 습관이 된 것 같다. 병원 밖에서는 되도록 일을 안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흔히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주변에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볼 것 같다.
“맞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신기해하면서 많이들 물어본다. 하지만 원칙 중 하나가 지인은 진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인 진료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상담을 하게 되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가정사부터 은밀한 성적인 이야기까지, 자신만의 비밀이나 치부 등등 아주 깊숙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환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 있는 이유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는 나와 안 볼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인은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기 쉽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완벽한 진료를 할 수가 없다.”

직업적 만족도는 높은 편인가.
“개인적으로 만족한다.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서 돈을 버는 직업이 많지 않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절 더러 선생님이라 불러주시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시니까.”

정신과 전문의 비전은.
“정신질환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도 있지만 어찌됐든 스트레스가 뇌에 영향을 미쳐 정신질환이 발생한다. 특히 지나치게 빡빡하고 경쟁적인 현대인의 삶 속에서 정신질환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의 역할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정신과 전문의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의사부터 돼야 한다는 말이 성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 그렇다. 일단 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그 다음엔 책을 권하고 싶다. 책 속에는 저자들의 생각과 사람을 바라보는 흔적들이 묻어 있다. 다양한 책 속에서 사람과 심리를 알아 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나 또한 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말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