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림의 스타일이 있는 식탁
평소 손님 초대가 잦은 필자의 집 식탁에는 종종 19세기나 20세기 초의 앤티크 커트러리 세트가 놓이곤 한다. 커트러리(cutlery)는 플랫웨어(flatware)라고도 불리는데 두 단어를 합쳐보면 ‘납작하게 생긴 자르는 것들’이라는 말로 의미가 명확해진다. 우리말로는 식기류라 해석할 수 있겠다. 나이프, 포크, 스푼, 그리고 음식을 나눠먹는 데 쓰이는 각종 서버 등을 말한다.
소수 상류층이 향유한 은식기 문화
실제로 숟가락, 젓가락, 주걱, 국자 정도인 우리의 식기류에 비해 서양의 커트러리 종류는 상당히 세분화돼 있다. 커트러리의 종류는 당연히 음식의 종류와 관련성을 가지고 나뉜다. 특히 요리를 모두 식탁에 차려 두고 각자 덜어 먹는 방식에서 코스에 따라 음식을 순차적으로 내오고 각각 다른 식기로 먹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서양의 식기류는 ‘범람’ 수준에 이르렀다. 빅토리안 시대에는 ‘식기류의 천국’이라고 불릴 만큼 그 종류가 많아지게 된다.
1600년대까지도 거의 대부분의 서구 사람들은 손을 사용해서 음식을 먹었으니 우리나라로 말하면 임진왜란 후 선조 시대와 같은 시기인 셈이다. 16세기 종교개혁과 18세기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포크는 무수한 핍박을 이겨내고 이탈리아를 넘어 프랑스로 건너가게 된다.
메디치 가문 출신의 카트린느 왕비가 1533년 프랑스 앙리 2세와 결혼하면서 포크는 프랑스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게 된다.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17세기가 돼서야 그것은 귀족사회에서 비로소 갖고 싶은 선망의 물건으로 등극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의 화려한 식문화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탈리아로부터 포크를 받아들인 프랑스의 높아진 위상이다. 16세기 중엽 포크 도입 이후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절대왕정부터 루이 15·16세를 거치며 화려한 궁정 문화를 선도하게 된다. 당시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모든 유럽의 왕실들은 프랑스의 궁정 문화를 선망하며 문화적인 모든 면에서 프랑스적 취향을 따라 하고자 노력했다. 식탁 문화의 발전이 전반적인 문화 선진국으로 프랑스를 이끌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 선진국으로서 프랑스의 입지는 현대 모더니즘 예술의 가교 역할을 한 ‘아르누보’라는 예술사조의 발원지가 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천년 역사의 문화 민족임을 자랑하는 우리의 식탁 문화는 어떤가. 이런저런 불안정한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살림살이가 저마다 팍팍해졌다고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앞뒤 보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온 부모님 세대, 그리고 우리 모두 수고 많았고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포기하거나 잊고 살았던 많은 것들 중에서 꼭 다시 챙겨야 할 것도 되짚어볼 일이다. 단언컨대 우리의 식탁 문화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식탁이라는 공간은 식구들 모두가 모여 하루 일과를 얘기하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소중한 곳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분명 정성껏 차린 ‘집밥’일 것이다. 요즘 우리는 과연 일주일에, 아니 한 달에 몇 번이나 가족 모두가 모인 식탁을 마주하고 있는가. 아침에는 나가기 바쁘고 저녁엔 늦게 귀가한다. 그밖에 다이어트 등 이런저런 이유로 식탁에 온 식구가 둘러앉는 일이 쉽지 않다. 정작 온 식구가 모일 수 있는 기념일이라도 되면 적당한 식당을 찾느라 바쁘다. 그러니 어른들의 따뜻한 조언이나 음식 하나를 두고 형제간에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배려도 찾기 힘들어졌다.
2015년도 어느덧 한 달이 훌쩍 가버렸다. 이제 우리 집도 한 달에 몇 번 정성껏 마련한 ‘집밥’이 있는 예쁜 식탁으로 가족들을 초대해보면 어떨까? 19세기 시대에 귀족들이 썼던 화려한 은식기는 아니더라도, 집에 있는 가장 예쁘고 귀한 그릇을 꺼내고 예쁜 매트도 깔아 식구들을 화려하게 유혹해보자. 머그잔에 밀려 1년에 한 번도 바깥 구경하기 힘들었던 티잔 세트와 블링블링한 크리스털 물컵을 꺼내보자. 식구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티파티는 일류 호텔의 값비싼 티파티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봄을 알리는 홍매화 한 가지를 구해 운치를 더하면 금상첨화다.
백정림 이고 갤러리 대표 |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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