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진심,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 선택해야

“차범근부터 시작해서 박지성이 꽃피우고, 손흥민이 만개시킨 한국의 해외 리거 역사, 이 득점의 역사에 이강인 역시도 이름을 남깁니다.”

쿠팡플레이 소속 황덕연 해설위원의 목소리는 축구를 자주 보는 팬이라면 한 번쯤은 분명히 들어봤을 것이다. 중계석에서 전해지는 그의 해설은 단순한 경기 설명을 넘어, 순간순간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짚어주는 날카로운 분석과 생생한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황덕연 해설위원
포즈를 취하고 있는 황덕연 해설위원
그의 가장 큰 특징은 ‘몰입감’. 감정선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해설 톤과 예상치 못한 전개에도 유연하게 반응하는 순발력은 많은 팬들이 ‘황덕연의 해설은 들을 맛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특히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는 능력,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마치 준비라도 했던 것처럼 기억에 남을 멘트를 던지는 센스는 그를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닌 ‘경기 이야기꾼’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런 해설 뒤에는 축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설자로서의 끊임없는 훈련, 그리고 방송이라는 콘텐츠를 다루는 감각이 고루 어우러져 있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리. 황덕연 해설위원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마이크 앞에 섰고, 지금 어떤 고민과 노력으로 한 경기를 준비해 나가고 있는 걸까.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처음 꿈은 전북 현대 프런트였다”
축구 해설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처음부터 해설위원을 꿈꾼 건 아니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축구계 일을 하고 싶었고, K리그 소속 전북 현대 프런트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지도교수님께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좋아하니 방송 일도 고려해 보라’는 말을 듣고 방송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황덕연 해설위원의 모습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황덕연 해설위원의 모습
해설위원이 되는 결정적 계기는 2016년 스페인 어학연수 당시였다. 스포티비에서 해설위원 공개 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고, 그는 최종 합격했다. 일반 회사처럼 면접과 카메라 테스트를 거쳤고,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해설위원 데뷔는 2016년 4월, 부산 아이파크와 경남FC의 경기이다. 해설 데뷔인 만큼, 여러 걱정에 경기 10시간 전 부산에 도착해 근처 카페에서 경기 준비를 했다고 한다. 중계 파트너였던 조진혁 아나운서(現 YTN 앵커) 덕분에 마음을 편히 먹고 무사히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설도 콘텐츠다“
해설위원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시청자의 지루함을 줄이는 것. “축구 경기도 결국 방송이다. 전술 분석도 중요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지루하지 않게 들을 수 있는 해설을 고민하게 된다.”
그는 경기 전 각 팀의 최근 경기를 보며 흐름을 파악하고, 해외 통계·분석 사이트도 참고한다고 한다. 데이터 기반 분석이 중요해진 요즘, 이를 반영해 해설에도 깊이를 더한다. 또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SNS나 현장 정보를 통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전달한다고 덧붙였다.

황덕연 해설위원은 해외 코멘터리를 꾸준히 보며 멘트나 전달 방식에서 배울 점을 찾는다고 한다. “드라마틱한 순간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멘트는 평소에도 고민을 많이 한다.”

“기억에 남는 해설? 이강인 프로 데뷔골 중계”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이강인의 프로 데뷔골 경기이다. “그 골을 내가 중계한다면 기억에 남는 멘트를 꼭 남기고 싶었다. 실제로 그렇게 돼서 기뻤고, 버벅대지 않고 끝까지 멘트를 다 했다는 점에서 다행이었다.”

그 당시 멘트는 이렇다. “차범근부터 시작해서 박지성이 꽃 피우고, 손흥민이 만개시킨 한국의 해외 리거 역사, 이 득점의 역사에 이강인 역시도 이름을 남깁니다.” 이 멘트는 황덕연 해설위원의 인지도 또한 올라가게 했다.
콘텐츠 촬영을 하고 있는 황덕연 해설위원의 모습
콘텐츠 촬영을 하고 있는 황덕연 해설위원의 모습
황덕연 해설위원은 실수한 경험도 있지만, 그때마다 바로 정정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애매하게 넘어가는 게 가장 위험하다. 틀린 건 틀렸다고 말하는 게 더 낫다.”
“좋아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을 찾아라”
그는 해설위원이 ‘직업’이 아닌 ‘직함’에 가깝다고 말한다. “4대 보험이 있는 정규직도 아니다. 해설위원만 목표로 하기보다는 축구계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비슷하다.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는 건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객관화하고, 그걸 발전시켜 가는 게 더 현실적이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해설위원이 되겠다는 야망보다는, 오랫동안 꾸준히 활동하는 게 그의 목표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황덕연 해설위원은 해설이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시청자와 함께 경기를 ‘경험’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확한 분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보는 이들이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고의 해설위원이 되겠다는 욕심보다는, 오래도록 자신만의 색깔을 지닌 해설위원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아, 그 사람 해설 괜찮던데?’라는 기억 하나로 충분하다고 웃으며 덧붙인 말 속엔 축구에 대한 진심과 해설자로서 자부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또한 그는 해설위원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무작정 해설만 바라보기보다, 축구계 전반에 대한 이해와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되, 자신이 잘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안에서 기회를 만드는 것. 황덕연 해설위원의 커리어는 진로를 고민하는 많은 청년에게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방향성을 제시해줬다.
앞으로도 황덕연 해설위원의 목소리는 수많은 경기의 순간을 함께할 것이다. 긴장감과 감정이 살아 있는 해설, 그리고 팬들의 시선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중계로 그는 오늘도 마이크 앞에 선다.

이진호 기자/김준환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