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이른바 ‘땅콩 회항’으로 불리는 항공기 회항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급기야 오너 회장이 나서서 “자식을 잘못 키워 죄송하다”고 인터뷰를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는 비단 한 재벌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내 대부분의 가족기업들은 잠재적으로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100년 이상 수대에 걸쳐 창업자의 가문에서 존경받는 명문 기업을 이어가고 있는 해외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가족기업들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살펴보자.
일러스트 허라미
일러스트 허라미
능력 있는 자녀만 회사에 참여시켜라
미국이나 유럽의 성공한 명문 장수기업들은 대부분 가족고용정책이 있다. 이는 가족이 기업에 참여하는 조건을 명문화한 것으로 가족들의 기업 참여를 엄격하게 규정한다. 이는 능력 있는 후계자를 확보하고 가족 간 갈등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계획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이 알려진 250년 전통의 금융 재벌인 로스차일드가(家)의 가족고용규정에는 반드시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석사과정에서 재무, 회계 등 경영에 필요한 분야를 공부해야 하며, 연관 업종에서 최소 5년간 일을 해야만 기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명문화돼 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오면 부모가 아닌 다른 임원의 감독하에 근무하고, 5년 뒤 자녀가 가족기업에 적합한지를 평가하도록 한다.

5대째 가족기업을 이어가고 있는 스웨덴의 대표 기업 발렌베리가의 승계 원칙도 널리 알려져 있다.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르려면 부모 도움 없이 명문대를 졸업해야 하고, 혼자 해외 유학을 마쳐야 하며, 해군 장교로 복무해야 한다고 명문화돼 있다. 실제로 150년 동안 창업주에서 5대까지 이어져온 10명의 경영자 중 9명이 모두 이 요건을 갖추었다. 또한 식견을 넓히기 위해 뉴욕, 런던, 파리 등에 위치한 글로벌 금융기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 덕에 경험이나 능력이 없는 자녀는 후계자가 되기 어렵다. 이것은 어느 특정 가문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미국이나 유럽 대부분의 장수기업에서 실행하는 것으로 장수가족기업들이 수대에 이르는 동안 한 가문에서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비결이다.


어려서부터 검소함을 가르쳐라
명문 장수기업의 또 다른 자녀 교육법은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검소하고 예의 바르게 키운다는 것이다. 발렌베리 가문의 후계자들은 일찍부터 책임감과 검소함을 배우며 자란다. 부모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숲을 거닐면서 선조들의 위대한 업적에 대해 들려준다. 이들이 중시하는 또 한 가지는 바로 ‘검소함’이다. 가령 여름에는 정원의 잡초를 뽑고 가을이면 갈퀴질을 하는 등 집안일을 거들게 하며, 형이나 언니의 옷을 대부분 물려 입고, 용돈을 받으면 상당 부분을 저축하게 한다. 모든 아이들을 검소하고 엄격하게 키우는 가운데, 아이들은 자신들이 부자 가문의 자손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자라게 된다.

록펠러 가문의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검소함을 배우며 자란다. 록펠러 2세는 아이들에게 일주일 단위로 용돈을 주고 사용처를 정확하게 장부에 적도록 했다. 용돈의 3분의 1은 아이들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지만, 3분의 1은 저축을 해야 했고 나머지 3분의 1은 기부하도록 가이드도 제시한다. 그리고 용돈기입장 검사는 아버지의 몫이었는데, 단순히 숫자가 맞는지 맞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용돈 쓴 곳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사용처에 대해 자세히 물어본다. 이들은 미국 최고의 부자였지만 자녀들에게 용돈을 넘치지 않게 준다. 용돈 교육 방법은 록펠러 1세부터 시작된 것으로 그 후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록펠러 가문의 후세들이 7대를 걸쳐 부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문의 가치와 가풍을 계승하라
세계적인 명품 기업 에르메스는 현재 창업자의 5대 후손 4명이 경영을 맡고 있다. 이들이 수대에 걸쳐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 간의 화합에 있다. 에르메스가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가족으로서의 권리보다는 책임에 대해 배우며 자란다. 그리고 부모세대들로부터 ‘사람과 자연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문의 가치를 보고 배운다. 현재 에르메스 가문의 주식은 50여 명의 후손들에게 분산돼 있지만, 주식을 팔 경우 제일 먼저 가족에게 판매하겠다는 주주 간 협약이 체결돼 있어 분쟁 없이 200년 가까이 기업을 자신의 가문에서 유지하고 있다. 결국 이는 가문 내에서 기업을 이어가겠다는 공동의 꿈에 합의된 결과다.

크리스털 액세서리의 세계적인 리더로 발돋움한 스와로브스키 또한 5대째 창업자 가문에서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장수 비결은 가족경영과 핵심 기술의 철저한 보안, 가족 화합에 있다. 스와로브스키 가문의 자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창업자의 경영 철학과 가치를 듣고 자란다. 그리고 가족들이 합의해 지분율과 상관없이 회장은 가족위원회에서 선정한 8명의 이사회 구성원이 정하는 인물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들이 창업자의 가문에서 100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회의를 통해 분쟁이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규정을 명문화해 놓고 대를 이어 가문의 가치와 가풍을 지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선 활동을 통해 좋은 이웃이 돼라
세계에서 자선재단이 가장 많고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으로 약 4만 개 이상의 독립 자선재단이 있다. 이 중 가족재단의 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성공한 가족기업들은 가족이 함께 자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가족 운영 체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족기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자선 활동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다.

그리고 자녀들을 어린 시절부터 자선 활동에 참여시켜 ‘자기 것’을 나누는 습관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돈의 가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협조하도록 가르친다. 이를 통해 자녀들은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를 때 이를 절충하는 방법 또한 배우게 된다. 가족이 함께 자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연결하고 신뢰를 쌓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세계적인 명문가들이 수대에 걸쳐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 중 하나가 자선 활동에 있으며, 실제로 이것은 ‘부자가 3대를 가기 어렵다’는 3세대 함정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명문 장수기업은 운이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다. 명문 장수기업들은 미래를 책임질 가족들을 철저히 교육시키고, 가족들이 대를 이어 협력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으며 준비한 기업들이다. 그러므로 명문 장수기업의 꿈이 있는 오너 경영자라면, 먼저 명문가가 되기에 힘써야 한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