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증여는 자산관리 분야에서 가장 경제적인 상속 준비 수단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현실적으로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생전증여는 최근 유류분 등 다른 이유로도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가족관계에 있어서는 생전증여가 딜레마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어 조세법적 측면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이 요구된다.
[MONEY & LAW] 아들 대신 손주에게 생전증여 하는 이유
상속세와 증여세는 세율(10~50%)이 동일하지만, 가치가 변동되는 재산(부동산, 주식 등)을 전제로 하면 증여세는 분명 부의 이전에 따른 세금을 절약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 이유는 상속 시점(피상속인의 사망)은 임의로 정할 수 없지만, 증여는 임의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고도의 성장기를 겪던 과거에는 조금이라도 일찍 생전증여를 하는 것이 세금 면에서 유리했다. 그러나 고도의 성장기가 사실상 끝난 현재와 같은 경제 환경에서는 증여가 이루어지는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당시와 같이 자산 가치가 폭락할 때 증여가 많이 이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산 가치가 하락할 때에 증여를 하게 되면, 증여세는 하락한 가치를 기준으로 계산돼 그 증여세 역시 적게 산출되기 때문이다.

실제, 모 기업 창업자는 외환위기 당시 경영권과 관련한 주식을 후계자인 아들에게 전격적으로 증여했고, 후계자는 폭락한 주가를 기준으로 주식 가치를 산정해 증여세를 납부했다. 이후 창업자가 사망해 상속이 이루어질 당시에는 해당 주가가 증여 당시에 비해 10배 가까이 올랐다. 이 사례에서 생전증여가 없었을 경우를 가정하면, 후계자인 아들은 상속이 이루어질 당시의 주가를 기준으로 증여세 대비 10배 이상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창업자는 생전증여를 통해 상속 대비 10분의 1 이하의 증여세만을 납부하고 후계자에게 기업을 물려준 셈이다. 더구나 경영권 관련 주식의 경우 상속세 산출 목적상 최대 30%까지 할증 평가가 이루어지고,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물납은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결과적으로 이와 같은 생전증여 대책이 없었다면 후계자는 사실상 50% 이상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됐을 것이므로 이는 상당히 성공적인 승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막대한 재산 생전증여, 유류분제도 피할 수 있어
생전증여는 사실상 유류분을 회피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돌아가신 분)의 뜻에 상관없이 상속인에게 일정한 상속권(배우자와 자녀의 경우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을 보장해주는 제도로 1977년 도입돼 197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우리 민법상 오래된 제도다. 생전증여는 이러한 유류분 제도에 있어 원칙적으로 유류분 반환 대상에 포함된다. 특이한 점은 상속인에 대한 생전증여가 그 증여 시기에 상관없이 유류분 반환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반면 상속인을 제외한 자에 대한 생전증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속 개시 전 1년 내에 행해진 증여만 유류분 반환 대상에 포함된다.

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자, 손녀에 대한 증여가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손자,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관계에 있어 상속인이 아니다. 유류분이 문제되는 사안에 있어 손자, 손녀에 대한 생전증여는 유류분권으로 인한 분쟁을 불가능하게 하는 나름의 대안이 되는 것이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법적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관계에 있어 상속인은 그 아들과 딸이고, 손자와 손녀는 그 아들과 딸이 생존해 있는 한 상속인이 아닌 자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손자, 손녀에 대한 생전증여 재산은 유류분 분쟁 상황하에서 보호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손자와 손녀에 대한 생전증여는 세대를 생략한 증여로 30% 할증된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경제적으로 이러한 생전증여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증여 재산의 가치가 하락할 경우를 가정하면, 생전증여는 쓸데없이 막대한 세금을 미리 납부한 결과가 되므로 경제적인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또 자녀에 대한 막대한 재산의 생전증여가 자녀를 망친다는 전통적인 사고도 실질적으로 고려돼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게 경험하고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생전증여가 자녀와 부모 사이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문제가 되고 있다. 생전증여가 이루어지고 나면 그 재산은 더 이상 부모의 것이 아닌 게 되고, 재산을 증여받은 자녀는 더 이상 부모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가 없어져 극단적으로 부모를 무시하고 버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세금 등의 측면에서 생전증여가 갖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생전증여를 두려워하는 실질적인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자녀에게 증여를 하되 생전에는 부모가 그 재산에 대한 수익을 향유하는 유언대용신탁, 일정한 조건 성취 시 부모가 자녀에 대한 생전증여를 취소할 수 있는 조건부증여 등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실제 그런 유사한 조건부증여가 이루어진 사례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들은 조세상의 문제점, 정확히 말하면 불확실성을 안고 있어 문제다. 단적으로 자녀에 대한 증여를 취소하고 부모가 해당 재산을 재취득하게 되면 이러한 재취득이 국내 조세법 체계상 새로운 증여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그에 대한 명확한 과세 체계가 사실상 없다고 보아야 하고, 그로 인한 불확실성이 문제다. 사회적 현실을 고려한 세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다.


증여세 납부의무, 거주 여부 주의해야
마지막으로 증여자 또는 증여를 받는 자(수증자)가 한국 거주자가 아닌 경우, 즉 비거주자인 경우 증여세 등의 납부의무에 대해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거주자’란 한국에 주소를 두거나 1년 이상 거소를 둔 사람, ‘비거주자’는 거주자가 아닌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국적과 다른 개념으로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도 유학을 가 미국 등에서 영주권 등을 취득해 정착한 자녀라면 한국 세법상 비거주자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이러한 비거주자에 대한 국외 재산의 증여가 많이 이루어지던 때가 있었다. 비거주자에 대한 국외 재산의 증여에 대해 증여세가 과세되지 않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꾸준한 관련 세법의 개정으로 국외 예금 등은 국내 재산과 사실상 동일하게 취급되고, 부모가 한국 거주자인 경우에는 그 자녀가 비거주자라 할지라도 국외 소재 재산의 증여에 대해 ‘증여자인 부모’가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향후 시행될 예정인 과세당국 간의 적극적인 조세정보 교환제도(FATCA, CRS 등)로 인해, 한국 거주자와 관련된 국외 재산의 노출 가능성이 높아져 가고 있음을 감안하면, 신경 쓰고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김현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