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한국외대 졸업이수학점 논란 게시글 수년째 게재
학교 측 구체적 언급 피해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한국외대 게시판에는 졸업이수학점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수년 전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게시물 캡처 사진1, 2)
하지만 올해 들어 이러한 불만여론이 유독 강해지는 분위기다. 과거, 비슷한 내용의 글의 추천 수가 20개 남짓이었으나 올해 들어 수백 개에 달하는 추천 수를 받는 게시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외대 총학생회에서 대응을 시작하면서 졸업이수학점 문제가 공식화 될 전망이다. 실제 서울 소재 주요 15개 대학의 졸업 학점 요건을 비교를 했을 때, 한국외대의 학점 기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인문(어문), 사회·상경계열 학과는 15개의 대조군 대학 중에서 각각 두 번째, 첫 번째로 높았다. 또 영어영문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는 경우 충족해야 하는 총 이수학점은 15개 학교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교내 전체 단과대학 중 가장 높은 기준을 적용받는 곳은 글로벌캠퍼스 소재 통번역 대학이다. 통번역 대학의 경우 졸업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선 150점을 이수해야 한다. 통번역대학을 운영 중인 주요 대학 중 경희대 응용영어통번역학과와 동국대 영어통번역학 전공의 졸업이수학점이 130점인 것을 고려하면 확연히 높은 수치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 홈페이지에 따르면, 능숙한 현지 언어구사력을 위해 엄격한 학사관리와 강도 높은 언어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 취지에 맞게 150점이라는 높은 기준을 채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당 단과대 소속 재학생들의 개선 요구 목소리는 큰 상황이다.
한국외대 재학생 ㅇ씨(스페인어통번역학과·4)는 “통번역 대학의 경우 150학점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학기 당 수강 할 수 있는 수업을 모두 채워 듣는 경우가 많다”며 취업을 위한 기타 활동에 신경 쓰기가 힘들어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언어 전공의 특성상 해외 유학 경험도 중요한데, 교환학생으로는 한 학기당 8학점밖에 채워지지 않아 시간 대비 효율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일도 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학생 ㄱ씨(스페인어통번역학과·3)는 “부족한 학점을 채우기 위해 계절학기를 활용하곤 했는데 이젠 계절학기 수강료마저 올라 더 부담된다”고 했다.
학생들의 문제 제기에 총학생회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6월 1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 ‘도약’은 재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매우 필요하다’는 답변이 81.7%(1,344명)로 나타났다. 총학생회는 지난달 5일 학생인재개발처장 및 교무처장과 면담을 진행했고 본 전공·이중전공 대상 위주의 졸업학점 축소와 이에 대한 소급적용을 건의했다고 답했다. 학교 측은 추후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실제로 학칙개정까지 이루어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학생회에 따르면 학교 측 입장은 이 현안과 관련해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과 더불어 소급적용이 실제로 시행될 시엔 학사운영에 아주 큰 혼란이 생긴다며 우려를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입장에 공감하는 재학생도 적지 않은 분위기다. 재학생 ㄹ씨(경제학부·4)는 “졸업이수학점축소라는 현안과 개인들의 사정을 엮어 학사제도를 수정하는 것은 과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학생 ㅅ씨도 “단순히 많은 학생이 요구하고 불편해한다는 이유만으로 학칙을 고치는 것은 근시안적인 해결방안”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 교수 “입장 밝히기 어려워”
현안의 중심에 있는 통번역대학의 한 교수는 이른바 ‘졸업학점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재 한국외대는 졸업학점 문제 외에도 캠퍼스 간 유사학과 통폐합 정책 강행에 따른 학교-교수와 재학생 간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런 민감한 상황 속 학교 행정에 대한 교수의 발언 하나하나가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통폐합이슈를 두고 구조조정 대상 학과를 위한 보상책으로 이수학점 축소라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을 두고 총장이 부정적인 견해를 표한 바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다만 졸업학점 문제만 놓고 보았을 때 단과대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했던 2021년도 조사결과를 예를 들며 학과 커리큘럼에 대한 재학생들의 만족도가 높게 나왔다며 현재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외대 전략홍보팀에 따르면, 학칙 개정 절차는 크게 6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담당 부서 학칙 개정 발의문 총장 승인(결재) → 학칙 개정안 학교 홈페이지 공고 및 의견 수렴 → 학칙 개정안 교무위원회 심의 → 학칙 개정안 대학평의원회 심의 → 학칙 개정안 규정기초심의위원회 심의 → 개정 학칙 총장 승인(결재) 및 공포 순이다.
학칙개정 절차상 시작과 마지막 단계에서 총장이 승인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총장의 영향력이 크게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당사자의 의중을 직접 들어보고자 접촉을 시도했지만, 해당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학생회와 논의를 하고 있는 교무처에 문의 바란다며 사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한편 대학가에서 이수학점을 축소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경희대, 성균관대, 연세대, 중앙대 등 여러 학교가 융합인재 육성이라는 취지를 앞세워 이수학점을 축소한 바 있다.
당시 연세대학교 교무처장은 추진 배경에 대해 졸업이수학점이 높아 학생들의 취업준비에 방해된다는 주장을 외면할 수 없었고 융통성을 가지고 학사 운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여러 교육협회 및 단체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졸업이수학점 축소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이 동의했다.
이수연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수학점이 축소될 시 수업에 대한 수요가 줄게 되어 비인기교과목 강의는 폐강될 것”이라며 “그에 따라 강의의 다양성이 사라져 융합인재 육성이라는 취지와 상충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