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리트에 15,690명 실제 응시자수로 사상 최다 응시자 기록
“문과생으로 전공 살려 취업하기 어려워, 로스쿨 진학은 미래를 위한 투자”
치열한 입시 경쟁 이후에도 로스쿨 내 경쟁적 분위기
정형진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로스쿨 자체 개혁 필요”

SKY 문과생들 몰리는 로스쿨, 합격해도 문제?
“일단 변호사 자격증을 따면 미래가 안정적이고 보장되는 느낌이 있잖아요. 벌이도 그렇고, 지위도 그렇고. 불확실한 시대에는 확실하게 담보할 만한 게 있어야 덜 불안해요.”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에 재학 중인 최규진 씨(23)는 1학년 때부터 연합 법학회에 들어갔고, 3학년 땐 법학적성시험 시험(LEET·리트)을 보는 ‘관광 리트’를 시작했다. 방학 중에도 몇 번의 토익 응시 끝에 토익 만점을 최씨의 치열한 삶은 모두 로스쿨 진학을 위한 발판이었다. 최씨는 “문과생으로서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에는 어렵다는 걸 알고 있다”며 “로스쿨 진학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취업 대신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문과생은 최씨만이 아니다. 법학적성시험(LEET·리트) 응시접수자는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된 이후 줄곧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4학년도 리트에는 사상 최다 17,101명이 유효 출원했으며, 이 중 15,690명이 실제 응시했다. 이 역시 역대 최다 인원이다.
법학적성시험 응시접수자 연도별 추이.
법학적성시험 응시접수자 연도별 추이.
전국 로스쿨 입학생 중 인문계열 입학생의 비중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인문계열 입학자는 2020년 18.4%에서 2023년 20.5%로 늘었다. 반면, 2019년 17.7%였던 법학 계열 입학생은 2020년 17.7%에서 2023년 7.3%로, 5년 만에 절반 이상 감소했다. 문과 졸업생들이 이과 졸업생에 비해 취업도 어렵고, 비전 있는 직업이 법조인 외에 찾기 힘든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상위권 문과 대학생들의 높은 로스쿨 선호도
특히 상위권 대학의 문과생들에게 로스쿨 진학은 안전성 담보와 적성 발휘의 측면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로 불리고 있다. “당장 주변 동기와 친구들만 둘러봐도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말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김모(24)씨는 “로스쿨은 엄청난 공부량과 암기량을 소화해야 하기에 이를 감당하는 습관을 학창 시절부터 길렀던 사람들이 고려하기 쉬운 선택지”라고 말했다. 명문 대학을 졸업해도 불안정한 취직, 만족스럽지 않은 급여, 직장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시간을 투자해 보장된 결과를 단번에 얻고 싶다는 판단에서였다.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 송주민(26) 씨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송씨는 “중상위권 대학의 문과생들은 우직하게 공부하고, 주위에서도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로스쿨 진학을 한 번쯤 고려하는 선택지 같다”며 “시험 삼아 리트를 쳤더니 점수가 잘 나와서 바로 로스쿨에 진학하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최씨 역시 “리트 과목 중 ‘언어이해’는 수능 국어 비문학을 어렵게 만든 느낌이기에 크게 낯설지는 않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내신 관리나 수능 시험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소위 ‘문과 엘리트’들에게 리트 입시 준비는 익숙한 길이었다.

로스쿨 입시 성공, 하지만 새로운 경쟁의 시작
치열한 로스쿨 입시 경쟁률을 뚫고 로스쿨에 진학한 후는 어떨까. 입시 경쟁의 ‘승자’가 된 이들은 또 다른 경쟁으로 들어가게 된다. 서울 소재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하모(29)씨는 로스쿨 진학 이후 2년간 불면증과 우울증 때문에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심리 상담을 수십 차례 받았다. 하지만 근본적인 우울감과 불안감은 해결되지 못했다.

하씨는 “로스쿨에 진학한 이후도 끝없는 경쟁이었다”며 “변호사 시장 자체가 커진 경향이 있고, 대부분 더 좋은 로펌을 들어가고 싶어 하니 로스쿨 자체가 폐쇄적이고 경쟁적인 분위기가 심하다”고 털어놨다.

로스쿨 재학생들은 1, 2학년 때부터 사소한 몇 점 차이로 갈리는 성적에 압박감을 느낀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기 위해 동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감, 변호사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감, 학부에서 배우지 않았던 법학 서적을 읽고 모두 암기해야 한다는 강박감 등 로스쿨 재학생들의 심리적 어려움은 치열한 경쟁적 분위기가 일조하고 있다.

상위권 로스쿨 진학을 위해 반수를 준비하는 로스쿨 반수생들 역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종로학원이 대학알리미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로스쿨 중도 탈락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22학년도 중도 탈락자는 총 208명으로 전체 재적학생 가운데 3.1%를 차지했다. 중도 탈락 사유에는 학사경고, 유급 등도 포함되지만 로스쿨의 경우 대부분 자퇴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쿨 중도 탈락자 수와 비율은 2020학년도 151명(2.3%)에서 2021학년도 179명(2.7%), 2022학년도 208명(3.1%)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종로학원은 이러한 중도 이탈자 수치에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로스쿨 혹은 SKY 로스쿨로 가기 위한 반수생들의 움직임이 반영되었다고 해석했다.

'학력·학벌 다양성'의 취지로 도입된 로스쿨 제도가 오히려 경쟁과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정형진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로스쿨 자체 개혁의 해법으로 학부 로스쿨 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정교수는 “학부에 로스쿨을 두면 문과에도 우수 고등힉생들이 올 여지를 둘 수 있고, 나아가 지방 우수 고등학생이 그 지역 학부 로스쿨을 감으로써 서울 수도권으로의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어 지방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로스쿨 제도의 현황과 목표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김윤영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