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혹은 기타…나만의 놀이 찾기

지난해 필자는 베이스 기타를 배우며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기타를 치고 지인들과 함께 연주를 하며 얻는 행복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원하는 ‘감성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HOW TO ENJOY LIFE] 올해의 ‘감성 목표’ 세우셨나요?
오전 진료를 마치고 점심 약속이 있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얼굴이 환한 멋진 60대 신사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20년, 정신과 의사를 하다 보니 직업병처럼 사람을 볼 때 얼굴의 디테일보다 얼굴에서 나오는 에너지감이나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얼굴은 마음의 디스플레이 창이기에 숨기려 해도 마음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논다는 건 삶의 수단 아닌 목적
나이가 들면서 삶의 애환이 쌓이다 보니 얼굴에 노련함은 스며드나 아무래도 환한 에너지감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데, 앞에 노신사에게선 백발에도 젊은 에너지감이 가득했다. 그런데 “윤 교수” 하며 그 노신사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제야 얼굴을 찬찬히 보니 최근에 정년퇴직한 내과 교수님이셨다. 내과 과장도 역임하시고 그야말로 권위 있는 의사로서 삶을 사신 분이셨는데, 과거 권위가 주던 멋 이상, 오히려 지금의 젊은 에너지감이 더 멋지게 느껴졌다. “선생님, 이전보다 더 멋져지신 것 같아요”란 필자의 말에 웃으시며 20분이나 그 자리에 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의 최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내가 몇 년 전부터 일주일에 3번 색소폰을 배우는데 너무 행복해. 40년 일한 직장에서 나와 약간 허전하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지금 더 행복한 것 같아. 고등학교 동문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에도 들어가게 됐지 뭐야. 올해 공연도 예정돼 있다네.”

신이 나 이야기하는 교수님에게서 어찌나 그 행복감이 전달되던지 필자의 마음마저 달달한 느낌이 들었다.

올 한 해도 한 달이 흘러갔다. 새해에 ‘올해, 열심히 살아봐야지’ 다짐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된다. 또 열심히 살려면 목표가 중요하기에 새해에 이루고픈 목표를 정하기 위해 곰곰이 생각도 했을 것이다.

올해 목표 세우기에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내 마음이 원하는 감성 목표도 함께 세워보는 것이다. 먼저 종이 2장을 좌우로 나란히 펼쳐 놓는다. 그리고 우선 왼쪽 종이에 5개 정도 올해의 목표를 정해본다. 일과 관련된 것도 있을 수 있고 운동이나 외국어 등 자기개발과 관련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다음엔 오른쪽 종이에 ‘2015년이 나의 마지막 해다’라고 생각하고, 하고픈 일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라 할 수 있겠다. 죽음이란 단어를 이야기하면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가끔 죽음이란 단어를 내 뇌의 감성에 던져보는 것은 상당한 심리적 유익이 있다. 내 마음, 내 감성이 정말 하고픈 일들이 머리에서 따다닥 떠오르기 때문이다.

다 썼으면 오른쪽과 왼쪽의 목표를 비교해본다. 하나도 겹치는 것이 없다면 너무 건조한 이성적 목표로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모범생의 1년 목표인 셈인데, 여기서 모범적인 삶이란 내 개인의 감성적 가치보다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치에 더 충실하게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물론 훌륭하고 소중한 가치의 삶이다. 그러나 너무나 모범적으로만 살면 우리 감성은 질식하게 된다.


베이스 기타가 가져다준 행복감
행복 과학의 연구 결과는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면 그 이후로는 소유보다는 심리적 자유감이 상승할 때 사람의 행복도도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적 자유감은 내 개인적인 감성의 가치가 만족될 때 찾아오는 것이다. 버킷리스트에 적힌 일만 하며 살 순 없지만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내 감성이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한 개 정도는 올 한 해 꼭 도전해보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목표 이상에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감성의 목표도 중요하다.

앞의 노신사가 정년퇴직 후 허무에 쌓인 것이 아니라 더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과거를 멋있게 살았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멋있게 살면 이 추억이 미래의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마저 부정적이고 우울하게 덧칠해버리는 것이 우리 뇌 안의 감성 시스템이다.

우리는 항상 현재를 살고 있기에 현재의 내 감성을 행복하게 해줄 목표가 필요한 것이다. 앞의 노신사에겐 색소폰이 감성 목표였다. 지금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취미, 놀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 노신사의 얼굴에서 건강한 에너지가 넘쳐난 것이다.

논다는 것은 삶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 돼야 한다. 일하고 남는 시간에 놀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선 바쁜 현대사회에서 나만의 놀이를 개발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노는 것도 일하는 것 이상 에너지를 투입하고 몰입할 때 진정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대충 놀거나 잘 일하기 위해서 좀 쉬어야 하니 놀아볼까와 같이 놀이에 대한 ‘불경스러운’ 생각으론 제대로 뇌를 놀릴 수 없다. 우선순위에 있어 노는 것을 일하는 것과 같은 수준에 놓아야 일하는 뇌만 잔뜩 돌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뇌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필자도 지난해에 감성 목표 세우기를 실천해봤는데 베이스 기타 배우기였다. 악기점에 가 쑥스러운 맘으로 베이스 기타를 하나 구입하고 지인한테 소개를 받아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파워하우스란 실용음악학원에 떨리는 맘으로 들어갔다. 청소년들, 대학생들만 주로 있을 줄 알았더니 ‘어라!’ 내 나이 또래도 적지 않게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입시생들처럼 열심히 연습하는데 ‘돈 버는 일들도 아닌데 왜들 이렇게 열심히 하나’ 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연말엔 학원에서 마음 맞는 분들과 록밴드를 결성, 공연도 같이 했다.

필자는 마음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인데,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이 밴드 활동을 할 때는 그 어느 순간보다 내 뇌가 행복을 느끼는 걸 보며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나만의 놀이를 찾는다는 건, 너무나 중요한 삶의 내용이다.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