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playing card): 운과 기술의 놀이

연전에 문화예술계에서 세잔(Paul Ce、zanne)의 그림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다. 그 연작 중 하나가 그때까지 판매된 모든 미술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한화로 3000억 원에 육박하는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카드놀이’라는 테마는 미술작품에서 어떻게 다뤄져 왔을까? 세잔의 ‘카드놀이’가 주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인가?
15세기 네덜란드 남부에서 사용한 게임카드, 1470~1485년경, 메트로폴리탄미술관
15세기 네덜란드 남부에서 사용한 게임카드, 1470~1485년경,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카드놀이는 혼자서든 여럿이서든 어디서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간편한 오락이다. 카드를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 점을 칠 수 있고 카드 쌓기 놀이를 할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흥미진진한 놀이는 두 사람 이상이 참여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카드게임일 것이다.

카드게임의 승패는 거의 운과 기술에 달려 있다. 일단 패가 잘 들어와야 하고 다음엔 주어진 카드를 가지고 계산을 잘 해야 한다. 통계나 확률 같은 수학적 계산만이 아니라 상대를 파악하고 요리할 수 있는 심리적 계산도 필요하다. 또한 결정적 지점에 대한 판단력과 담대함, 결단성도 반드시 갖춰야 한다. 흔히 카드게임은 내기나 도박으로 이어지며 속임수, 사기, 폭력 같은 위험을 수반하기도 한다.

서양에서 카드놀이는 본래 귀족이 즐기던 여흥거리였지만, 14세기 말부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대중오락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카드게임이 성행하자 도박꾼이나 사기꾼이 판치게 됐고, 16세기 말에는 순수미술에서도 이 문제를 다룬 정식 회화가 등장했다.

이탈리아의 카라바조(Caravaggio)가 그린 ‘카드 사기꾼들’은 카드게임을 주제로 한 회화들의 선례가 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카드게임을 하는 두 젊은이와 그 사이에 있는 중년 남자가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다. 왼쪽의 순진해 보이는 젊은이는 자신의 카드를 열심히 들여다보느라고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반면 중년 남자는 젊은이의 어깨 너머로 카드를 슬쩍 엿보며 공범자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그가 낀 장갑은 손가락 끝이 뚫려 있어 그가 카드를 노련하게 다루는 도박꾼임을 짐작케 한다. 공범자는 허리띠 뒤에 다른 카드를 숨겨놓아 언제든 속임수를 쓸 준비가 돼 있다. 그는 적극적으로 몸을 기울여 기회를 엿보며 지금 막 카드 한 장을 바꿔치기 할 참이다. 그의 옆구리에는 단도가 채워져 있는데 중년 남자의 왼손이 그 근처에 놓여 있어 여차하면 이들이 폭력을 행사할 것임을 암시한다. 카라바조는 세 인물의 단순한 구성 속에 첨예하게 긴장된 순간을 표현했다. 인물의 동작과 시선의 얽힘만으로 각자의 심리를 드러내며 극적인 효과를 거뒀다. 그는 하층민의 거친 생활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인물들의 제스처, 고급 의상, 깃털모자 등 귀족적 우아함을 결합했다. 그는 이러한 우아함 속에 감춰진 무지, 탐욕, 사기, 폭력 같은 인간 내면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폭로한다.


경계심 혹은 놀이를 통한 엄숙한 질문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의 라 투르(Georges de La Tour)는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속임수’를 그렸다. 그는 카드놀이판에 두 남자와 두 여자를 그려 넣어 경계해야 할 도덕적 규범들을 더 추가했다. 그림의 맨 오른쪽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이가 자기 카드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의 옆, 화면 중앙에는 한 여인이 앉아 범상치 않게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 그녀가 입은 세련되고 우아한 옷은 목이 깊게 파여 어딘가 유혹의 냄새를 풍긴다. 아마도 부유한 젊은이는 이 여자에게 끌려 노름판에 들어왔을 것이다. 화면 맨 왼쪽에 앉은 남자는 다이아몬드 카드 패를 들고 등 뒤 허리띠에 감춰둔 에이스 카드를 몰래 꺼내고 있다. 그의 얼굴은 그늘 속에 가려져 부정을 저지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 뒤에서는 하녀가 술병을 들고 서서 잔을 권하고 있는데, 술 또한 이성을 흐리게 하는 유혹물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속임수’, 1635년경, 루브르미술관▲▶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4~1895년, 오르세미술관▶카라바조, ‘카드 사기꾼들’ 1595년경, 킴벨 아트 뮤지엄
▲조르주 드 라 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속임수’, 1635년경, 루브르미술관▲▶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1894~1895년, 오르세미술관▶카라바조, ‘카드 사기꾼들’ 1595년경, 킴벨 아트 뮤지엄
오른쪽의 젊은이만 빼고 나머지 세 사람은 모두 곁눈질을 통해 이 노름판의 속임수를 꿰고 있음을 알려준다. 젊은이는 곧 사기꾼들에게 가진 돈을 다 잃고 말 것이다. 특히 왼쪽 남자와 하녀의 눈길은 이 그림을 보는 관람자 쪽을 향한다. 이들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위험한 사건을 은밀히 알리면서 관람자를 사건의 목격자로 만든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은근히 선택을 요구한다. 술과 여자가 있는 사기도박에 공모할 것인가, 아니면 유혹에 빠진 젊은이를 일깨워 이 노름판을 빠져나갈 것인가?

바로크 시대에 카라바조와 라 투르가 카드게임을 묘사해 유혹과 기만에 대한 경계심을 촉구했다면, 19세기 말 세잔은 다른 측면에서 카드놀이에 접근했다. 세잔은 1890년부터 5년 동안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을 테마로 회화 다섯 점을 제작했다. 이 연작에는 부유한 청년이나 사기꾼이 등장하지 않으며 어떤 암시적인 동작이나 눈짓도 찾을 수 없다. 등장인물은 모두 서민처럼 보이는데, 굳은 자세와 심각한 표정으로 카드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중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소장된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가장 단순한 구성으로 카드놀이의 진지하고 엄정한 성격을 나타낸다. 탁자를 놓고 마주 앉은 두 인물은 아무런 속임수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게임을 치르고 있다. 바로크 시대에 유혹의 상징이었던 술병은 세잔의 그림에서 화면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두 인물의 대립을 강조하는 구성요소로 전환됐다.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요행이나 트릭이 아니라 오직 철저한 집중과 계산이다. 인물들은 각자 고립돼 있지만 그것은 타인들의 공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몰입 때문이다. 또한 테이블에는 내기판에 응당 있기 마련인 돈이 놓이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 무엇을 걸고 이토록 진지하게 대결하는 것일까? 과연 마지막에 이기는 사람은 누구일까?

학자들은 이 그림의 두 인물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았다. 우선 농부들이 일과를 끝낸 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라고도 하고, 세잔의 그림을 반대한 아버지와 세잔 본인의 대립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또 절친한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의 갈등을 그렸다는 설도 있고 특정 인물보다는 예술에 대한 세잔의 몰입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한다.

세잔은 답이 될 만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 대신 위의 모든 추측이 타당할 만큼 작품의 의미를 고정시키지 않고 보는 이에게 개방해 두었다. 세잔의 그림은 카드 패처럼 임의로 주어지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삶이란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대결의 연속이며 선택과 결단이 필요한 내적 성찰의 과정이기도 하다. 세잔은 일상의 놀이를 소재로 엄숙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 게임의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것은 승패에 연연하기보다는 오직 신중하게, 묵묵히 걸어가는 고독한 삶의 자세다.


박은영 미술사가·서울하우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