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삼성증권 SNI사업부 상무

한경 머니의 ‘2015 대한민국 베스트 PB센터’ 설문조사에서 증권부문 1위에 오른 삼성증권은 SNI(Samsung & Investment)라는 브랜드를 2010년에 론칭해 증권업계에 자산관리 서비스의 새 표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 같은 선도적인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 뒤에는 삼성 금융계열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SNI 조직을 단단하게 이끌고 있는 이재경(48) 상무가 있었다.
[MARKET LEADER] “SNI 이름만 듣고 찾아오도록 자산관리 최고 명가 만들 거예요”
“우리나라도 손정의와 같은 사람이 나와야 되잖아요.” 삼성증권 SNI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이재경 상무의 지향점은 분명했다. 국내에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같은 투자가를 자연스럽게 배출할 수 있도록 금융사의 자산관리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손정의가 누구던가. 일본 최대 소프트웨어 유통 회사이자 정보기술(IT) 투자 기업인 소프트뱅크를 설립한 인터넷 재벌로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의해 2012년 일본의 세 번째 갑부(당시 그룹 자산 규모 69억 달러)로 꼽힌 인물이 아닌가. 사실 손정의는 기업가이지만 투자가로 더 유명하다. 야후를 비롯해 세계 600여 유망 인터넷 기업의 주식 5%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 알리바바에 6000만 달러(약 720억 원)를 투자하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 아이폰에 투자해 성공 신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국내에도 초고액자산가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에게 적절한 투자 전략으로 자산을 불려줄 수 있는 금융사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게 이 상무의 지적이다. 프라이빗뱅커(PB) 32명이 10조 원을 관리하며 PB 1인당 자산 규모가 3000억 원에 이르는 SNI. 이 상무는 앞으로 PB 1인당 관리 고객 수를 줄이고 자산관리 규모는 더 늘려 질 높은 자산관리 서비스를 구현해내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궁극적으로는 SNI가 아니면 도저히 받아볼 수 없는 서비스, SNI가 아니면 가입이 불가능한 상품들을 선보이며 고객들이 SNI라는 이름만 보고도 믿고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이처럼 한없이 단단해 보이는 그에게도 숨길 수 없는 후회는 있었다. 이제 성년으로 훌쩍 커버린 딸에 대한 미안함이다. 금융권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임원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그지만 딸과 조카의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말에 상처도 받았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그가 준비한 반전 카드는 생뚱스럽게도 퇴직 이후 한식 요리를 배우는 거란다. 은퇴 이후 제대로 딸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음식 솜씨의 업그레이드라는데 그의 미래 계획은 마음 한 구석에 미안함으로 남아 있는 가족에게 향해 있었다.


삼성증권은 선도적으로 PB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고객 서비스에 대한 지향점이 뭔가요.
“제가 은행에 있을 당시 금리가 6~7% 정도 됐는데도 불구하고 펀드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 정도 돈이 있으면 확정금리만 받아도 되지 않나 싶은데도 말이죠. 당시 창구에서 고객들의 투자 철학을 심도 있게 고민하고 이해했다기보다는 회사에서 골라준 논리를 가지고 고객들에게 상품을 추천했던 것 같아요. 이후 대우사태가 났고 9·11테러가 터졌죠. 고객들이 10~20%씩 손실이 나는 것을 보면서 자산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리스크 관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사실 헤지 전략이 같이 있어야 하는데 은행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증권사로 옮긴 계기가 됐죠. 증권사에서는 선물 매도도 가능했고 옵션거래도 있고 다양하니까요. 우리가 시장에서 투자하는 상품은 전체 상품 중 10~20%일 텐데 사실 70~80% 투자 시장은 아직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경험도 못 하고 있는 게 많거든요. 이런 시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국내에 들여와서 고액자산가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손정의 같은 사람이 나와야 되잖아요. 손 회장이 라인을 증설하고 제품을 팔아서 수조 원대 부자가 된 게 아니잖아요. (웃음) 우리나라에도 고액자산가들은 많은데 그들에게 충분한 투자 기회를 주지 못했다는 생각을 해요. 삼성증권 같은 큰 금융기관에서 다양한 투자를 소개하고 첨병 역할을 해야 하는데 충분히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책임감도 느끼고 있어요.”


삼성증권 SNI사업부만의 차별화된 장점을 꼽는다면요.
“저희는 30억 원 이상 고액자산가가 주 고객인데 30억 원 이상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저희들에게 맡긴 평균 예탁금이 100억 원 이상 되는 분들이에요. SNI의 가장 큰 특징은 세미나를 하든 고객 행사를 하든 ‘이런 네트워크가 없다’는 말들을 한다는 거예요. SNI만큼 고객의 퀄리티가 정제돼 있고 네트워크로서 의미가 있는 곳이 없다고 보시는 거죠. 대부분 기업체 오너이고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니까 투자할 만한 회사를 찾아낼 수도 있고 비상장기업이면 상장을 통해서 기업공개(IPO) 기회도 생기죠. 또 저희 투자은행(IB)과 연계가 되거나 비상장기업을 상장시키면서 오너들의 재산이 다시 저희 쪽으로 예탁되기도 하죠. 이게 바로 SNI의 제1호 자산인 것 같아요. SNI 조직의 또 다른 강점은 증권사이지만 PB 32명 중 절반이 비증권사 출신이라는 거예요. 은행이나 보험사 출신도 많죠. ‘각 섹터에서 최고다’라는 사람들을 스카우트해 전열을 정비해서 그런지 몰라도 다양한 시각을 지닌 직원들의 사고나 전략을 접할 수 있고 그게 사업부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은행 출신의 장점은 고객 관리가 정말 세밀하다는 것이고, 증권사 출신은 물론 본연의 투자 업무에 강점이 있죠. 예를 들어 은행에서 온 직원들은 고객 선물을 택배로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보통 명절 전에 선물을 맞춰 백화점에서 고객들에게 직접 배송토록 하는데 은행 출신 직원들은 고객들의 선물을 머릿속으로 다 생각해서 일주일이나 열흘 전부터 직접 들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런 모습을 증권사 출신 직원들이 보면서 많이 배워요. 그래서 SNI의 S를 삼성(Samsung), 스페셜(Special)의 약자로 쓰는데 저희들끼리는 S를 시너지(Synergy)라고 부르기도 해요.”
이재경 상무는 삼성의 금융 계열 첫 여성 임원이다. PB사관학교로 불리는 한국씨티은행을 거쳐 삼성증권에 입사해 2005년 첫 여성 지점장에 올랐다. 투자 컨설팅 팀장, UHNW(초고액자산가) 사업부장 등을 역임한 뒤 현재는 10조 원이 넘는 자산을 관리하는 SNI사업부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이재경 상무는 삼성의 금융 계열 첫 여성 임원이다. PB사관학교로 불리는 한국씨티은행을 거쳐 삼성증권에 입사해 2005년 첫 여성 지점장에 올랐다. 투자 컨설팅 팀장, UHNW(초고액자산가) 사업부장 등을 역임한 뒤 현재는 10조 원이 넘는 자산을 관리하는 SNI사업부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SNI사업부는 다양한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나요.
“사실 이 사업부가 30억 원 자산가들을 타깃으로 출범한 게 2년 전이거든요. 하지만 고객에게 딱 맞는 서비스나 상품이 완전히 차별화돼 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거든요. 지금도 저희가 보기에는 80% 정도는 일반 지점과 같이 가는 부분이 있어요. 상품이나 서비스도 완전히 차별화돼 SNI가 아니면 도저히 받아볼 수 없는 서비스, SNI가 아니면 가입이 불가능한 상품, 이런 게 적어도 50% 이상 되도록 할 생각이에요. 또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1인당 관리 고객 수예요. 현재 주 고객 기준으로 PB당 관리 고객 수가 50명이 넘어가지 않아요. 물론 아버지가 거래하면서 아내와 자제들 것을 거래하기도 하지만요. 주 고객을 기준으로 해서 제일 많아야 50명 수준이고 대부분 그보다 훨씬 적은데 저희가 10조 원을 관리하고 있거든요. 32명의 PB가 10조 원을 관리하니까 1인당 자산 규모는 3000억 원이에요. 저는 관리 고객 수를 더 낮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낮추려면 당연히 1인당 관리 고객의 자산 규모가 올라가야 하겠죠. 이러기 위해서는 고객들이 저희들의 서비스에 만족하면서 본인이 거래하던 금융기관을 줄이게 하거나 궁극적으로는 저희에게 모든 것을 믿고 일임하도록 해야 해요.”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볼게요. 상무님은 비서학을 전공했는데 금융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뒷이야기가 있지 않나요.
“처음에는 비서로 출발했어요. 나중에 보니 비서 업무 중 일부를 프로그램으로 대치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사실 당시 월급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외국계 기업의 비서, 특히 오너의 비서는 전무 대우를 받아 월급도 상당하고 각종 지원도 후할 때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할은 갈수록 부가가치 창출이 쉽지 않겠구나 싶어서 전직을 해 간 곳이 인텔이라는 반도체 회사였어요. 거기서 승진에 대한 니즈가 생겼죠. 왜냐하면 계속 여사원이었거든요. 그래서 여성들에게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는 회사가 어디인지 찾아봤더니 외국계 금융기관이었고 그곳이 바로 한국씨티은행이었어요. 1980~1990년대 여자로서 승진한다는 게 쉽지 않은 시기였는데 한국씨티은행에는 여성 지점장이 있을 때였죠. 그곳에서 바닥부터 배웠고 그다음에 제대로 된 자산관리를 할 수 있는 곳이 어딘가 고민하다가 증권사로 오게 된 거예요. 제 장점 중에 하나가 좀 빨리 느끼는 거예요.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면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고 빨리 실행에 옮겨요.”


증권업계에 흔치 않은 여성 임원의 자리에 올랐는데 책임감도 상당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느끼는 것 중에 제일 부담스러운 것이 책임감 같아요. 다른 것보다 책임감 때문에 본인만을 위한 결정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죠. 내일이라도 당장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한편으로 제가 최초의 여성 지점장인데 저의 이런 즉흥적인 행동 때문에 나중에 여성 임원을 선발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고민했어요. 그런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너무 커요. 하지만 오히려 감사하죠. 그런 게 없었으면 정말 즉흥적인 행동, 감정적 행동을 할 일이 많았는데 그런 걸 자제시켜준 게 책임감이니까.”


상무님의 이름이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던데요.
“(웃음) 작년에 삼성그룹 여성 임원으로서 여자 대학생, 사회초년생을 모아 만남의 시간을 가졌어요. 사회초년생의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이란 이런 거라는 것을 말해주었죠. 그렇게 많지 않은 100~200명 정도 규모였어요. 그런데 대학생이고 젊은이들이다 보니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페이스북을 많이 쓰잖아요. 이전에 2000명 넘게 모아 놓고 자산관리 세미나를 수없이 했었는데 파급효과는 이때가 더 컸던 것 같아요. SNS를 주로 쓰는 친구들이라 제가 조인스 인물 검색어 2등까지 올라갔거든요. 사람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무슨 일 있었냐고. (웃음)”


당시 젊은 여성들은 어떤 것을 주로 궁금해하던가요.
“본인이 금융으로 진로를 잡는 게 적정한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어요. 사회초년생들은 이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 제 경험을 빌려 이야기를 많이 해줬죠. 저도 (은행에서) 창구 텔러를 했었어요. 그때 되게 못하는 골칫거리 텔러였어요. 제가 텔러를 할 때 지점장이었던 분은 저를 지금 만나면 지금 제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하세요. 자기가 봐온 저는 어리숙하고 실수 연발인 데다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직원이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강연 때 이야기한 것이 본인이 정말 잘하는 걸 모르고 헤매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10년을 헤맬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5~6년 헤매고 빨리 찾아내기도 하고, 찾아보지도 않고 매번 좌절하기만 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MARKET LEADER] “SNI 이름만 듣고 찾아오도록 자산관리 최고 명가 만들 거예요”
대학생 딸이 성공한 엄마를 롤 모델로 삼았을 듯싶어요.
“(큰 웃음)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 특히, 딸과 조카는 제가 롤 모델이 아니에요. 딸은 지금 영국에 있는데 내년에 졸업해요. 전공은 생화학인데 제약 회사에 취직할지 공부를 더 할지 본인이 선택하겠죠. 또 조카는 컴퓨터공학 쪽인데 그 과를 졸업하면 삼성SDS 쪽에 취직을 많이 했었대요. 그런데 3학년 때 덜컥 휴학을 하더니 편입을 해서 현재 간호사로 대학병원에 취직을 했죠. 그때 조카가 저한테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나는 이모가 롤 모델이 아니다’라고. 자기는 회사원의 생활보다 전문직을 가지고 자기의 시간 관리를 자기가 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딸도 저와 같은 쪽을 원하지 않아요. 저희 세대만 해도 치열한 경쟁을 펼쳤고, 사실 여자가 임원까지 오르려면 얼마나 독하게 살았겠어요. 제 생활이라는 게 없잖아요. 제 개인사, 가족도 없고 저도 없고. 오로지 회사생활만 한 거잖아요. 그런 것을 주변에서 봐 온 사람들은 자기는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의 성공이 부럽지 않다고 해요.”


그러한 반응에 상당히 섭섭하셨겠는데요.
“충격적이었어요. 당연히 롤 모델이 저인 줄 알았는데. (허탈한 웃음) 하지만 최근에는 이해하게 됐어요. 사람마다 결국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사실 우리 때는 브레이크 자체가 없죠. 저는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정말 할 말이 없는데, 기여한 게 없거든요. 아이도 중학교 때 영국에 보냈는데 처음 보낼 때 말고는 제가 영국에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지금 대학생이 될 때까지요. 왜냐하면 영국을 가려면 4일 이상이 필요한데 제가 4일 이상 회사를 비울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제 세대같이 사는 게 이제도 통하느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몸으로 때워서 잠을 안 자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시대는 아닌 거죠.”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SNI 모델을 만든 지가 2년밖에 안 됐는데 이걸 제대로 안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손정의 회장 같은 투자가가 나올 수 있도록 금융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솔루션에 도전해보고도 싶어요. 궁극적으로 SNI 지점 조직이 막 늘어나기보다 차별화를 확실하게 이뤄내서 고객들이 SNI라는 브랜드를 쫓아오도록 하고 싶어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향후에 언젠가는 퇴직할 건데 그러고 나면 그때는 제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어요. 남자들은 퇴직하면 그걸 상처로 받아들이고 자존심 상해하고 가족에게 안 알리고 한다는데 저는 그렇게 되면 너무 고마울 것 같아요. 한식 요리를 배워보고 싶어요. 예전부터 그 생각을 했어요. 단순하게 딸아이에게 정말 해준 게 없는데 은퇴 후 제대로 딸 뒷바라지를 해줘야지라고. 그러려면 엄마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이 음식 솜씨잖아요. 그렇게 요리를 배우며 10년을 보내도 70세 정도일 텐데 요새는 보통 80세까지는 건강하게 살잖아요. 요리 배운 걸 즐길 수 있는 시간이 10년은 넘게 남았다는 건데 얼마나 좋아요.”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