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방조 의혹 배우 캐스팅, 성범지 피의자 스태프 기용한 연극 ‘두 메데아’에 보이콧
보이콧 참여 서명 700명 넘겨 1월 말 상연 예정 연극 ‘두 메데아’ 취소
16일 대학로X포럼 토론회서 “연극계 관계자들과 공공 극장 모두 성폭력 사건 이후 재발 방지 노력과 책임 부족” 목소리 나와
연극계 미투운동이 벌어진 지 6년이 지났다. 추악한 성폭력 문제가 가시화되면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한 걸음 진보하는 듯 해 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피해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한 공적 노력과 실질적 변화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연극계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연희단거리패 전 대표 출연소식에 연극 ‘두 메데아’ 보이콧1월 말 상연 예정이었던 연극 ‘두 메데아’를 취소시킨 보이콧 운동은 다시 미투 운동에 대한 성찰을 불러왔다. 연극 ‘두 메데아’에 이 씨의 성폭력 범죄를 방조했다는 의혹과 연희단거리패 대표 이력이 있던 배우 김모 씨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발표돼 논란이 일었다. 해당 연극이 서울문화재단 산하 공공극장인 쿼드에서 공연이 상연될 것이라는 사실도 불을 질렀다.
보이콧 운동에 동참한 홍예원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대표는 3월 16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된 대학로X포럼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섰다. 홍 대표는 “‘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은 잘못을 수습하지 않은 채 돌아오려는 얼룩진 예술에 대한 거절이자 미투 운동의 의의를 퇴색시키는 공공 단체에 대한 경종”이라며 “문제 제기를 해도 잘못에 대한 인정, 수습과 반성 없는 대답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건 미투 운동 이전으로 후퇴시킨 일”이라 말했다.
그는 “2018년 연극계 미투 운동으로 많은 성폭력과 착취가 밝혀졌지만 6년간 가해자와 그 집단의 재발 방지나 피해 수습을 위한 노력은 물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가해자와 가담자 복귀 문제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과 미투 이후 바뀐 상식으로 현장 관계자들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동 발제자 김민조 연극 비평가는 “가해자 복귀를 포함한 다양한 윤리적 사안에 대한 판단과 책임 주체가 모호하다”며 “현재 예술지원기관은 윤리적 사안을 다루는 자체적 심의위원회나 그에 준하는 기구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공적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연극계에 대내외적 권력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짚으며 “윤리적 논의를 실행하는 공적 기구는 예술지원기관, 극장, 극단, 공연 프로덕션 등의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예술 관련 공공기관 중 예술인 지원금 공모사업, 공연장 대관 사업 지원 자격 제외 대상에 “관련 수사 및 기소 등이 없었더라도, 성희롱·성폭력이 명확히 드러난 자 또는 단체의 경우 위원회를 통해 지원 여부 결정” 항목을 명시한 곳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단 한 곳이다. 예술인에게 법적 책임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물을 때 예술계 전문가들과 의견을 공유하겠다는 뜻이다.
포럼에 참여한 대학생 김정우(가명) 씨는 “미투 운동 이후 예술 공공기관들이 지원 대상 조건, 협업 계약 조건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 이수와 같은 조항을 넣었지만 명목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며 “연극 사회 전반에서 실질적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꾸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5년 출범 이후 이번 대학로X포럼은 ‘두 메데아’ 보이콧 운동을 계기로 미투 운동 이후 6년이 지난 지금 성폭력과 위계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환경 구축, 공공의 책임과 노력을 성찰하는 취지로 개최됐다.
연극 ‘두 메데아’에 출연할 예정이었던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줄곧 공개적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다. 최근 단원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부산의 한 교육극단 대표가 해당 작품에 그래픽디자이너로 참여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약 700명이 넘는 연극인과 관객들이 보이콧 운동에 동참하자 ‘두 메데아’ 제작사인 극단 서울공장은 결국 공연을 취소했다.
임형택 극단 서울공장 대표 겸 연출은 16일 포럼에서 “‘두 메데아’ 공연이 미투 운동을 흐리려는 것도, 운동에 맞서려는 것도 아니었다”며 “예술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비롯한 윤리적 사안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끈질긴 논의가 마련될 수 있는 장치들이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씨는 공연 취소 후 “저는 성폭력 조력자가 아니며 성폭력 방조와 권력 남용을 통해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라며 6년 만에 공식 입장문을 발표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김윤영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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