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경머니 베터골프 = EDITOR 이관우 ] 초보골퍼 ‘골린이’ 친구에게 전하는 당부의 편지.
[ INSIGHT ] 골프가 처음인 벗에게
놀랍고도 반가웠네. 20년 만에 자네를 클럽하우스 사우나에서 조우하게 될 줄이야. 벗겨진 머리, 불룩 나온 배, 막 처지기 시작한 팔자 주름이 안쓰럽긴 해도 늘 멋진 웃음을 짓던 자네의 사람 좋은 인상은 여전하더군. “골프가 스포츠냐?”며 코웃음 치던 자네가 이제 골프를 숭상한다니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없네 그려. 그러잖아도 요즘 초보 골퍼, ‘골린이’가 부쩍 늘었다던데 자네가 그 중 한 명일 줄이야 누가 알
았겠는가. 이유가 무엇이든 두 팔 벌려 환영하네. 하마터면 인생의 절반만 맛보고 살 뻔했으니, 어찌 축복이 아니겠는가.

기실, 걱정이 앞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라네. 뭇사람들은 골프를 ‘녹색 아편’이라거나, ‘요사스러운 늪’이라고 부르며 경계하곤 해서 그렇다네. 고통은 물론 편견도 피할 수 없다는 얘기. 훅 귀신, 슬라이스 악귀, 생크 망령 같은 온갖 잡령들이 자넬 두고두고 괴롭힐 걸세. 때로는 ‘얼리어답터’라고 불리는 ‘지름신’이 강령해 자네의 얇디얇은 지갑을 털어갈 수도 있을 터. 자넨 “왜 이러지, 또 그러네, 이상하네!” 같은 골퍼 전용 사자성어를 샷마다 외쳐야 할 수도 있을 걸세. 아, 웃자고한 얘기니 마음에 담진 말게나. 하나 새겨둘 게 있네. 골프는 미스터리한 놀이의 궁극이라는 걸. 지배하기 전에 지배당하기 십상인,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무엇의 무엇이라는 걸 말일세.

해법을 찾는 길 역시 ‘구도의 길’에 비견되곤 한다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은 맞는 말이네만, 잘못된 길에 들어선 거라면 헛수고 일 수 있다는 걸 명심하게나. 어쩌면 실타래처럼 뒤얽힌 길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어떤 이는 힘 빼라 하고, 어떤 이는 힘 써야 한다고 하고….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다 종국엔 ‘골프 지신’에게 늑골 몇 대를 공양해야 할 수도 있을 걸세. 그러고 보니, 이미 자네에게서 그런 조짐이 느껴지더군. “6개월 안에 싱글을 하겠다. 300야드는금세 따라잡을 것”이라 큰소리치며 화통하게 웃는 걸 보면 말일세. 하여, 그만두려거든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부터 알아뒀으면 하네. 물론 아직 실망하는 건 이른 일. 행복한 몰입, 즐거운 덕후가 되는통과의례일 가능성이 높아서라네. 왜 ‘노 페인 노 게인(No Pain NoGain)’이라는 말이 있질 않은가.

본립도생(本立道生)일세. 고통이 환희로 뒤바뀌는 시작은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 골프의 원리부터 이해하길 권하고 싶네. 허약한 기본에서 스윙 바꾸고 장비를 바꾸며, 사사하는 스승을 끝없이 바꾸는 건 자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게나. ‘골프는 수동태’라는 말의 의미를. 스윙은 만드는게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 흘러가게 놔둬야 그 결과물이 온전히 자네의 것이라는 얘기를. 지배하지 않아야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골프의참 역설이 아닌가 하네.

대개의 문제는 ‘주인과 객(客)’을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도 새겨두게나. 주인이 일을 해야 하는데, 객이 덤비는 격. 몸통이 해야 할일을 팔이 가로채는 따위를 그런 오류의 으뜸으로 친다네. 골프에선위계질서가 법일세.

덧붙이자면 모든 건 ‘인과응보’일세.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내 탓’을 하게. 많은 이들이 뒤 팀, 앞 팀, 캐디, 장비 탓으로 화풀이를 하다가 급기야 동반자에게 눈을 부라리며 ‘네 탓’ 운운하는 막장 골프가 허다하
니 하는 말이네. 책임을 떠미는 대신 레슨에 투자하게나. 투자 없이, 학업 없이 타수를 줄이겠다는 건 ‘연목구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예전의 자네 말대로 골프는 스포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네. 어쩌면 발레 같은 춤사위, 명상 같은 심연, 예술의 한 갈래가 아닐까. 어쩌면 끝내 답을 구하지 못할 초월의 경지, 그 무엇은 아닐까…. 그 무엇이든 자넨 골프를 하는 이유만 바라보시게나. ‘나를 즐겁게 하는 골프’가 하지하책이라면 ‘남을 즐겁게 하는 골프’가 상책, ‘모두를 즐겁게 하는 골프’가 상지상책임을.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어 오래가는 골프가 으뜸이 아닐까 하네. 건강을 잃으면 세상을 잃듯. 그러니, 부디 천천히 가시게나. 횡성수설을 읽느라 혼났네 그려. 다 반가운 자네를 위한 기우려니, 너그러이 혜량해주길.

PS 동반자의 샷을 꼼꼼히 살펴주는 기본 예의범절을 요즘 초보 골퍼들은 아예 잊은 듯하네. ‘감시’가 아닌 ‘매너’인 것을. 그러니 꼭 해보시길 권하네. 슬그머니 알까기를 하고, 슬금슬금 스코어를 건드리는
사파 무리들을 가려내는 예상치 못한 소득이 짭짤할 걸세. 물론, 그들과는 비즈니스든 무엇이든 상종하지 않는 게 상지상책. 내년 봄, 자네의 환골탈태를 기원하면서….

From. 20년째 유망주인 벗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