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스몰토크의 거대함

공감 가는 에세이를 쓰는 한국 소설가가 있다. 에세이가 말하고 있는 의견이 내가 세상에 대해 느끼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아 항상 공감하며 읽고 있다. 그런 그가 소설집 출간 이후 인터뷰에서 ‘한국에서의 스몰토크는 매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극도의 예민함을 지닌 그가 어떤 지점에서 어려워 하는지 짐작이 갔다.

업무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스몰토크인 사람으로서 주제의 중용을 찾는 게 항상 어렵다고 생각한다. ‘각인각색’이라는 말이 있듯 사람마다 살아온 삶, 예민하게 생각하는 포인트 등등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아마 소설가도 그 지점에서 어려움을 느꼈을 거라고 추측한다. 말을 먼저 거는 입장이든 아니든 말이다.

얼마 전 장성규의 워크맨 숏츠가 큰 반응을 얻었다. 중년의 직원에게 “자제분들 나이는” 이라고 묻자 “40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자 장성규는 크게 놀라며 “20대 초반에 낳으셨냐”고 되물었다. 영상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동안 관련된 언급이 자주 등장했고, 말미에 가서야 그 말이 “뻥”이며 직원들 모두 미혼임이 드러났다. 영상의 반응은 직원의 ‘쿨함’을 칭찬하는 반응과 장성규의 편견을 지적하는 반응으로 크게 나뉘었다. 나는 직원분이 인생에서 저런 질문을 얼마나 많이 받았으면 자동적으로 반응이 튀어나올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유튜브 <워크맨> 캡쳐화면.
△유튜브 <워크맨> 캡쳐화면.
주말마다 동네 농원에서 일을 도운 적이 있다. 손님들은 주로 은퇴 후 텃밭을 꾸리거나 평생 농업에 종사해온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시 텃밭의 한두 구좌를 얻어 농사를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나는 모든 손님들을 편의상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불렀다. 그러자 손님들은 나를 대학교 1학년 재학생 정도의 나이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편견을 주고받은 것이다.

모두가 일종의 몰개성을 묵인하는 상태에서 간단히 오가는 말 속에서도 발화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은 질문은 “부모 용돈 받고 살던 때가 좋았지?”였다.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오이 모종 트레이를 자르다가 올려다본 표정이 생생하다.

스몰토크는 조금 더 유연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필수적이다. 주제 또한 말랑한 게 좋다. 먼저 말을 꺼내야 하는 입장에서 이 지점이 가장 어렵다. 나이, 취미, 트라우마, 관심사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다양한 주제를 제시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직장인에게 부모님 용돈 받을 때가 좋았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종종 택시, 회사, 마트 등 다양한 장소에서 들은 무례한 대화들을 공유하곤 한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들은 친근한 마음에 건넨 말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사려 깊지 못했다. 나는 주로 택시에서 그런 경험을 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다’는 말과 인사 외에 말하지 않는 기사님이 있는가 하면, 가는 길이 심심하니 이야기나 하자고 탑승부터 하차까지 운행 내내 입을 쉬지 않는 기사님도 있었다.

쉴 새 없이 말하는 사람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남자친구는 있는지, 머리가 짧아서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겠다든지, 요즘 정치 경제 상황에서 누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등등 자꾸 토론을 걸어오는 질문형이 있는가 하면, 다짜고짜 바깥의 상황을 비난하고 혀를 차는 통보형이 있다. 운전대와 목숨줄을 동시에 잡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어쩔 수 없이 계속 답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하며 친구들은 무응답이 최선의 반응이라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발화를 막을 방법은 크게 없다. ‘스몰토크는 어렵다’고 했던 소설가의 스몰토크들도 어쩌면 신상을 묻거나, 이야기하길 꺼리는 주제에 대해 깊게 묻는다거나 하진 않았을 지 예상해본다.

다양한 주제의 대화는 뇌의 시계를 늦추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SNS에만 접속해도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쏟아지는 요즘, 보다 사려 깊은 스몰토크와 이야기들이 오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태린 님은 지구종말론의 혼돈 속에서 태어나 자연에게 배우며 자랐다. 역사, 심리, 소설, 인간,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덕질’하던 유년을 지나 지금은 홍보대행사 2년차 막내 직원을 거치는 중이다. 문예창작 전공으로 글로 배운 건 글 뿐. 세상을 온몸으로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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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