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연봉, 워라밸, 관계를 포기하면서 난 무엇을 선택했나

“팀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2022년 3월 어느 날, 내가 말한 이 한 마디는 누리고 있던 많은 것을 포기하겠다는 의미였다. 좋은 고과로 받은 높은 연봉을 포기했다. 야근이 거의 없어서 매우 좋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의미하는 Work & Life Balance의 줄임말) 역시 포기했다. 수년 간 함께한 좋은 동료를 비롯해 그동안 맺은 유관부서와 관계도 포기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여의도의 근무 생활 역시 포기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대기업의 정규직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퇴사하는 날에는 보통 하늘이 맑다.
△퇴사하는 날에는 보통 하늘이 맑다.
퇴사와 이직 과정에서 드러난 안정감의 본질
퇴사는 언제 결심하는 것일까? 연봉은 낮은데 더 높은 연봉을 제안받을 때? 직장 상사가 선을 넘는 행동을 할 때? 더 이상 배울게 없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이 사라졌을 때’ 퇴사를 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있다는 식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영업에 있을 때는 타사 제품보다 비싸긴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먼저 내가 납득해야만 제품을 제안했다. 직군을 바꿔서 서비스를 기획할 때도 앱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불필요한 알림을 보내지 않도록 논리를 구성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5천만명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특히, 내가 경험한 금융에 관한 무지를 해결해 우리나라를 어제보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에 힘을 쏟고 싶었다. 당시 조직 개편의 영향으로 5개월 동안 상무님을 비롯한 직속 상사들이 연이어 교체되면서 고민할 시간이 많아지던 그 때 결심했다. 퇴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2022년 1월의 겨울이었다.

이직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사항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수 있게 돕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조직심리학 석학인 애덤 그랜트는 그의 책 <기브 앤 테이크>에서 ‘이기적 이타주의자’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이기적인 이타주의자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남을 돕는 사람이다. 나는 경제와 금융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아서 결혼 전과 신혼 때 아내를 힘들게 했다. 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내가 도움을 받은만큼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 가치관은 박수를 받을 일이 전혀 아니다. 철저하게 나를 위한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건강해야 나도, 우리 가족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나는 그렇게 금융권의 문을 두드렸다.

2022년 4월, 정말 좋아했고 결혼까지 연결해 준 LG전자를 떠났다. 일반적으로 이직을 하면 연봉을 높인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총인원이 50명인 중형 자산운용사에 1년 계약직으로 이직했다. 나는 처음에 연봉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라는 말에 놀랐다. 금융권에 근무하는 지인들을 통해 알아보니 자산운용사의 경우 보통 계약직을 선택한다는 말을 들었다. 성과가 좋을 때 정규직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꺼이 연봉을 깎고 계약직을 받아들였다. 연봉은 약 50% 삭감했다. 금융에 관련된 경력이 없었으므로 기본 연봉을 신입사원 수준으로 맞춘 것이다. 맞벌이를 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최소한의 밥벌이는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건을 협상했다. 인센티브는 성과와 동료평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했다.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안정감을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연봉을 높이면 안정적일까? 나보다 연봉은 높지만 고용 불안에 시달리거나 은퇴 이후의 삶을 걱정하는 선배들을 여럿 봤다.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불안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국, 안정감의 근원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책 <완벽한 공부법>에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의 첫번째 조건은 자기효능감, 스스로가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비단 공부에만 적용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자기효능감을 강화시켜주는 아내의 응원.
△자기효능감을 강화시켜주는 아내의 응원.
물론 내 상황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준 곳은 은행이었다. 기존에 대출 받은 전세이자율이 2.5배 이상 큰 폭으로 올라간 것이다. 한 달에 50만원 내던 대출이자는 130만원으로 늘어났다. 부모님과 처가 식구들의 걱정어린 소리도 들어야 했다. 1년에 한 번 정도 전화를 주시던 외할아버지께서는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로 내 안부를 물으셨다.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돌연 퇴사하고, 전혀 연관없는 분야에 계약직으로 들어간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월요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내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기쁨이 있었다.

입사 후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주도적으로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루에 50명 이상 만나는 고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기 위해 틈만나면 공부를 했다. 실제로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밤새 공부하기도 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서 내가 사회에 무언가를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What you do proves what you believe
직장인의 3대 허언 중 하나는 ‘퇴사할거야’라고 한다. 그만큼 이 시대의 많은 직장인들은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퇴사를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수백만 명의 직장인들에게 묻는다. “나는 왜 퇴사를 하고 싶은가? 퇴사를 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퇴사 후 이직을 한다면 그곳에서는 왜 일하고 싶은가?“ 안정을 가져다 주는 것은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다. 높은 연봉도, 서울에 집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그 근원에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해 확신이 사라졌다면, 혹은 애초에 그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자신을 믿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Start with why의 저자 Simon Sinek은 전설이 된 그의 Ted 강연 ‘How great leaders inspire action’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What you do simply proves what you believe (여러분들이 한 일은 여러분들이 믿는 바를 증명할 따름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양이천 님은 금융 스타트업의 공동 창업자이자 마케터로, LG전자와 자산운용사에서 근무했지만, 퇴근 후 느껴지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창업한 케이스다. 5천만명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위해 오늘도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