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13년차 직장인이 느낀 성공적인 직장생활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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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잡앤조이=김인호] 나의 아버지는 회사원이었다. 명절에도 출근하실 만큼 회사 생활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다. 그래서 주말이면 아버지 회사에 방문할 기회가 이따금 있었다. 내가 10살 때쯤이다. 족히 30년은 된 기억이라 장면은 희미하지만, 그 느낌만큼은 아직도 선명하다. 주말이라 다소 적막한 분위기의 사무실 속에서도 아버지 얼굴에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열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흑백 기억 속 강렬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랐던 나는 어려서 ‘멋진 회사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삶에는 아버지에게서 느껴졌던 순수한 열정이 없다. 현재의 나는 꿈보다 목표라는 단어가 익숙하고, 야근보다는 워라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불과 10년 전만 해도 분명 꿈 많은 청년이었다. 대학교 시절 전공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고,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직장에 취업도 했으니 회사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열심히 올라가고 싶은 의지도 컸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차분한 현실주의자가 되어있다. 나는 왜 현실주의자가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한 마리 백조보다 무리 속 오리가 살아남는 세계
인간은 누구나 ‘인정욕구’를 갖고 있다. ‘나는 뛰어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다. 보통 신입사원 때 인정욕구가 가장 강하고, 진급할수록 인정욕구는 점차 퇴화한다. 사회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저 인정욕구가 이상하게 발달한 사람이 있다. “내가 최고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와 같이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우다. 물 위 떠 있는 한 마리 백조처럼 나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다. 13년간 직장생활을 해보니 백조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자의든 타의든 조직에서 먼저 나가는 사람은 항상 백조였다.

내가 막 대리 진급할 때였다. 당시 회사는 일손이 모자라 사람 충원하기 급급했다. 그래서인지 일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많은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 나와 비슷한 연차의 대리가 같은 팀에 있었다. 그는 인사평가 S를 받을 만큼 훌륭한 인재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회사에서 파벌을 만들려 하고,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면 윗사람에게도 강경하게 대들었다. 원하는 업무를 주지 않으면 태업하는 모습도 보였다. 자신은 능력이 출중해 회사에서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처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사가 어려워져 조직 개편을 할 때 그는 1순위로 정리되었다. 옥석을 가리는 인재로 남지도 못하고, 우선 정리 대상자가 된 것이다. 나는 이때 느꼈다. 나를 내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판이다. 평판이 안 좋으면 직장생활을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회사는 인생의 부분이다
요즘 직장을 인생의 ‘Game Changer’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직장을 안정적인 소득원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구직 활동을 하던 13년 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2009년에 취업을 했는데, 당시는 리먼브라더스라는 금융위기가 터진 시기였다. 금융위기 파급효과는 상당했다. 자산 가치는 폭락했고, 실업률은 급증했다. 먹고 사는 위기가 발생한 만큼 안정적 직업이 주는 가치는 매우 높았다. 그래서 취업 후에도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 혹은 공기업 준비를 위해 퇴사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또한 충격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당시 유행하는 단어는 ‘워커홀릭’이었다. 야근을 열심히 하고 빠르게 승진하는 것이 성공하는 삶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재택근무, 자율출근이 복지인 현 세상과는 전혀 다른 사회가 불과 10여 년 전이었다.

이러한 사회 트렌드는 2020년을 끝으로 사라졌다. 자산과 투자의 가치가 극도로 커진 세상이 되며, 인생에서 승진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조직에 헌신했던 50대 선배들조차 퇴사 순간에는 “건강과 재테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다 보니 예전처럼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야근하거나 회식에 목숨 거는 사람들도 줄어들었다. 대신 그 시간을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투자한다. “미스터 킴, 내 페이스가 망가지면 어떤 일도 오래 할 수 없어. 내 인생의 주체는 나고, 회사는 인생의 부분이야” 4년 전 독일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당시 친구의 말을 처우가 맘에 안 들면 이직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독일 친구 말의 참뜻을 알게 되었다. 독일 친구는 직장은 자아실현의 부분이며, 꾸준하게 일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건강, 재물, 인간관계, 취직, 사랑’은 인간의 평생 고민거리이다. 그리고 이 중 한 가지라도 결핍이 생기면, 삶의 난이도는 급격하게 상승한다. 다섯 가지가 적당하게 공존할 때, 그나마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회사에서 나를 증명하고자 하면? 나는 자기중심적이고,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얻고 잃는 것이 확실하다. 득과 실을 따지고 보면 “남는 것 없는 삶을 살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할 것이다. 내 기준에서는 실패도 성공도 아닌 삶의 모습이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한 삶은 직장생활과 사랑, 인간관계, 건강, 재물이 적당히 공존하는 삶이다. 욕심 같아 보여도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섯 가지를 적당히 완급조절하며 밸런스 갖춘 삶을 살면 된다. “한 마리 백조가 아닌 무리 속 오리가 되어, 자기 인생을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것이 13년 직장생활을 통해 다듬어진 성공에 대한 나의 인생 가치관이다.

김인호 씨는 국내 대형 건설사 구매담당자로 재직 중이다. 플랜트 해외 기자재 구매를 시작으로 국내 주택 및 건축 구매 경험이 있다. 업무 특성상 국내외 출장 경험이 많으며, 출장을 통해 몸소 배우고 느낀 다양한 문화와 사고의 방법을 인생의 보물로 생각하고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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