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미생, 갓생, 일단은 생!

△드라마 '미생' 캡처화면.
△드라마 '미생' 캡처화면.
[한경잡앤조이=황태린 NPR 매니저] 2010년대, 드라마 ‘미생’이 큰 관심을 얻었다. 누구나 초년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극 중 장그래에게 공감했을까. 현재의 고됨이 어떤 성공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는 것이란 설명은 대부분의 이들에게 위로를 준 것 같다. ‘미생’은 완성되지 않은 삶을 의미한다. 완성되지 못했다는 건 어딘가 궁극적으로 도착할 곳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2020년대의 사회초년생들은 그대로 ‘미생’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우리들은 현재의 삶이 미생이라며 더 나아갈 곳을 찾기보단 나의 하루하루를 잘 완수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갓생’을 살자는 다짐도 먼 미래에 성공한 나보다는 현재의 하루를 잘 이겨내는 나를 위한 마음이다.

3월 1일부터 홍대입구역 근처 ‘오브젝트’라는 소품샵에서 ‘건강이 최고심’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최고심 캐릭터가 마음의 위안을 주기 위해 행복의 약을 처방한다는 콘셉트였다. 팝업스토어는 평일 낮에도 대기줄이 길게 늘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듯 현재 Z세대 직장인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감히 최고심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심 팝업스토어 소개글(사진출처: 최고심 인스타그램)
△최고심 팝업스토어 소개글(사진출처: 최고심 인스타그램)
최고심의 인기 비결을 나름 분석해보자면, 정성스럽게 대충 한다는 것이다. 그림체는 삐뚤삐뚤 엉성해 보이지만 그가 주는 메시지와 일러스트 완성도는 결코 낮지 않다. 보는 이에게 다가오는 허들은 낮지만, 메시지의 울림은 분명하다. 최고심이 꾸준히 제공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 변주의 반복이다. ‘오늘부터 갓생 산다!’, ‘갓생 살이도 내일부터’! 두 가지 마음을 오가면서 열심히 사는 최고심 캐릭터가 짙은 공감대를 얻어내면서 MZ세대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갓생’은 뭘까? 오픈사전에서는 ‘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설명한다. 가끔 갓생을 외치는 당사자로서 어딘가 부족한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신과 인생이 붙은 합성어는 맞지만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 갓생을 사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갓생’, ‘오운완’ 등 SNS 인증 문화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신조어가 남과 공유하기 위해 만든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개인이 아이콘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을 것 같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오히려 해시태그를 통해 함께 동참하고 있는 친구를 찾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선망 받는 셀럽을 꿈꾸는 사람도 있지만, 인스타그램 필터, 해시태그 등을 활용하는 예를 찾아봤을 때에는 그저 자신의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과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조금 더 천천히 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는 빨리 완성되어야 할 ‘미생’의 삶으로, 요즘에는 치열한 ‘갓생’으로 꼭 살지 않아도 각자의 박자와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유튜브를 강타했던 ‘박막례 할머니’가 이 시대의 멘토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태도 덕분이었다. 나 또한 “인생은 너희들 박자에 맞춰 살면 그게 좋은 사람이 남게 되어 있다”는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2023년 3월, 여의도한강공원(사진=황태린 씨)
△2023년 3월, 여의도한강공원(사진=황태린 씨)
각자의 박자에 맞춰 사는 건 무한경쟁시대의 역풍을 맞아 지쳐버린 요즘 세대에게 더욱 필요하다. 초년생들은 최근 20년 동안 계속 무언가를 포기하고, 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일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더 이상 포기할 것도 남지 않은 채 ‘갓생’을 살며 하루하루의 삶을 지켜내는 게 중요해졌다.

맛있는 점심 식사, 퇴근길 지하철에서 나오는 격려 방송, 실수했던 업무를 다시 수습하며 배우는 보람 등등. 일상 속의 느린 행복을 찾아가면서 각자의 박자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소소모먼트’ 속에서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바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면 그야말로 ‘갓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황태린 님은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 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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