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낙원동 일대 게이들의 게토···공간적 분리와 혼재,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뤄지는 사랑

[다를 게 뭐가 있어 ①] 비주류에서 주류로 바뀐 성소수자들···미디어에 비친 그들의 모습

[다를 게 뭐가 있어? ②] “퀴어소설 마니아인 동생에게 커밍아웃 했어요”
△종로3가 탑골공원 근처의 포장마차 거리.
△종로3가 탑골공원 근처의 포장마차 거리.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 신지민 대학생 기자]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일 저녁, 종로3가 낙원동 일대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한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러 온 직장인, 친구들과 낙원상가에 악기를 보러온 20대 대학생, 낮부터 탑골공원 한 켠에서 장기를 두던 노인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말소리가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 거리를 조금 걷다보면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유독 남성들의 성비가 높다는 점이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게이들을 위한 Ghetto, 낙원동
낙원동에는 게이(Gay)들만의 게토(Ghetto)가 있다. 게토는 소수집단이 모여 있는 도시 내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로, 탑골공원 인근에서 낙원상가 뒷골목을 넘어 그 일대가 곧 그들을 위한 장소다. 게이는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남성을 말한다. 늦은 저녁시간 이 지역의 남성 비율이 유난히 높은 이유로 보였다. 그렇다면, 낙원동에는 왜 게이들의 공간이 되었을까.

1970년대 후반 낙원동에는 여러 극장이 위치해 있었다. 당시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던 시대였기에, 게이들은 주로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에 섞여 모였다. 그중 극장은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이를 계기로 형성된 낙원동의 게이 커뮤니티는 관련 업소의 집적과 상생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종로3가역 5번 출구로 나와 들어선 골목에서 삼삼오오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얼핏 봐선 그들의 성정체성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가끔씩 오고가는 스킨십도 자연스러운 터치와 구분이 어려웠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듯,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성소수자에게 만남이란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에게 있어 만남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관심이 생겨도 곧장 마음을 표현하기 어렵고, 특히나 상대방의 성정체성을 모르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괜히 말을 꺼냈다가 이상하게 여길까 오히려 두렵기까지 하다.
△게이들의 만남의 광장이란 뜻에서 ‘게이빈’이라 불리는 낙원상가 인근 커피빈.
△게이들의 만남의 광장이란 뜻에서 ‘게이빈’이라 불리는 낙원상가 인근 커피빈.
길에서 만난 한 모 씨(29)는 만남을 위해 낙원동에 방문한 게이였다. 그는 성소수자들의 경우 일반인들과 다르게 일상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교제를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그래서 여유가 있을 때면 낙원동 게이바에 들러 성정체성이 비슷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한 씨는 “낙원동이나 이태원 등의 장소에 방문하는 것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방법의 대부분”이라고 답했다.

이는 최초 게이들의 공간이 분리되어 형성된 이유와도 같다. 게이들끼리는 뭉쳐 지내면서도 그들을 달갑지 않게 보는 외부인은 배척하며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물론 동성애뿐만 아니라 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공간은 대체로 유사한 행태를 보인다. 외부세력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 돼 있어 퀴어 전용 데이팅 플랫폼이나 사이트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종종 앱을 통해 만남을 가져본 적이 있다고 말한 한 씨는 “생각보다 많은 퀴어인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 한다”면서 “성소수자 간의 교류와 소통의 창구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답했다.

다름을 이해하는 오픈 공간 낙원동 ‘프렌즈’
낙원동의 어느 한 골목길에서 ‘프렌즈’라는 게이바를 운영하는 천정남 씨를 만났다. 2004년 개업한 프렌즈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게이들과 이성애자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바(bar)라는 점이다. 주변의 가게들이 멤버십으로 운영된다는 점과 상당히 대비됐다. 가게 유리창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프렌즈는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종교, 나이, 인종, 출신 민족, 출신 국가, 장애, HIV 감염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를 환영합니다.”
△낙원동 ‘프렌즈’ 게이바 천정남 사장.
△낙원동 ‘프렌즈’ 게이바 천정남 사장.
프렌즈도 처음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환영하는 가게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게이바가 그렇듯 오로지 게이 손님들을 위한 가게였다. 조금 더 보태면 그들의 지인이나 가족, 트렌스젠더 정도가 주 방문객이었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모이기 힘든 성소수자들을 위해, 프렌즈는 그들이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솔직한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모두를 위한 오픈 공간으로 전환한 것은 지난해였다. 이는 낙원동 일대에서 프렌즈가 처음이다. 천 씨는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 인식이 바뀌어가면서 적어도 편견이 없는 사람들과는 공간을 공유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의 시선이 없는 사람, 다름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 혹은 이들이 궁금한 사람들의 경우 얼마든지 함께 하며 게이에 대한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가게를 방문한 이들을 보면 게이들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의 여성들, 20대 남녀커플 등등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미디어의 영향으로 커밍아웃한 유명인, 동성애를 주제로 웹툰을 그리거나 SNS를 운영하시는 분들 덕분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이 나아진 영향으로도 풀이됐다. 프렌즈는 게이바였지만, 실상 대중들이 흔히 이용하는 일반 술집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낙원동, 더 나은 포용사회로
모든 업소가 ‘프렌즈’처럼 일반인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천 씨는 “낙원동엔 100여개가 넘는 게이 가게가 있지만 아직 95% 이상은 게이만을 손님으로 받으며 멤버십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기에,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근처 인사동에 자주 방문하는 한 대학생은 “주변 지인이 낙원동 게이업소에서 나오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충격일 것 같다”고 답했는데, 이것이 곧 그들이 공간적 분리를 원하는 이유라 여겨졌다.

하지만 ‘프렌즈’의 철학처럼 낙원동도 모두가 함께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종로3가 5번 출구와 낙원악기상가, 탑골공원 주변을 돌아보면 그저 여러 세대가 뒤섞여 공간을 향유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낙원동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거닐어 보면 누가 게이이고 누가 이성애자인지 분간할 수 없다. 필요와 목적에 따라 공간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었다. 이미 낙원동의 다수자와 소수자는 한데 어우러져 잘 지내고 있었다.

사회적 시선에 비춰볼 때 성소수자에게 다름이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라 보기는 어렵다. 다름을 둘러싼 포용과 이해, 차별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개개인의 의견은 저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적어도 이들을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만큼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혐오와 갈등, 갈라치기가 만연해져가는 세상 속 ‘포용사회’의 덕목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많은 소수자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