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올해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0%대’에 그치거나 4년 만에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25년 만에 한국의 성장률을 추월하면서 꿈틀하던 일본 경제가 올해는 고물가 등으로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신종 강도 등 생계형 범죄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일본의 ‘안전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일본 경제 비관적 전망일본 내각부는 올해 3분기(7~9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0.3% 증가했다고 12월 9일 발표했다. 일본의 실질 GDP 증가율은 1분기 -0.6%에 이어 2분기 0.5%를 기록한 뒤 3분기까지 2개 분기 연속 0%대 성장에 그쳤다. 문제는 내수다.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개인소비는 0.7% 늘었지만 속보치(0.9%) 대비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일본 경제는 지난해 1.9% 성장하며 한국(1.4%)을 25년 만에 넘었지만 올해는 비관적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2월 4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일본 경제성장률을 -0.3%로 예측했다. 일본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2020년 이후 4년 만이다.
나가하마 도시히로 다이이치세이메이경제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플러스 성장을 하려면 4분기 실질 GDP가 전년 대비 1.3%가량 증가해야 한다”며 “상당히 높은 허들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시라이 사유리 게이오대 교수는 “내수는 상당히 약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며 “임금을 인상하고 기업 이익을 높이려면 기술혁신으로 이어지는 투자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일본 경제는 명목 GDP를 기준으로 작년에 독일에 역전당해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4위로 떨어졌다. 내년엔 인도에도 추월당해 5위로 내려앉을 전망이다. 엔화 약세에 따라 달러화 환산 일본 GDP가 줄어들면서 종전 예측보다 역전 시기가 1년 앞당겨졌다.
일본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I)에서 한국에도 처음으로 추월당했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NI는 3만6194달러, 일본은 3만5793달러였다. 한국보다 401달러 적다. 한국의 1인당 GNI가 크게 증가한 가운데 일본의 엔저 현상이 겹치며 달러화 기준으로 두 나라 1인당 GNI가 처음으로 역전된 것이다. 고물가 악영향에 시름
올해 일본 경제는 고물가에 따른 악영향이 심각하다. 식품 가격이 급등하며 생계비 중 음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계수가 4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7~9월 2인 이상 가구 엥겔계수는 28%까지 오르며 1982년 이후 가장 높았다. 일본 엥겔계수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2000년대까지 하락세를 보였으나 2010년대부터 오르고 있다.
올해 연 소득 1000만∼1250만 엔인 가구는 엥겔계수가 25% 수준이었지만 연 소득 200만 엔 미만인 가구는 33% 수준에 달한다. 식비 상승이 저소득 가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총무성 담당자는 “채소, 과일, 육류 구매를 자제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소비자물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 엔화 약세와 맞물려 크게 뛰었다. 일본 정부의 임금 인상 유도 정책에도 불구하고 물가 변동을 고려한 근로자 실질 임금은 장기간 하락세다. 실질 임금은 2022년 4월 이후 올해 5월까지 2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 6월과 7월 여름 보너스 증액 등에 힘입어 증가했으나 8월부터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일본 정부는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을 통해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국민 소득을 끌어올리려 안간힘이다. 2020년대 중반까지 최저시급을 1500엔까지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조직인 렌고는 내년 봄철 임금협상에서 5% 이상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부작용도 있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 일자리가 감소하는 ‘최저임금의 역설’이 대표적이다. 데이터 분석 업체 나우캐스트가 집계한 지난 10월 마지막 주 ‘민간 파트타임 구인 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0.3% 하락했다. 이 지수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3년 6개월 만이다.
일손 부족에도 최저시급이 크게 올라 채용을 포기하는 움직임이 확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최저시급(전국 평균)은 매년 10월부터 1년간 적용되는데 종전 1004엔에서 지난 10월 1055엔으로 높아졌다. 인상폭은 51엔으로 역대 최대다. 인력 서비스 기업 엔재팬의 노구치 게이는 “물가상승으로 이익을 내기 어려워지면서 인건비 등 경비를 줄이기 위해 채용을 조정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근로소득자 실수령액을 늘리기 위해 소득세 면세 기준도 인상할 방침이다.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 제3야당인 국민민주당은 근로소득세 면세 기준을 올리는 ‘103만 엔의 벽’ 개선 문제와 관련해 연 소득 기준 178만 엔을 목표로 내년부터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103만 엔의 벽’은 연 소득이 103만 엔을 넘으면 소득세가 부과되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는 연봉 178만 엔까지 소득세를 물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둠의 알바’ 야미바이토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 사회문제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최근 일본 사회에서는 돈이 필요한 젊은이를 아르바이트 구하듯 SNS로 모집해 범죄에 동원하는 ‘야미바이토’ 활용 신종 범죄가 주목받고 있다. 야미바이토는 일본어로 어둠을 뜻하는 ‘야미’와 아르바이트를 의미하는 ‘바이토’를 조합한 신조어다. 모집에 응하면 텔레그램 등을 통해 지시받아 가택침입 등 단계별로 역할을 수행하고 보수를 받는다.
일본 경찰청은 올해부터 야미바이토 범죄 현황을 별도 집계하기 시작했다. 집계에 따르면 지난 4∼10월 야미바이토 모집에 응해 강도 사건에 관여했다가 붙잡힌 인원이 34명이었다. 사기는 492명, 절도는 126명 등이었다. 가장 많은 988명은 계좌 대여 등 범죄수익이전방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적발됐다.
일본 사회가 특히 주목한 사건은 올해 8월부터 11월까지 도쿄와 사이타마현, 지바현, 가나가와현 등 수도권에서 잇따라 발생한 연쇄 가택침입 강도 사건이다. 범인 상당수는 곤궁한 생활이나 빚 때문에 야미바이토에 응한 것으로 경찰에 진술했다.
야미바이토 확산에 따라 치안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커지면서 방범용품 시장 또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후지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시큐리티 관련 시장 전체 규모는 2022년 1조182억 엔으로, 처음으로 1조 엔을 넘은데 이어 올해 1조679억 엔, 2026년엔 1조1125억 엔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일본 주요 홈센터인 카인즈에서는 방범용품 판매 증가가 두드러지고 있다. 대형 보안업체 세콤은 올해 순이익이 1046억 엔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찰은 야미바이토에 대응해 처음으로 위장 수사 도입까지 검토하고 있다. 경찰은 야미바이토를 활용하는 범죄 조직에 접근하기 위해 가공의 신분증을 만들어 제시하는 수사 방법 도입을 추진할 방침이다. 자민당도 SNS를 활용한 강도 사건과 관련해 위장 수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일본에서 신분증 위조는 위법이지만 형법은 정당한 업무라면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현행법 범위 안에서 도입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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