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출생 신고 영아, 의료보험 · 각종 지원에서 제외될 수밖에
출생신고 택하면 제도적 울타리 내에서 아기 보호할 수 있어
미혼모 복지 사각지대 좁히려는 노력 지속돼야

라이프가든 아기방에 부착된 아기 유기 방지 공고.
라이프가든 아기방에 부착된 아기 유기 방지 공고.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를 보호하고 기르는 것은 개인이 아닌 사회 공동의 과제라는 뜻이다. 최근 수면 위로 드러난 미출생 신고 영유아 실태와 잇따르는 영아 유기 사건에 연일 미혼모 개인에게로 책임의 화살이 쏟아진다. 그러나 질책보다 신뢰를 건네야 할 때다.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는 믿을만한 마을임을 보이는 게 먼저다.

“출생신고 못 도운 아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덜컥해요. 그때 그 아기는 어떻게 됐을까….”

부산 홍법사 행복드림센터에서 라이프가든을 운영 중인 이희숙 소장은 “몇 년 전 출생신고가 두려워 아기를 안고 도망쳤던 미혼모가 있었다”고 운을 뗐다. 라이프가든은 위기 상황의 미혼모를 위한 상시 개방형 아기방으로, 누군가 아이를 두고 가려는 인기척이 감지되는 순간 5명의 담당자에게 연락이 간다.

이 소장은 “그날도 연락 경보음을 듣고 놀라 한달음에 달려갔다. 한 여성이 갓 출산한 것으로 보이는 영아를 안고 아기방에 찾아왔다”며 회상했다. 이어 “행복드림센터는 방문하는 모든 미혼모에게 출생신고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그 산모에게도 절차를 얘기했더니 아기를 데리고 센터를 나가버렸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로서는 친모를 막을 권한이 없기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에 아기의 출생신고가 제대로 이뤄졌을지 여전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라이프가든 아기방 내부 모습.
라이프가든 아기방 내부 모습.
행복드림센터의 행정 지원을 맡고 있는 유은주 담당자는 “출생신고는 아기 보호를 위해 필수”라 강조하며 “미출생 신고 영아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 돼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센터는 찾아온 산모와 아기를 몇 주간 보호해 줄 뿐 아니라, 지원받을 수 있는 국가 정책과 민간단체의 도움을 알아보고 관련 기관에 연계해 준다”며 “그런데 출생신고가 안 돼 있으면 아기가 제도적 지원을 받을 길이 없기에 도와줄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제도적 울타리 안에서 아기 보호할 수 있는 ‘출생신고’
그렇다면 미혼모가 사회를 믿고 적법한 방법으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울타리가 필요할까.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미혼모 가족의 출산 및 양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1,247명의 미혼모 중 41.8%가 임신·출산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는 문항에 ‘금전적으로 어려웠다’고 답변했다. 또한 ‘안정되게 지낼 곳이 없었다’는 답변이 14.4%, ‘나의 상황을 말할 곳이 없었다’는 답변이 13.5%를 기록했다. ‘병원에 같이 갈 사람이 없었다(13.2%)’, ‘신생아 돌보는 방법을 몰라 어려웠다(9.8%)’, ‘사람들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5.8%)’ 순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 국가 지원 정책 역시 미혼모가 겪는 주된 어려움을 중심으로 마련돼 있다. 한혜주 부산광역시 건강가정지원센터 팀장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와 지역별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는 한부모가족 지원제도 안에 포괄해 미혼모의 임신과 출산 과정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여가부의 2023 한부모가족 복지서비스 종합안내서를 살펴보면 미혼모·부는 △임신·출산·진료비 지원 △저소득층 기저귀 및 조제분유 지원 △고위험 임산부 의료비 지원 △출산 비용 지원 △첫 만남 이용권 등의 제도를 지원하고 있다.

더불어 △산모 건강관리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생애 초기 건강관리 시범사업으로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미혼모자 시설 연계 시스템을 통해 필요하다면 출산 이후까지 안전을 보장받을 방안이 존재한다. 임신 상태의 미혼모도 입소 가능한 기본형 미혼모자 가족 복지 시설에서는 △숙식 무료 제공 △분만 혜택 제공 △자립 지원 △의료비 등이 지원된다.

이러한 기본 생활 지원형 시설은 전국 시도에 포진돼있다. 지역별로는 △서울 129명 △경기 67명 △부산 45명 △대전 34명 △인천·강원·대구 각 30명 △광주 29명 △충남 18명 △경북·전북·울산 각 15명 △경남 13명 △전남 12명을 정원으로 운영 중이다.

또 아이의 생부에게 양육비를 받기 어려운 미혼모의 경우 전문 기관과의 상담 서비스도 신청 가능하다. 한 팀장은 “양육비 이행센터에서 진행하는 한부모 가정 대상 1:1 양육비 상담 시스템을 통해 미혼모도 상황별 맞춤형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기존에는 이행센터가 서울에만 있어 지역 미혼모들의 직접 방문이 어려웠으나 최근에는 부산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도 상담 받을 수 있다”며 “지방까지 시스템이 물꼬를 튼 것을 계기로 양육비 상담에 대한 전국 각지 미혼모들의 이해도와 접근성이 좋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혼모 복지 사각지대 좁히려는 노력 지속돼야
부산미혼모부자지원센터 리플렛(자료제공: 부산시 여성가족과)
부산미혼모부자지원센터 리플렛(자료제공: 부산시 여성가족과)
기본적인 국가 정책 이외에도 미혼모들의 양육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곳도 있다. 여가부의 자립 지원패키지 수행기관인 부산 미혼모·부자지원센터는 미혼모를 대상으로 △위기 지원사업 △임신·출산·자녀 양육 교육 사업 △공공기관 및 민간 자원 연계 사업 △상담 기관 연계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강유빈 부산 미혼모·부자지원센터 사회복지사는 “센터는 아기를 스스로 양육하고자 하는 미혼모·부를 대상으로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 대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립을 돕는다”며 “미혼모가 임신 중일 시 젖병, 젖병 솔, 분유, 기저귀 등이 담긴 출산용품을 준비해 주는 것은 물론 응급 상황 발생 시 대처 방안 안내, 지원금 범위 내 분만비용 지급 등 안전한 출산을 위해 지원 중”이라 설명했다.

또한 강 사회복지사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지원금과 혜택을 받고 있어도 미혼모가 안정적으로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며 “출산 및 초기 영유아 양육 과정에서만 위기를 극복하면 되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아이가 커나가는 과정 내내 크고 작은 어려움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그는 “아이를 키우다 보면 몇 개월마다 쑥쑥 크는 몸에 맞춰 옷을 계절별로 구하는 것도, 각종 생필품이 떨어지지 않게 때마다 채워 넣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렇듯 놓치기 쉬운 사소한 어려움을 도와주기 위해 의류 나눔 장터를 열고 일회성으로 생필품 박스를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시적인 영아 보호뿐만 아니라 미혼모들이 안정적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지속해서 돕는 게 우리 사회의 마땅한 역할”이라 강조했다.

한편 미혼모 가족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미혼모 인식 개선 사업 활성화와 미혼모 지원책에 대한 홍보 강화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희숙 행복드림센터 소장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진 수준이라지만, 우리 사회에 여전히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고착돼 있다”며 “미혼모들은 어떻게든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편견이 뒤따라오니 베이비박스나 라이프가든 같은 시설까지 찾아오게 되고 마는 것”이라 전했다.

이 소장은 “국가를 비롯해 사회 각 기관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지속적인 인식 개선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길 바란다”며 “뿐만 아니라 출산이 임박한 미혼의 산모들이 어떻게 하면 안전히 아기를 낳고 보호할 수 있는지, 마련돼 있는 지원책과 시설들을 널리 홍보해 알리는 것도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 언제든 미혼모들이 즉각 보호시설과 정책을 떠올리고 스스로와 아기를 지킬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되도록, 갖은 홍보 수단을 동원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장유진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