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대학가 지명 이야기, 그리고 쌓아가는 또 다른 의미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신지민 대학생 기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의 ‘회기(回基)’동은 법정동이자 행정동이다. 이곳은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위치한 지역으로, 경희대 학생들에게는 회기동을 활용한 재미난 밈(Meme)이 있다. 이른바 ‘회귀(回歸)의 중력’ 밈이다. “어차피 ‘회기로 회귀’할건데, 어딜 자꾸 가려고 해?”돌 ‘회(回)’와 돌아갈 ‘귀(歸)’를 붙여 쓴 ‘회귀(回歸)’는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경희대학교의 소재지인 ‘회기(回基)’와 그 발음이 유사하다. 이는 회기를 벗어나려고 해봤자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주로 신입생 때 반수· 재수를 하러 떠나려는 친구들에게 혹은 타 지역에서 모임을 가지려는 이들에게 사용한다. “아무리 ‘회기(回基)’동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다”, 즉 N수를 해도 결국 회기동으로 회귀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벗어나려 해도 회귀할 수밖에 없는 회기(回基)동
’회기(回基)‘동은 조선조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소 ‘회묘(懷墓)’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원래 한자어는 품을 ’회(懷) 자였다. ‘회묘(懷墓)’라 불리던 것은 1504년(연산군 10년) ‘회릉(懷陵)’으로 높여 불리다가 연산군 폐위 후 다시 ‘회묘(懷墓)’로 격하됐다, 하지만 1914년 일제가 품는다는 의미의 ‘회(懷)’ 자가 어렵다고 하여 돌 ‘회(回)’로 한자어를 바꾸고 ‘묘(墓)’ 자도 마을 이름으로 부적절하다고 하여 터 ‘기(基)’ 자로 바꾸어 표기한 것이다. 의도한 의미는 아니나, 어찌 되었든 지나고 보니 ‘회귀(回歸)의 중력’ 밈은 정말 돌아온다는 의미의 돌 ‘회(回)’ 자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새로 생긴 마음 신촌(新村)동, 젊은층 중심으로 의미 변화
“‘신촌(新村)’을 못가~ 한번을 못가~”, 가수 포스트맨(Postmen)이 부른 ‘신촌을 못가’의 노래 가사다. ‘신촌(新村)’동은 연세대학교 서울캠퍼스가 위치한 지역으로 인근에 이화여대, 홍익대, 서강대가 모여 있는 대학가로 유명하다. 놀 거리와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신촌에 노래의 화자는 왜 못 간다는 걸까?
“혹시 너와 마주칠까 봐, 널 보면 눈물이 터질까 봐”, “새빨개진 그 얼굴로 날 사랑한다 했었던 그곳엘 내가 어떻게 가니” 라는 가사를 보니, 화자는 이별을 했고 전 연인과 주로 ‘신촌(新村)’에서 만남을 가져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리학에서는 특정 공간(Space)에 인간의 애착, 의식 등이 더해진 것을 ‘장소(Place)’라 부르며 특히 인간과 장소의 정서적 연관을 ‘장소애(Topophilia)’라 일컫는데, 이렇게 본다면 아마 신촌에 쌓인 옛 연인과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이리도 슬피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노래의 화자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이 모여 있는 ‘신촌(新村)’은 많은 청춘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대게 ‘신촌(新村)’을 떠올리면 젊음, 낭만, 사랑, 청춘과 더불어 재미, 즐거움 등을 함께 언급하는데, 이것은 해당 지역에 대학과 상가, 유흥시설 등이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이며 축적해 온 지역과 지명에 쌓인 결과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신촌(新村)’이란 지명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의 조선시대 ‘새터말’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서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전국적으로 새로 생긴 마을엔 주로 ‘신촌(新村)’이란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서울의 ‘신촌(新村)’은 최초 특별한 지명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여러 세대에 걸쳐 오며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은혜를 배풀어 교화한다는 ‘혜화(惠化)동’
‘혜화(惠化)’도 비슷하다. 오래토록 공연의 성지로 불리는 ‘혜화(惠化)’동은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다. 가수 피아노맨의 노래 ‘혜화동 거리에서’는 “참 눈이 부셨어. 혜화동 거리에서 너를 처음 본 날 서투른 내 고백에 대답을 환한 웃음으로 들려준 너”부터 “오늘 니가 없는 여기 이 거리에 나만 혼자 아직 너와 걸어가고 있어”까지 만남과 이별에 대한 가사를 통해 ‘혜화(惠化)’동에 대한 장소감을 보여준다.
‘혜화(惠化)’동의 유래는 한양의 4소문(小門) 중 하나인 동쪽의 소문, ‘홍화문(弘化門)’의 바뀐 이름 ‘혜화문(惠化門)’에서 온 것으로 ‘은혜를 베풀어 교화한다’는 의미다. 지금의 혜화동과는 사뭇 다르다. 공덕과 태릉을 합쳐 지어진 ‘공릉(孔陵)동’
삼육대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 육군사관학교 등이 위치한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孔陵)’동은 두 지명에서 따온 글자로부터 유래된 합성지명이다.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 지역을 1963년 경기도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할 당시, 마포구의 ‘공덕(孔德)’동과 이름이 같아 ‘태릉(泰陵)’동으로 정했으나 공덕리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서쪽 공덕리의 구멍 ‘공(孔)’자와 동쪽 태릉의 ‘릉(陵)’자를 따서 합성한 ‘공릉(孔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애초의 ‘공덕’이란 지명은 순우리말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큰 언덕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보인다고 전해지며, ‘태릉’은 큰 무덤이란 의미로 부여된 지명이다.
최근의 공릉(孔陵)동은 국수가 유명하다. 중랑천으로 합류하는 실개천이 흐르던 ‘공릉(孔陵)’동은 1980년대 복개천이 되면서 주변에 벽돌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인부들이 싼 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국수가 인기를 얻게 되며 가게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조멸치국수’를 시작으로 국수거리가 발달하게 된 ‘공릉(孔陵)’동과 함께, 지역의 이름을 딴 ‘공릉동원조멸치국수’ 프랜차이즈가 서울시 내 곳곳에서 성업 중인 것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변경되었다는 ‘공릉(孔陵)’동의 지명 유래는 잘 모르고 있었을 수 있지만, 1980년대 복개한 하천과 국수로부터 알게 모르게 ‘공릉(孔陵)’이란 지명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었다. 주성재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지명이 가지는 유래, 언어적 변천, 지리적인 어떤 현상과 관련된 것이나 또 다른 영역의 첨가 내지 축소와 같은 사실관계의 파악은 지명을 바라보는 가장 중요한 관점”이라며 “이는 지역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되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명에 축적되는 인식이나 정서, 새로운 이야기를 확인해 창의적인 요소를 덧붙인다면 스토리텔링이나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 지역의 마케팅으로 또는 누군가의 글의 소재가 되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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