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노무사 언니가 알려주는 노동법②-연차휴가
바야흐로 여름 휴가철의 절정입니다. 직장인에게 임금만큼이나 중요한 근로조건을 하나 꼽자면 바로 ‘휴가’ 아닐까요. 직장인 시절, 저 역시 이듬해 달력이 나오면 한 장씩 넘기면서 발견하는 빨간 날을 하나씩 체크할 때마다 짜릿한 설렘을 느끼곤 했습니다.저의 이전 직장은 연차휴가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늘 바쁘고 기한에 쫓기는 직무특성상 업무공백이 허용되지 않던 탓에 누군가 휴가로 자리를 비우면 필연적으로 다른 팀원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였거든요. 공식적으로 운영되던 여름휴가 5일은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였고, 저의 연차휴가일수에서 5일이 차감되는 것임에도 그 당시에는 휴가를 5일이나 허해준 회사에 감사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회사가 세상 전부이고 그 안의 규칙이 당연한 줄 알았던 사회초년생 시절을 떠올리면 그 풋풋함과 무지함에 묘한 웃음을 짓게 되죠. 라떼를 논하기엔 아직 젊지만, 사회초년생 티를 벗은 지도 한참 된 30대로서 주변을 살펴보면 요즘 직장인들은 연차사용이 대체로 자유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무제한 휴가 제도를 도입하거나 당일 휴가사용 통보마저 거리낌 없이 가능한 유니콘 같은 회사도 종종 보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노무사로서 접하는 어느 직장인들의 현실은 사뭇 다릅니다. 징검다리 연휴에 휴가 사용 금지, 3일 연속 휴가 사용 금지, 주말을 포함한 월요일과 금요일 휴가 이틀 사용 불가, 휴가 신청 시 반드시 사유 기재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여전히 수많은 일터의 직장인들이 휴가사용에 고충을 겪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는 연차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함이 원칙입니다. 이를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이라고 합니다. 다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회사가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이를 회사의 ‘시기변경권’이라고 합니다.(근로기준법 제60조제5항 참고)
보통의 경우 회사의 휴가 시기변경권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법은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를 매우 엄격히 보고 있고 이에 대한 입증책임도 온전히 회사의 몫이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근로자라면 자신의 휴가시기를 자유롭게 지정하여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빈번히 발생하는 연차휴가 사용의 통제는 회사의 제도적 차원일 수도, 상사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회사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휴가사용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110조). 조직적 차원에서 단순히 업무공백 없이 일을 돌아가게 하도록 근로자들의 연차휴가 사용을 통제한다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겠죠. 반면, 회사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연차휴가일에 갈음하여 특정한 근로일에 근로자를 휴무시키는 ‘연차휴가 대체’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62조).
회사의 조직적 문제가 아닌 상사의 주관적 문제에서 비롯된 휴가사용의 통제는 직장 내 괴롭힘 이슈와 연관됩니다. 휴가 신청을 하자 취소를 강요하며 불이익을 고지하거나, 휴가 사유를 꼬치꼬치 물으며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특정인에게만 휴가 사유를 확인하고 합리적 이유 없이 휴가 직전 과다한 업무를 부여하는 등의 행위는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은 것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소지가 큽니다. 상사에게 휴가사용 승인의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권력의 무기로 삼아 휴가사유를 지나치게 확인하거나 합리적 이유 없이 휴가신청을 거부하는 것은 업무상 권한을 벗어난 행위로서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합니다.
물론 법적 권리만을 내세우며 어느 날 내 마음대로 휴가사용을 통보하고 홀연히 떠난 사람이 있다면 법적 문제를 떠나, 더불어 사는 우리 사회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부적합한 면이 있는 거겠죠. 휴가 시기 또는 휴가 중 업무분담·대체자 등에 관한 사전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휴가사용으로 업무에 상당한 차질이 생기고 조직에 구체적 손해가 발생했다면 회사는 해당 근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는 별론으로 하고) 신의성실의무 위반, 업무태도 불량, 업무지시 불이행 등을 사유로 하는 인사상 조치가 가능할 것입니다.
연차휴가는 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입니다. 다만, 권리 실현을 위한 개인의 자유만을 주장하기엔 우리가 몸담은 조직 내외부에 이해관계자들이 참 많습니다. 따라서 나의 사정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사정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휴가사용의 당사자뿐 아니라 조직, 관리자, 그 외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말입니다. 상황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서로 조금씩 배려한다면 자유로운 휴가사용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우리 모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이 무더위를 잘 이겨내면 좋겠습니다.
차연수 님은 스타트업 인턴, 해외 주재원, 5년 차 직장인을 지나 돌연 퇴사 후 공인노무사 시험에 동차 합격한 뒤 현재 제이에스인사노무컨설팅 파트너 공인노무사로 활동 중이다. 사업주 자문, 인사컨설팅, 교육·강의, 노동분쟁 사건,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사건·조사, 단체교섭 컨설팅 등 다양한 인사노무 분야를 아우른다. 우리의 일터는 법률적 영역뿐 아니라 법이 답을 내릴 수 없는 관계의 영역이 존재하기에 결국은 사람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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