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섭 타투이스트

△신정섭 국제타투아티스트협회장.
△신정섭 국제타투아티스트협회장.
“니가 깡패야, 건달이야? 너 평생 못 지우는 데 후회 안하겠어?”

불과 10년 전만 해도 문신(文身)은 불량함의 상징이었다. 문신한 사람이 주변에 나타나면 혹시라도 들릴까 소곤소곤 옆 사람에게 알려주며 피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 그런 이미지는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도 컸을 듯싶다. 소위 ‘밤의 세계’를 살아가는 건달, 조폭을 표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문신이었으니. 문신의 크기로 그 세계의 영향력을 표현한 영화도 문득 기억이 난다. 그랬던 문신이 바뀌고 있다. 아니 바뀌었다. 트렌드라는 바람을 타고 날아온 ‘문신’은 이제 ‘타투’라는 이름이 더욱 친숙해진 시대다. 불량한 사람들의 전유물에서 ‘남녀노소 누구나’로 바뀐 것도 타투를 이미지화 한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요즘 TV에선 심심찮게 타투를 한 연예인들을 볼 수 있다. 방송심의로 인해 타투를 한 부위에는 테이프를 붙이지만 스포츠 경기에선 선수들의 화려한 타투가 그대로 드러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을 닮고 싶어 따라 한 타투가 인기를 얻으면서 트렌드로 번지기 시작했다. 팔, 목, 다리 신체 일부분에 다양한 그림과 문구로 자신을 표출하는 타투는 순간의 바람이 아닌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타투시장 규모가 매년 커지는 있고, 타투이스트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셀러브리티(celebrity)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타투시장 역시 1조원 대로 추산되며 매년 성장세를 보이지만 현실은 불법과의 전쟁 중이다. 1992년 대법원에서 속눈썹 문신 등을 의료행위로 판단해 불법으로 규정된 이후 30년 간 불법에 갇혀 있는 ‘타투’를 이제는 현실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수년째 10대들의 희망직업에 ‘타투이스트’가 오르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법조인의 꿈을 접고 타투이스트로 17년 간 타투와 함께해 온 신정섭(51) 국제타투아티스트협회장을 만나 그들의 세계를 들어봤다.


직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아직 국내에서 타투를 하는 행위는 불법인거죠.
“네. 불법입니다. 타투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30여 년 전의 잣대, 그때 정한 기준으로 타투를 바라보고 있는 거죠. 몸에 하는 타투와 눈썹 문신을 경험한 국민이 절반이 넘은 상태인데도 아직 타투는 의료법이기 때문에 불법으로 치부하는 건 타투이스트로서 부당하다는 입장입니다.”

타투를 의료법으로 상정하는 것도 타투업계에선 불만일 수 있겠네요.
“그렇죠. 타투는 미술의 영역인데, 의료법으로 막혀 있다는 건 해외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해요. 아주 이상한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타투이스트는 인체를 디자인하는 아티스트예요. 그 점을 알아주셨음 해요.”



‘1992년 의료법으로 불법된 타투, 타투 경험한 국민 늘어나지만 변화 없어’
타투 원하는 소비자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로 타투이스트와 연결
"아직도 저흴 색안경 쓰고 보시나요? 저흰 10대들의 꿈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최근 들어 타투에 관심 있거나 타투를 한 사람들도 쉽게 볼 수 있는데, 불법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네요. 그럼 타투는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요즘엔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도 타투이스트들이 나와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DM을 보내 예약을 잡는 분들이 많아요. SNS에 보면 타투이스트마다 포트폴리오를 올려놓거든요. 그럼 고객이 하고 싶은 부위나 그림을 선택해 가격·날짜를 정하는 식이에요.”

가격은 고객과 타투이스트가 정하는 거군요. 타투이스트의 실력 또는 유명세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예를 들어, 명함 크기의 타투를 그리는데 문구(글자)가 될 수도 있고, 동물의 얼굴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림의 양이 달라지면 크기가 작더라도 금액은 올라갈 수 있겠죠. 그리고 수상을 많이 했거나 유명한 타투이스트의 경우에는 금액이 달라질 수 있죠.”

그럼에도 대략적인 가격이 있을 텐데요.
“요즘 좌우명이나 신념과 같은 글귀를 타투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 경우로 설명 드리면, 1cm당 만원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10cm를 적으면 10만원이 되겠죠. 반면에 필기체, 고딕체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도 있어요. 타투의 가격은 사람마다 달라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글자로 설명을 해주셨으니, 10cm 크기의 글귀를 작업한다고 가정했을 때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되나요.
“그것도 케이스마다 다른데 보통 1시간 정도 걸립니다.”



“타투 작업 일일 10시간 넘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통상 4시간 넘지 않게 권해···해외 타투이스트 경우, 수익과 유명세 동시에 얻어 셀러브리티로 활동해”



그럼 온 몸에 타투를 할 경우엔 몇일이 걸리겠군요.
“그렇죠. 사실 작업은 하루에 10시간 넘게도 할 수 있지만 고객이 데미지를 받을 수 있어 잘 안하죠. 보통 하루에 4시간을 넘지 않게, 타투의 범위가 클 경우 며칠을 나눠서 작업하는 걸 추천 드려요.”
"아직도 저흴 색안경 쓰고 보시나요? 저흰 10대들의 꿈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신정섭 협회장이 타투대회에서 심사를 하고 있는 모습.
△신정섭 협회장이 타투대회에서 심사를 하고 있는 모습.
타투이스트들이 사용하는 기구나 도안은 비슷한가요.
“사실 국내에서 타투가 합법이라면 해외 좋은 제품들이 국내 유입이 되었을 텐데, 아직 그 상황까지 가진 못했어요. 해외에서는 타투 브랜드가 다양한데 국내 수입이 안 되거든요. 저도 해외여행을 갔다가 기구나 타투 물감을 사 온 적이 있는데 세관에서 다 걸렸어요. 국내 타투이스트 중에서는 본인이 직접 도구를 개발하기도 하고···.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실력을 가진다는 자체가 대단하다고 봅니다.”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타투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고, 해외에서도 타투이스트는 각광받는 직업 중 하나죠.
“해외 타투 시장은 국내와는 차원이 다르죠. 왜냐하면 말씀드린 대로 국내는 불법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여러 제약이 많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타투이스트가 셀러브리티로 활동하고, 수입도 아주 높죠. 해외에서 한국 타투이스트들의 인기가 굉장히 높아요. 해외각지에서 러브콜이 오니까요. 외국인들은 타투의 트렌드가 한국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국내 아티스트들의 위상이 높습니다.”

국내 타투이스트들이 해외에서 인기 있는 이유는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술 수준이 높아서 인 것 같아요. 국내 아티스트들의 손기술과 창의적 기법들이 해외에서 각광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해외 유명 타투 숍에서 한국 타투이스트를 영입하려고 애를 쓰고, 타투 행사가 있으면 초청하려고 해요. 근데 국내에서는 범법자로 지내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그래서 실력 있는 분들은 해외로 다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죠.”

아직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지만 10여 년 이상 활동해 온 타투이스트로 뿌듯하기도 하시겠어요.
“그렇죠. 불과 10년 전만 해도 한국영화가 세계에서 주목받을 걸 누가 알았겠어요. 타투도 마찬가지예요. 전세계 타투대회 대부분을 국내 타투이스트들이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월드클래스가 된 거죠. 사실 처음 타투를 배울 때만 해도 타투를 가르쳐 줄 사람이 주변에 한 명도 없었어요. 너무 배우고 싶어 서점에 갔는데, 타투와 관련된 책이 한 권도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타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동호회처럼 모여 연구한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으니 감개무량하죠”.



“연예인·스포츠 스타 등으로 인해 타투 대중화 한걸음 다가가···국내선 불법이지만 타투 교육 시장 규모 커져”



그래서인지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어요. 현장에서도 느끼시나요.
“많이 달라졌죠. 실제로 고객들 중에서 작업을 받으시다가 타투가 왜 불법이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요. TV에서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한 타투를 쉽게 접하기 때문에 젊은층 사이에서 타투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고 있는 분위기죠. 특히나 요즘엔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 부모님 손잡고 상담 받는 경우도 많아요. 타투를 배우고 싶어서요.”
"아직도 저흴 색안경 쓰고 보시나요? 저흰 10대들의 꿈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직접 타투 숍에 온 부모님들께선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씀도 많이 하시고요. 타투이스트는 성인이 돼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 미리 배우려고 하는, 일종의 조기교육을 받는 거죠.”

혹시 자녀가 이 직업을 한다고 하면 추천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전 무조건 추천합니다. 인터뷰라서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제 친구들 자녀 중에 대학 졸업한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 중에 타투를 배워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 직업을 가까이서 보면 굉장히 트렌디하고 멋있는 직업이에요. 하는 만큼 수익도 나고 실력이 쌓이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타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네요.
“원래 법을 전공해 대학 때 신림동에서 사법고시를 준비했었어요. 변호사가 꿈이었거든요. 대학 때 취미로 헤비메탈밴드를 했었는데, 타투에 관심이 조금씩 생겼어요. 2002년 즈음, 이걸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주변에 수소문을 해보니 타투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더라고요. 심지어 관련 책 한 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타투하면 안 좋은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배움의 갈증이 생기니 더 하고 싶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타투에 관심 있는 몇몇이 모여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기 시작한 게 계기였죠.”

타투이스트가 되기 위해선 그림을 잘 그려야 합니까.
“실력이 어느 정도 돼야 한다는 기준은 없지만 그림 그리는 걸 잘하고, 좋아해야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시간이 해결해주기 때문에 현재 잘하지 않더라도 좋아만 한다면 실력은 늘 수 있어요. 그림은 표현의 영역이고 예술의 범위이기 때문에 어떤 그림이 좋고 나쁘다 정하기가 어렵거든요.”

종이에 그리는 그림과 인간의 몸에 그리는 건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어떤가요.
“타투는 피부라는 한계점 위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예요. 타투이스트가 욕심을 많이 부려 터치를 많이 하게 되면 피부가 해질 수 있어요. 그럼 피부의 상태가 나빠지고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죠. 그리고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죠.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선을 하나 그릴 때도 온 신경을 집중해 그려야 합니다.”

한 번의 실수가 타투이스트는 물론, 고객에게도 치명적 오점이 될 수 있겠네요.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타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늘 말하는 부분인데, 독학으로 배우는 타투는 아주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의사가 되고 싶은 학생이 유튜브로 수술을 배워 의사가 될 순 없잖아요. 타투도 마찬가지로 작은 그림을 몇 번 그려봤다고 해서 큰 그림을 그릴 순 없어요. 도화지에 그리는 게 아니라 인간의 몸에 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정규과정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타투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어디서 배울 수 있나요.
“국내에서는 타투 아카데미가 몇 군데 있는데, 그곳에서 기본적인 기술과 타투위생을 공부한 뒤에 타투 숍에 취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비용은요.
“아직 법제화가 안 돼 있어서 저렴한 편인데요. 교육기간이 3~5개월 정도고 비용은 300만원에서 500만원 선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투이스트는 위생이 가장 중요, 아티스트적 마인드 그리고 타투기술 갖춰야···직업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 많지만 만족도 높고, 비전있는 직업”



타투이스트가 갖춰야할 조건도 있을 것 같아요.
“위생에 대한 교육을 꼭 받아야 합니다. 타투를 직업으로 삼은 이들에게 물어보면 위생을 1순위로 말할 거예요. 인간의 피부 위에 작업을 하기 때문에 위생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또 꼽자면 아티스트의 마인드, 타투 기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직도 저흴 색안경 쓰고 보시나요? 저흰 10대들의 꿈입니다" [강홍민의 굿잡]
직업적으로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을 텐데요.
“사실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 타투는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가 있고,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때문에 타투이스트들은 경력 단절문제부터 세금, 개인대출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어요. 신용카드 하나 쉽게 만들 수 없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업을 계속 하는 이유는 직업만족도가 아주 높다는 점이에요. 세계적으로 위상이 넓어지는 점이 장점이 아닐까요.”

해외에 비해서는 작을 수 있지만 국내 타투이스트의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요.
“수입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작업하는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이지만 개인의 타투실력이나 수상경력, 인지도 그리고 홍보 전략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월 1000만 원 이상 버는 작업자가 있는 반면 월 50만원을 버는 분들도 있죠. 물론 해외로 진출하게 되면 몇 배의 수익을 내는 분들도 있고요.”

타투이스트로 17년 차이신데, 그간 다양한 고객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그 중 기억에 남는 고객이 있을까요.
“60대 남성분이셨는데, 왼쪽 어깨에 'Never Never give up'문구를 새기셨어요. 작업을 하다가 문구의 의미가 너무 궁금해 ‘뭘 그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으시냐’ 여쭤봤어요. 그분이 말씀하시길, 얼마 전 암 진단을 받았는데, 의사가 항암치료만 견딜 수 있다면 시한부 연장도 가능하다는 말씀을 들으셨대요. 가족들을 위해 절대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이 문구를 보고 새기신다고 하셨죠. 아마 그분께선 지금 어딘가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지 않으실까 싶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실력과 마인드만 있다면 투잡 또는 부업으로도 가능하겠어요.
“해외 유명 타투이스트 중에서는 부업으로 이 일을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낮에는 소방관으로 밤에는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분도 있고, 사진작가, 디자이너, 퍼스널 트레이너 등 다양한 메인 잡을 가진 작업자들이 많습니다.”

타투이스트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타투이스트’라는 직업은 물론 앞으로의 타투분야를 봐도 비전은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볼 때 현재 국내 타투 시장 규모가 1조 원을 넘어 선 것으로 추산할 정도로 큰 시장입니다. 타투가 합법화가 되면 지금의 규모보다 몇 배 더 커질 가능성이 있죠. 글로벌대회 유치를 비롯해 타투머신·잉크 제작, 엑스포개최, 교육 등 아주 다양하게 성장 가능한 분야라 보여 집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