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가드닝 스케줄_5월 이야기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시련과 좌절을 이겨낸 사람의 의지는 대단하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자연이 품은 모든 위험요소를 감내하고 자라나는 식물의 강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집 할머니 얼굴이 떠오르며 “내 뭐래 드래. 아직은 아니래잖니”라는 말이 쟁쟁하게 들리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날씨가 영하로 느닷없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요즘 일기예보가 얼마나 정확한데. 강의를 하면서는 반드시 식물을 심기 전 앞뒤 일주일의 날씨를 체크하라고 그렇게 강조해 놓고 정작 내가 앞뒤 생각도 없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셈이었다. 식물들이 안쓰러워 못 볼 노릇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 강인한 식물 만든다
그렇게 부글거리며 우스운 날을 며칠 보냈다. 그런데 이게 이야기의 끝이 아니었다. 허브들은 죄다 동사를 했는데 며칠 후 신기한 광경을 보게 됐다. 얼어 죽은 줄 알았던 식물들 속에서 기어이 살아남은 잎들이 다시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때 그 허브들이 지금도 마당에서 자란다. 그런데 이 허브들은 뒤늦게 다시 심은 허브들에 비해 신기하게도 죽음의 문턱을 갔다 와서인지 아주 씩씩하다. 잎은 온실에서 키워 나온 것보다 두 배쯤은 두툼해졌고, 품고 있는 향기도 더욱 진하다.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이 식물을 더 강인하게 만들어 놓은 셈이다.

한여름 꽃을 피우는 추위에 약한 달리아, 칸나, 백합 등도 맘껏 밖에 내다 심을 수 있으니 서둘어야 한다. 이미 싹을 틔운 다년생 초본식물인 붓꽃, 애기 범부채, 원추리, 꿩의 비름 등이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작할 때다. 그런데 이미 서너 해 동안 한 자리에서 꽃을 피운 이런 초본 식물들에게 늙음 현상이 찾아온다. 가운데는 늙어져 비어 가고 그 주변으로 새 뿌리가 번져 가는 증상인데 이때는 뿌리 부분을 완전히 캐내 죽은 뿌리는 제거하고 나머지 뿌리를 뭉쳐서 한 아름 예쁘게 다시 심어준다. 흔히 이 과정을 ‘뿌리 나누기’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식물에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종자 회사들이 식물에 유전변형처리(genetic mortified)를 해 놓아 알뿌리를 잘 보관해 두어도 다음 해 잎만 나올 뿐 꽃을 다시 피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알뿌리를 사야 하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만약 이런 유전변형처리가 있기 전, 우리 집 마당에 심어 놓았던 매년 피고 지는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크로커스가 있다면 좋은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어보자.
식탁을 채워주는 텃밭정원의 매력
5월은 먹을거리를 제공해주는 텃밭정원의 매력이 더 커진다. 추위 탓에 심지 못했던 고추, 가지, 토마토를 심을 수 있는데 이런 식물들은 반드시 지지대가 필요하다. 식물들은 키가 커지면 휘청거리고, 이걸 막기 위해 줄기를 튼튼하게 살찌우는 데 에너지를 쓴다. 이 덕분에 열매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지대 설치가 필수적이다. 중요한 것은 지지대도 정원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하는 점이다. 기성품 지지대를 꽂는 것도 좋지만 대나무나 혹은 나뭇가지 등을 이용해 좀 더 예쁘게 꽂아주면 식물과 함께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된다.

정원이 없다고 아쉬워 할 일도 아니다. 야자나무, 고무나무, 칼라데아, 아이비, 펠라고니움, 고사리과의 식물들은 실내에서도 얼마든지 잘 자라준다. 단 화분 속에 자라는 식물은 늘 영양분 부족 현상을 겪는다. 이걸 해결해주기 위해 3, 4년에 한 번씩은 화분의 크기를 한 단계 큰 것으로 바꿔주고, 새로운 원예 상토로 흙도 바꿔주는 것이 좋다. 이때 갑자기 바뀐 흙에 적응을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원래 썼던 원예 상토 제작 회사를 기억해 같은 것을 써주는 것이 안전하다.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는…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정원 문화를 꿈꾸며 정원 관련 전문 글쓰기와 정원 설계를 함께 하고 있다. ‘오 가든스(Oh Gardens)’의 대표이며, 현재 속초에서 디자인 스튜디오와 1박2일 정원학교를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정원의 발견’,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영국 정원 산책’, ‘소박한 정원’, ‘가든 디자인의 발견’ 등이 있다.
글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작가 | 사진 임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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